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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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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 아파트 단지 대신 ‘열린공간’…3기 신도시는 달라야죠” [헤경이 만난 인물-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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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로 둘러싸인 대단지 아파트

폐쇄성·획일화·단절의 문화 만들어

일반 주거지 주거환경 좋아져야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숲’과 이별

공간 공유·가로중심의 도시주거 등

3기 신도시 도시계획 패러다임 바꿔야

골목골목 보석같은 건축물, 사회도 바꿔

열린도시·좋은건축 모범사례 되길 기대

헤럴드경제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은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단지의 폐쇄성을 지적했다. 3기 신도시를 통해 울타리 안에 모든 것을 갖춘 단지가 아니더라도 좋은 거주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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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권남근 건설부동산부 부장

“고층의 대단지 아파트만이 답은 아니에요. 7층으로도 얼마든지 공급량을 확보할 수 있고 주변 환경이 좋다면 일반 건물도 좋은 주거지가 될 수 있죠. 3기 신도시는 도시계획부터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합니다.”

작은 아파트가 담장 없이 어우러진 곳, 낮에는 물론 밤에도 활기찬 동네, 공원과 도서관, 어린이집이 갖춰진 마을.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62)이 그리는 3기 신도시의 모습은 이랬다.

우리나라 건축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수장이 말하는 3기 신도시는 신도시 하면 떠오르는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 숲’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는 과거의 아파트촌과는 이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출범한 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박 위원장은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집무실에서 진행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아파트 단지화를 지양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아파트 단지의 폐쇄성이 일상의 획일화와 도시의 단절로 이어진다는 생각에서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늘었고 주거환경에 대한 욕망도 커졌어요. 당연한 거죠.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를 뒷받침할 여력이 없었고 아파트 단지가 그 욕망을 대신 채워줬습니다.”

그는 “아파트 단지는 점점 좋아지고 아파트 단지가 아닌 동네는 더 나빠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단지들 사이에서도 계층이 생기고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파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박 위원장은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 아파트 같은 고밀도의 건축형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아파트가 많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며 “문제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단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기 신도시인 경기도 분당을 예로 들었다. “분당은 모든 단지가 공원에 접해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좋아요. 그런데 다 담장을 치고 있죠. 단지 밖 사람들만 안으로 못 들어가는 게 아니라 입주민도 편하게 드나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바로 옆 공원을 두고 담장 안 주차장에서 노는 거죠. 황당하지 않나요?” 그래서 영역표시에 불과한 울타리를 벗어던지고 ‘닫힌 도시’를 ‘열린 도시’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 위원장은 “일반 주거지가 아파트 단지 못지않은 주거환경을 확보해야 ‘단지 시대’가 끝난다”고 했다. 좋은 도시공간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박 위원장이 생활SOC(사회간접자본) 확충을 가장 큰 과제로 보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곳곳에 공원이 있고 괜찮은 도서관과 수영장, 어린이집이 있는 주거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생활SOC 정책만으로는 어렵다고 했다. “예산 투입이 미미합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죠. 중장기적으로는 생활SOC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해야겠지만 아파트 단지가 아니어도 살 만한 동네가 생기고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열린 도시의 모습을 성공사례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박 위원장은 공공주택지구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기성 시가지 내 단지의 경우 주변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을 열라고 하기 힘들다. 그러나 새롭게 개발하는 곳이라면 인프라가 좋아 얼마든지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시는 골목과 집이 만나게 돼 있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도 그랬죠. 아파트 단지는 1920년대 서양에서 발명됐는데 그들은 1970년을 기점으로 단지 방식을 버렸습니다. 1962년 도입한 우리는 지금까지 하고 있지만요. 사회를 원래대로 되돌리자는 겁니다.”

정부는 과천 과천지구와 수원 당수, 안산 신길2 등 공공택지지구 3곳을 ‘가로공간 중심 공유 도시’로 조성하고 있다. 획일적이고 단절된 개인 중심의 공간에서 다양하고 열린 지역공동체 중심의 공간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박 위원장은 “가장 큰 차이는 구획을 잘게 잘랐다는 점”이라며 “아파트를 담장없이 길과 직접 만나는 일반 건물처럼 짓고, 도로 폭을 좁혀 작은 길을 내고, 모든 거리를 낮은 높이의 건물로 둘러싸인 ‘휴먼스케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휴먼스케일은 사람의 몸 크기를 기준으로 하는 척도로 우리가 편안함을 느끼는 크지 않은 공간을 말한다.

3기 신도시에도 열린 도시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박 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100만평(330만㎡)이 넘는 택지에 모두 적용할 수 없겠지만 중심부에서 만이라도 열린 도시 개념을 구현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시계획부터 공간을 공유하는 체계로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위원장이 도시계획을 강조하는 것은 고덕강일지구에서 이미 한 차례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공모를 통해 지구 내 민간아파트 사업자를 선정했는데 당시 가이드라인이 ‘공동성 지향’과 ‘가로중심의 도시주거’였다. 박 위원장은 이 공모를 기획하고 심사했다. 열린 형태의 중정, ‘디귿(ㄷ)’자 모양의 저층 설계가 적용되는 등의 변화가 있었으나 ‘단지’ 그자체는 벗어나지 못했다.

“고덕강일의 경우 800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들을 만든다는 전제로 도시계획이 돼 있었어요. 그 안에서 하려다 보니 한계가 많았습니다. 형태적인 시도만 한 거죠.”

정부는 공모를 통해 가로중심의 3기 신도시 도시계획안을 마련했으나 구체화 과정에서 얼마나 실현될지 미지수다. 박 위원장은 “계획안대로 한다면 좋겠지만 지자체 요구도 반영해야 하고 교육청,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박 위원장은 “지금의 법·제도·인프라는 모두 아파트 단지화에 맞춰져 있다.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주택법상 도로로 분리된 블록은 별개 주택단지로 규정하는데 모든 주택단지는 관리소를 둬야 합니다. 블록을 작게 만드는 순간 100가구마다 관리소를 둬야 하는 셈이죠.” 그는 “우리 사회가 30~40년간 아파트 단지에 너무 익숙해졌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파트가 곧 단지로 여겨지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라고 박 위원장은 보고 있다. 3기 신도시가 모범사례가 되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작은 필지를 충분히 공급해 공공공간과 어우러지는 주거공간을 선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열린 도시’와 ‘좋은 건축’은 박 위원장이 이끄는 6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는 “골목골목 보석 같은 건축물이 들어서면 마을공간이 좋아지고 이게 쌓이고 쌓여 사회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좋은 건축이 좋은 도시공간, 나아가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이 ‘동네 건축’에 주목하는 것도 우리 주변을 채우는 작은 건축부터 좋아져야 한다는 신념 에서다. 그는 “좋은 도시공간의 출발은 동네 파출소와 우체국을 잘 짓는 것부터 시작된다”며 “정부가 동네 건축을 설계하고 시공하고 관리할 풀뿌리 주체를 육성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건축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법·제도 기반을 세우는 데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박 위원장은 “건설산업에서 건축의 비중은 70%지만 법과 제도는 토목을 중심으로 돼 있다”며 “건강한 건축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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