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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동학개미들의 주식 열풍

'월가에서 가장 똑똑한' 사이먼스, 개미 투자자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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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사이먼스가 세운 르네상스

로켓사이언스로 무장한 퀀트펀드

수학으로 풀 수 없는 개미에 당해

지난해에 두 자리수 손실율 기록

최근 두달여만에 6조원 빠져나가

중앙일보

투자와 수학을 결합한 르네상스 제임스 사이먼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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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수학적 기법을 쓰는 금융시장 엘리트는 사라질 운명이다.”

‘패시브의 아버지’ 존 보글(1929~2019년)이 『투자의 정석』 등에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그는 “펀드매니저가 현란한 수학으로 고수익을 좇아봐야, 각종 비용과 리스크를 고려하면 투자자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패시브인 인덱스펀드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글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일까.

제임스 사이먼스가 설립한 르네상스(퀀트)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해 12월1일 이후 두 달여 만에 50억 달러(약 6조원)이 빠져나갔다”고 7일(현지시간) 전했다.

이탈한 50억 달러가 적은 돈이 아니다. 세계 최대 퀀트펀드인르네상스가 굴리는 돈이 600억 달러 수준이다. 전체 자산의 8% 정도가 두 달 정도 사이에 빠져나갔다.



사이먼스는 퀀트의 상징



사이먼스는 MIT 학부에서 수학을 배운 뒤 UC버클리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것도 23살 때였다. 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돈을 굴리는 퀀트펀드의 상징이기도 하다. '월가에서 가장 똑똑한 사나이'로 통하기도 한다.

중앙일보

사이먼은 '시장을 푼 사람'으로 추앙받았다. 사진은 그를 다룬 책인 『시장을 푼 사람: 짐 사이먼스는 어떻게 퀀트혁명을 시작했나』이다.


사이먼스의 르네상스엔 일반 투자자에게 판매되지 않는 메달리언펀드 외에 세 가지 '공모펀드'가 있다. 모두 현란한 수학적 기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본격화한 개인 투자자(개미)의 역발상 베팅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인스티튜서널에쿼티스펀드의손실율은 19%였고, 인스티튜셔널다이버스파이드펀드는 32%나 돈을 까먹었다. 또 인스티튜셔널다이버스파이드글로벌에쿼티스의 손해는 31%였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르네상스가 두 자릿수 손실을 봤다”며 “컴퓨터가 처음 겪는 시장 반전 때문”이라고 전했다.



개미의 역발상 베팅에 당해



무엇보다 르네상스 ‘엘리트’들은 헤지를 충분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3월 코로나 패닉을 맞았다. 그들은 화들짝 놀라 자산을 팔고 현금 비중을 늘렸는데, 4~5월 개미 투자자들에 의한 반등이 일어났다. 시장 흐름과 정반대로 간 셈이다.

그런데 사이먼스는 지난달 회장직을 내려놓겠다고 발표했다. 그가 완전히 손을 떼지는 않는다. 이사회 멤버로 남아있을 계획이다. 그의 회장 사임이 자금이탈과 관련이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르네상스 손실과 자금이탈은 개미 투자자의 역발상 베팅이 낳은 ‘금융 엘리트의 위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퀀트펀드 매니저들은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이 골드먼삭스에서 일할 때인 198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당시 월가 사람들은 퀀트 매니저의 현란한 수식 등에 놀라 그들을‘로켓 사이언스 펀드 매니저’로 불렀다.

그런데 한 세대만인 2020년 ‘증권분석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이 『현명한 투자자』 등에서 지적한“전제와 가정으로 가득한 수학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말이 적중한 셈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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