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인-잇] '행복 챔피언' 핀란드의 '성공' 육아법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보영│전 요리사, 현 핀란드 칼럼리스트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3년 연속 1위에 오른 '세계 행복 챔피언' 핀란드.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워 그 행복을 대물림해주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책이 최근 핀란드에서 발간됐다. <행복한 아이의 비결(onnellisten lasten salaisuudet)>이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자 삐르요 수호넨(Pirjo Suhonen) 씨는 9살 딸을 둔 엄마이자 문화·교육 콘텐츠 생산자로, 핀란드의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핀란드의 글로벌 패션기업 '이바나 헬싱키(Ivana Helsinki)'의 창업자로 오랫동안 핀란드 패션계의 '큰 손'이었는데, 이때 사업을 위해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한 '지한파'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제공한 사람도 한국인 사업 파트너였다. 어느 날, 그 파트너는 수호넨 씨에게 "핀란드인의 문제는 아이에게 행복만 바라고 성공은 크게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호넨 씨는 당시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는데, 이후에도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고 한다. 답을 찾기 위해 수호넨 씨는 핀란드의 교육 ·심리 전문가 12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그들의 답변을 엮은 게 이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 보는 이 내용을 예전에도 알았더라면'하는 안타까움과 후회가 가득했다. 이 좋은 육아법을 적용하기에 나의 아이들은 이미 훌쩍 커버렸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농담처럼 '양육' 아닌 '사육'을 하고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농담이 사실로 판정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 말로 '이번 생은 망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잘 모셔두었다가 우리 아이들이 예비 부모가 되는 날, 건네줘야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나는 바담풍(風)했지만 아이들은 바람풍(風)하기를 하는 마음에서다.

그래도 한 가지,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위안이 된 것은 "완벽한 부모, 최고의 부모가 되려 하지 마라. 충분히 좋은 부모면 족하다. 다른 부모와 비교해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마라"는 이 책의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모가 과연 '충분히 좋은 부모'일까?

SBS

일상과 루틴(routine)의 소중함

우선, 아이와 일상을 공유하는 부모가 '충분히 좋은 부모'라고 책은 전한다. 보통 바쁜 부모들이 여행같이 '특별한 시간'을 통해 일상을 보상해주려 한다. 그러나 특별한 체험보다 평범한 일상이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행복을 준다. 특별한 경험도 일상에 더해질 때 빛이 나는 것이다. 특별함만이 반복된다면 그 특별함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반복됐던 일상은 좋은 추억으로 아이들에게 남겨진다.

일상은 규칙적일 때 더 빛을 발한다. 루틴(routine), 즉 규칙적 일상은 역동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아이에게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중요한 장치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융통성이 떨어져 일상이 깨지면 그 변화에 적응하려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하게 되기 때문이다. 변화로 인한 불안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쉽다. 루틴의 혜택은 부모도 받는다. 시간 활용이 쉬워지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가 없어진다. 잘 짜인 루틴은 모두에게 안정감을 제공한다.

루틴이 그 힘을 더 발휘하려면 템포가 중요하다. 절대로 몰아치면 안 된다. 여유로운 일상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쉬는 법을 가르쳐주고, 이는 창의력의 바탕이 된다. 책에는 창의력의 뿌리는 의외로 '평범한 일상'과 '반복되는 루틴'이고,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창의력의 기본'이라고까지 쓰여 있다. 휴식기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뇌파가 알파파인데, 이 알파파가 바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또, 창의력이 발휘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 물질과 행복을 느낄 때 나오는 신경전달 물질이 거의 동일한 데 비춰보면 창의적인 아이가 결국 행복한 아이라는 주장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이에게 여유롭고 반복되는 일상을 제공하면 아이의 뇌에서 마법이 벌어질 것이다.

최고의 선물, 칭찬

또 다른 '충분히 좋은 부모'의 조건은 '칭찬'이다. 보통은 아이가 잘못했을 때 더 많은 피드백을 주기 마련이고, 긍정적인 행동은 당연스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약점을 고치는 것보다 강점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 교육법이다. 내가 핀란드 교육에 정말로 박수를 쳐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칭찬은 성공의 지렛대다. 평소 칭찬을 받으며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무너지더라도 성공적으로 일을 완수할 수 있다.'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보다는 '티끌 성공 모아 태산 성공'이 핀란드에는 더욱 걸맞은 격언이다. 칭찬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SBS

스마트폰은 내려놓고, 아이의 눈 보기

"아이들은 Love(사랑)를 T-I-M-E (시간)이라고 쓴다." 어느 TED 강연자의 말이다. 아이들은 사랑을 시간으로 느낀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기만 한 것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아니다. 눈을 맞추고 관심을 표현할 때 아이들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느낀다. 부모의 스마트폰 중독은 '함께 있어도 외로운 아이'를 양산한다. 아이 눈보다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빛이 만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교환한다. 시선은 '양면의 거울'이다. 아이는 부모를 쳐다보는 동시에, 그 시선을 통해 자신을 쳐다본다. 아이가 느끼는 부모의 시선은 긍정적이고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어린 아이의 뇌는 아직 간접 경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 눈을 마주치는 등의 '직접 경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전화로 대화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유튜브나 동영상을 틀어주는 양육법 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단 한 사람

아기는 태어난 지 3개월이 되면 자신을 도와주고 사랑해주었던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만 12개월~18개월이 될 때까지 단 한 사람과 맺는 친밀한 관계가 아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발달 심리학자들은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아기는 나중에 친밀한 인간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핀란드 부모는 보통 2~3살 정도에 처음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는데,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일까 싶다.

'단 한 사람'의 영향력은 영유아기를 지나서 절대적이다.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줄 어른 한 명이 꼭 필요하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한 사람의 존재는 아이 성장에 절대적이다. 이런 사람이 없으면, 아이들은 엄한 곳에서 관심과 사랑을 얻으려다 '일진'같은 학교 폭력에 휩쓸리고, 왕따 혹은 학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핀란드 교육계의 '큰 어른'으로 불리는 카리 우시큘라(Kari Uusikylä) 헬싱키 대학 교육학과 명예 교수가 일반 민을 상대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제대로 된 어른 1명만 아이 곁을 지켜줘도 아이는 절대 삐뚤게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이 강연이 끝나고 모두 자리를 뜨던 때 한 중년 여성이 교수 곁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저 마르요입니다."
알고보니 우시큘라 교수가 초등학교 교사 시절 가르쳤던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이 바로 제게 그 한사람이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우시큘라 교수는 그 순간이 교육자로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었다고 내게 말했다. 말하는 그의 눈가가 촉촉했고, 나의 눈가도 함께 젖어갔다.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행복과 성공을 향한 다른 시선

이 책에서 가르쳐준 모든 원칙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다. 다 읽고 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행복한 아이를 기르는 방법이 각보다 쉽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집필 계기가 됐던 한국인 파트너의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이 책에서 제시한 '핀란드식 성공'은 아시아의 타이거 맘 식의 성공과는 다르다. 핀란드식 성공은 경쟁을 통해 소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스카이 캐슬'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뿌리 깊은 나무가 많이 자라는 낮은 숲이다. 행복과 성공은 서로 겹치는 부분도 많다. 행복하면 이미 반 이상은 성공한 거다. 또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보다는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최근 발표된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테스트 결과를 봐도 그 한국인 지인의 우려와는 다르게 핀란드는 아이들의 행복과 성공을 함께 이루었다. 우리나라를 포함, 학업 성취도에서 최고 순위를 차지한 아시아 국가 학생의 삶의 만족도는 밑바닥인 데 비해, 핀란드는 학생의 학업 성취도와 삶의 만족도가 동시에 모두 높은 거의 유일한 나라로 나타났다.
이제 그 한국 지인에게 되물을 시간이다.

"그럼, 한국인은 왜 아이의 행복보다 성공에 더 집착할까요?"

SBS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잇 #인잇

# 본 글과 함께 읽어 볼 '인-잇', 만나보세요.
[인-잇] 어머니날에 죽어간 아이, 핀란드판 정인이 사건


▶ '4.7 재보선' 관전 포인트 바로 보기
▶ [제보하기] LH 땅 투기 의혹 관련 제보
▶ SBS뉴스를 네이버에서 편하게 받아보세요

※ ⓒ SBS & SBS Digital News Lab. : 무단복제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