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김인후에게 하사한 그림 새긴 목판…매물로 발견돼 회수
조선 인종이 스승인 하서 김인후에게 선물한 묵죽도의 목판 |
(장성=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조선 제12대 임금 인종(재위 1544∼1545)이 스승인 하서 김인후(1510∼1560)에게 하사한 묵죽도의 목판이 도난 15년 만에 전남 장성 필암서원으로 돌아온다.
6일 장성군에 따르면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서울경찰청 지능수사대의 공조수사로 회수된 '하서 유묵 묵죽도판' 3점이 관련 사건 재판 종료 후 필암서원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묵죽도 목판은 김인후를 배향하는 필암서원에 보관됐다가 2006년 도난당했다.
목판의 행방은 모 대학 교수가 문화재 매매업자의 매물을 살펴보던 중 발견하고 2019년 7월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에 확인을 요청하면서 알려졌다.
공조수사팀이 압수수색을 벌여 묵죽도 목판을 포함, 다수 지정문화재의 불법 유통 사실을 확인했다.
2006년 도난사건 전 장성 필암서원에 보관된 묵죽도 목판 |
전남 유형문화재 제216호인 묵죽도 목판은 원래 4점으로 제작됐는데 나머지 1점은 회수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문장에 뛰어났던 김인후는 31세인 1540년 대과에 급제했고 세자(훗날 인종)를 교육하는 기관인 세자시강원의 설서(정7품)가 됐다.
세자보다 5살이 많은 김인후는 스승으로서 세자에게 유교 정치의 이상을 설파했고, 둘은 군신(君臣)의 관계를 뛰어넘는 우애를 나눴다.
세자는 김인후에게 배 3알, 성리학의 전범인 주자대전, 묵죽도를 선물했다.
묵죽도는 세자가 직접 비단에 그려 하사한 그림으로, 김인후는 이 그림에 충성을 맹세하는 시를 남겼다.
묵죽도 위에 하서 김인후가 적은 시 |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면서 김인후는 고향 장성에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목판은 인종의 묵죽도를 판각한 것으로 총 3판이 시기를 달리해 제작됐다.
초각판은 나주 목사 박동열이 광해군 2년(1610)에 부임한 뒤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했다가 투옥(1613)되기 이전에 판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재각판은 영조 46년(1770)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세 번째 각판은 훨씬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1999년 필암서원 하서유묵 목판 일괄(총 56판)에 포함돼 전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장성군은 묵죽도 목판을 돌려받으면 전시계획을 마련해 공개할 방침이다.
유두석 장성군수는 "잃어버렸던 묵죽도 목판이 제자리를 찾게 돼 뜻깊다"며 "문화재 가치를 공유하고 계승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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