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에게 보낸 사과문 내용도 ‘이춘재 사건’ 재심 때와 똑같아
경찰 고문에 못 이겨 살인죄 누명을 쓴 채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 피해 당사자 최인철(왼쪽)씨와 장동익씨가 4일 오전 부산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꽃다발을 들고 있다. 오른쪽은 박준영 변호사.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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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언론플레이지, 사과가 아닙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한 누명을 쓰고 21년 동안 옥살이를 한 최인철(60)씨가 5일 경찰이 발표한 사과문을 보고 한 말이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재심 시작 뒤 단 한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경찰이 재심 결과가 나오자 당사자가 아닌 기자들에게 ‘사과문’을 낸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앞서 경찰청은 이날 오전 공식 입장문을 내고 전날 무죄판결을 받은 최씨와 장동익(63)씨에게 사과했다. 경찰은 “재심 청구인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 등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와 사과 말씀 드린다”며 “당시 적법 절차와 인권 중심 수사 원칙을 준수하지 못한 부분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이로 인해 큰 상처를 드린 점을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반발하며, 고문 경찰을 고소해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장동익씨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해 1월 재심이 시작될 때 ‘경찰이 손 내밀면 잡을 용의가 있고, 용서할 수 있다’라고 밝혔는데, 1년 동안 단 한번 연락이 없었다”며 “무죄판결이 나오니 언론을 통해 사과하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앞선 고문사건 피해자에 대한 사과문의 내용과 똑같은 내용을 ‘복붙’(복사+붙이기)한 부분도 피해자들의 화를 키웠다. 경찰은 사과문에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보호는 준엄한 헌법적 명령으로 경찰관의 당연한 책무다. 경찰은 이 사건을 인권보호 가치를 재인식하는 반면교사로 삼아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는 지난해 ‘화성 연쇄살인사건’ 진범으로 몰려 20년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54)씨가 무죄선고를 받았을 때 내놓은 사과문과 똑같다.
최씨와 장씨의 변호를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앞서 약촌오거리 사건이나 강압수사로 허위자백한 사실이 밝혀진 사건이 수차례 있었지만, 매번 경찰은 당사자에게 사과 한번 않고 기사를 통해 접하게 했다. 이런 사과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며 “(경찰은) 뭐가 잘못됐는지 아직 모르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재심 법정에 나와 고문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전직) 경찰 네명의 위증을 문제 삼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두 사람의 고문을 지시·가담한 경찰관 다섯명은 모두 퇴직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지나 고문 책임을 묻기는 힘들지만, 사건 해결 공로로 특진한 게 있으면 이를 취소하고 연금액을 깎는 조처 등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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