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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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은 피해계층 맞춤형 지원과 전 국민 지원을 담은 4차 재난지원금을 끝까지 추진할 거예요!”
지난 1일 오후 5시43분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렇게 말하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지 않고 끝까지 “저는 못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김 원내대표가 먼저 회의장을 나갔고, 홍 부총리는 시뻘게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자리에 남은 다른 의원들도 홍 부총리에게 “방역상황을 봐서 전 국민 지원을 하면 되지 그렇게까지 안 된다고 할 게 뭐 있느냐”며 말을 보탰다. 결국 홍 부총리 역시 김 원내대표가 자리를 뜬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회의장을 나섰다.
당시 회의 참석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당·정·청 회의는 유례없이 싸늘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당 원내 지도부,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해 청와대의 김상조 정책실장·이호승 경제수석 등이 참석했다. 20여분간 비공개로 이뤄진 회의에서 당정은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김 원내대표가 ‘보편과 선별을 모두 담은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했으면 좋겠다. 기재부가 협조해 달라’고 하자, 홍 부총리는 ‘우리는 못 하겠다’는 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김 원내대표와 홍 부총리가 서로 언성이 높아졌고 결국 김 원내대표가 자리를 먼저 박차고 나갔다”고 전했다. 김상조 실장은 홍 부총리처럼 완강하진 않았지만 기재부 의견에 동조하는 쪽이었다고 한다. 또 다른 참석자는 “김 실장은 ‘지금 (전 국민 지원) 얘기를 꺼내는 건 이르다’라고 얘기를 했다”며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했다. 지난해 봄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벌어진 당정충돌에 이어 2차 충돌을 예고한 자리였다.
당정 간 긴장감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불거졌다. 당·정·청 회의 이튿날인 2일인 이낙연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선별·보편 지원 동시 협의론’을 밝힌 지 4시간 만에 홍 부총리가 정면으로 치받았다. 홍 부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민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을 한꺼번에 모두 하겠다는 것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대했다.
홍 부총리의 ‘페이스북 반발’ 다음날인 3일, 민주당 의원들은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정일영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집권여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제안했으면, 정부는 이를 면밀히 검토해서 그 입장을 정부의 공식적 채널을 통해 밝히면 된다”며 “국무회의, 경제장관회의, 기자회견, 대변인브리핑, 당정회의 등 가지고 있는 방법이 많지 않으냐. 국정의 무게가 가벼워진다”고 비판했다.
홍 부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설훈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기재부는 전쟁이 나도 재정 건전성만 따지고 있을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서민의 피눈물을 외면하는 곳간지기는 곳간지기로서 자격이 없다. 그런 인식이라면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당정 간에 협의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정무직 공직자가 기재부 내부용 메시지로 공개 반박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행태로 즉각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됐다”며 이례적으로 비공개회의의 민감한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홍 부총리는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이날 국회 본회의 참석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 연설을 그 자리에서 들었는데, 공직 생활하면서 가장 격조 있는 연설이었고 정책콘텐츠가 탄탄한 대표연설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이 대표가 재난지원금과 추경 관련해서 말했는데 혹시 정부와 다른 이견 사항에 대해서 확정적인 걸로 전달될까 봐 재정 당국 입장을 절제된 표현으로 말씀드린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되겠다”고 말했다.
이날 홍 부총리가 기자들에게 말하던 와중 눈가가 촉촉했던 모습을 놓고 ‘울먹인 게 아니냐’는 보도가 쏟아졌다. ‘눈물 논쟁’이 벌어지자 기재부는 “보시는 분의 판단일 수 있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는 부총리님의 입장을 추후 보도에 반영해주시길 부탁드린다”며 문자 메시지로 입장을 알려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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