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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쿠데타’로 부르지 못하는 바이든의 ‘미얀마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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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냐 ‘중국 견제’냐…첫 외교 시험대

한겨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코로나19 대응 경기부양안과 관련해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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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서 재발한 군부 쿠데타가 취임 2주도 채 안 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중대한 시험대에 올려놨다.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동맹 연합을 통한 중국 견제’라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충돌하는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성명에서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못하는 데서도 고민의 깊이가 드러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얀마 쿠데타 발생 이튿날인 1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민주주의 전환과 법치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고 강력 비판하고, 제재 부활 가능성을 경고하며 군부에 권력 포기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구금자 석방을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989년 군사 정권이 붙인 국호인 ‘미얀마’ 대신 미 정부가 양자 관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국호인 ‘버마’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무력이 국민의 뜻 위에 군림하거나 신뢰할 만한 선거 결과를 지우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며 “버마 군부가 즉각적으로 권력을 포기하고 구금한 활동가와 관리들을 석방하며, 모든 통신 제한을 풀고, 시민을 향한 폭력을 삼가도록 압박하도록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이 어려운 시기에 버마 국민의 편에 서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며 “버마의 민주주의 전환을 뒤집는 데 책임있는 이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그 지역과 세계에 걸쳐서 우리의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은 민주주의의 진전에 바탕해 지난 10년 간 버마에 대한 제재를 해제했다”며 “이 진전을 뒤집는 것은 우리의 제재 법률과 권한에 대한 즉각적 재검토를 필요하게 만들 것이고, 적절한 조처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성명은 그가 이번 사태를 민주주의 위협의 관점에서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시키는 모범국이 되겠다고 약속하며 당선된 바이든 대통령으로서 미얀마 사태는 그 의지를 실천할 시범 케이스다. 더구나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불복과 그 지지자들의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건으로 실추된 미국 민주주의의 체면을 되찾을 기회이기도 하다. 미국은 미얀마가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왔다.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으로 재직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미얀마 민주 정부 탄생을 대외정책의 주요 성과로 꼽았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지낸 대니얼 러셀은 <폴리티코>에 이번 미얀마 사태를 두고 “바이든의 민주주의 수호와 시진핑의 권위주의에 대한 암묵적 또는 적극적 지지라는 경쟁 모델에 관한 일종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이같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제재 부과 등 미얀마 군부에 대한 강력한 응징 주장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성명에서 제재 부활을 경고한 것을 비롯해, 상원 외교위원장인 로버트 메넨데즈 민주당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 등이 일제히 “비용 부과”, “엄격한 경제 제재 부과”를 주장했다.

1일 미얀마 사태 관련한 국무부의 브리핑을 들은 의회 관계자들은 <시엔엔>(CNN) 방송에, 국무부가 모든 선택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정부가 제재에 나서지 않으면 의원들이 제재 부과 법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들은 전했다.

바이든 정부의 고민은 제재 부과 등 강력한 대응이 미국의 대중국 전략과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는 최근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 노선을 취해왔으나, 미국이 미얀마 군부를 압박할수록 다시 중국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을 최고의 위협이자 경쟁자로 규정하고 동맹들을 규합해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을 추구하는 미 정부의 노선에 차질이 생기는 셈이다.

싱크탱크인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 담당 선임연구원은 <시엔엔>에 미얀마 제재는 “훨씬 더 큰 중국의 영향력으로 가는 문”을 미얀마에 열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지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예 사설에서 “(미얀마 군부에 대한) 단순히 도덕적 맹비난이 아니라 현실적 외교가 필요하다”며 미얀마가 중국 영향권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을 촉구했다. 실제로 중국은 이번 사태에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지 않은 채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나치게 강한 행동은 미얀마를 중국 품으로 밀어낼 것이라는 우려와 제재를 촉구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바이든 정부가 균형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미 정부의 고민스러운 처지는 용어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난 31일부터 1일까지 나온 바이든 대통령,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성명에서 “쿠데타”라는 표현은 없다. <폴리티코>는 이번 사태를 공식적으로 쿠데타로 부를지를 놓고 정부 안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쿠데타로 부르지 말자는 쪽은 ‘그래야 군부가 물러서도록 설득할 지렛대가 생긴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쿠데타로 공식 규정할 경우, 미국의 외국지원법에 따라 미얀마 군부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원은 중단된다. 국무부의 한 관리는 “버마 사태는 분명히 쿠데타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국무부는 필요한 법적, 사실적 분석을 한 뒤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시엔엔>에 말했다.

미얀마 국호를 놓고도 여러 해석이 나온다. 미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군사 정권이 붙인 ‘미얀마’ 대신 그 이전의 ‘버마’ 호칭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미 정부가 미얀마 군부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일 브리핑에서 이같은 질문에 “우리의 공식 정책은 ‘버마’라고 부르고, 특정 소통에서만 의전상 ‘미얀마’를 쓰는 것”이라며 “예를 들어 국무부 웹사이트는 ‘버마(미얀마)’와 ‘버마’를 섞어 쓴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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