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사전 협의없었다… 검토도 없었다"
3개월 만에 무너진 재정전망… 2년 연속 1분기 추경에 난색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 "늦지 않게, 충분한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토록 하겠다"고 말한 것에 대해 ‘월권(越權)’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행정부의 권한이고, 국회는 편성된 예산을 심의한다는 재정정책상 삼권분립의 원칙을 집권 여당 대표가 180석 의석의 힘을 믿고 깡그리 무시했다는 것이다. 또 보통 대통령이 추경 검토를 지시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부 검토를 하고 최종적으로 ‘추경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결정 사항을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 대표의 추경 지시는 정부의 최고결정권자인 대통령의 권한을 월권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예산편성 책임을 갖고 있는 기획재정부 내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날 이낙연 대표의 대표 연설에 대해 기재부 간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표의 발언과 관련해 "현재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국회와 논의된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추경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도 검토한 것도, 현재 진행 중인 검토도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반응은 이낙연 대표의 일방적인 추경 편성 지시에는 따를 수 없다는 기재부 내부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손실보상 법제화에 신중론을 편 기재부에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고 날선 공격을 한 데 이어 일방적으로 여당이 4차 재난지원금 등 1분기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공식화하면서, 기재부 내부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이 대표가 말씀하신 건 앞으로 정부와 협의를 하겠다는 당의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이해한다"면서도 "추경에 대해 기재부 내부에서 시작한 것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같은 분위기는 예산편성 권한이 없는 정치권에서 추경 편성을 공식화한 것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 재정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데 들러리 설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이날 "추경 편성에서는 맞춤형 지원과 전국민 지원을 함께 협의하겠다"며 "경기 진작을 위한 전국민 지원은 코로나 추이를 살피며 지급 시기를 결정하겠다. 적절한 단계에서 야당과도 협의하겠다"고 했다.
또 "558조원 사상 최대의 올해 예산도 상반기에 72.4%를 집행할 계획이다. 그래도 부족하다"며 "당장 보호하지 않으면 쓰러질 사람이 적지 않고, 쓰러진 뒤에 일어서는 것은 더 힘들다"고 했다. 이어 "국가채무 증가가 전례 없이 가파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나라 곳간을 적절히 풀어야 할 때가 있다. 풀 때 풀어야 다시 채울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이 대표가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한 것을 두고 월권이라고 비판한다. 헌법상 예산편성권은 행정부가 갖고 있고, 국회는 예산안을 심의⋅의결해 예산을 확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당 대표가 예산 편성을 하겠다고 한 것은 잘못이란 것이다. 여당의 대표가 사실상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기재부를 패싱한 셈이다.
문제는 재원과 국가채무 증가속도다. 당정은 작년 코로나 등 경기 침체를 이유로 총 4차례 추경을 편성했다. 당정이 올해 3월 내에 추경을 편성하면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1분기에 추경을 편성하는 것이다.
이미 정부가 올해 코로나19 대응에 따라 확장예산 기조를 이어가면서 2021년도 예산 총지출은 558조원으로 작년 예산보다 8.9%(45조7000억원) 증가했다. 그 결과 현재 국가채무비율은 47.3%로 치솟았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명시한 올해 국가채무비율 전망치(46.7%)를 이미 0.6%포인트(P) 초과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원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 쇼크의 지속과 선거철을 앞둔 만큼 추경을 편성할 수 있어, 올해 연말쯤이면 국가채무비율이 5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 시국에 어려운 사람을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선별지원이 중요하다. 이럴 때일 수록 기재부가 재정의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세종=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