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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정진욱 신임 경제학회장 "경제는 고집부리면 안돼…공짜 돈보다 자영업자 저리대출"

아시아경제 최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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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정진욱 신임 경제학회장 "경제는 고집부리면 안돼…공짜 돈보다 자영업자 저리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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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제학회장 취임
연세대 교수./윤동주 기자 doso7@

연세대 교수./윤동주 기자 doso7@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선별 어려워…낮은 이자로 충분한 대출이 더 효과

지원금, 잠시 통증 없애는 몰핀같은 것


떨어진 내수 활력 회복이 급선무…소비=부도덕 인식부터 바꿔야

저출산 해결 위해선 교육제도 개편


신도시 건설은 가장 낮은 부동산 정책, 양도세율 낮춰야 부동산 매물나와

"부동산, 힘으로 잡으려면 잃는게 더 많아"


[대담=최일권 아시아경제 경제부장, 정리=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코로나19 방역조치 때문에 문을 닫으며 나온 피해를 보전해준다는 것이 목표이니, 손해를 안 본 소상공인에게까지 보상할 필요는 없죠. 선별적 지원이 맞습니다. 문제는 자영업자가 코로나19로 손실을 봤는지 정확하게 판단하긴 어렵다는 점입니다. 공짜로 돈을 주기보다는, 낮은 이자로 충분한 대출을 해 준다면 자연스럽게 '선별적 지원'이 될 겁니다."


오는 4일 신임 한국경제학회장으로 취임하는 정진욱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자영업자 선별지원은 저리 대출로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견해다. 선별지원 취지엔 공감하지만 자영업자들의 코로나19 피해 여부를 판단하기 너무 어렵고 세금자료도 급여소득자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에 낮은 금리로 충분한 금액을 대출해주는 게 더 효율적이란 얘기다.


그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었는지를 가장 잘 아는 이는 자영업자 본인"이라며 "이 위기를 넘기면 확실히 장사를 잘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선별지원제는 ‘공짜’라는 인식 때문에 다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으려고만 해 자원배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19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대출을 했다. 하지만 정 교수는 "한도가 너무 적어 실질적 도움은 안 됐다고 본다"며 "저리로 대출하되 원하는 만큼 충분히 빌려줘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또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출산율 하락 문제는 교육제도 개편으로 해결해야 하며 경제의 빠른 회복을 위해 내수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떨어진 내수 활력을 되찾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

△난감한 과제다. 우리는 내수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라다. 박정희 정권 당시부터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여덟 글자가 신조처럼 돼 있었다. 이제 기업은 도와주지 않아도 수출을 잘 하는데 내수를 키울 아이디어가 없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반(反)소비자정책이 대형마트 문을 닫게 하는 것인데, 소비를 억제하는 정책으로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에 문을 닫았다고 전통시장에 가지 않는다. 온라인으로 구매를 할 뿐이다. 이런 시기에 쇼핑몰을 규제하는 것은 난센스다.

소비진작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비가 부도덕하다'는 인식을 없애는 것이다. 내수에서 가장 수요가 높은 것이 고급품(럭셔리) 수요로, 실내장식 등 비싼 것들은 다 수입품이다. 수입품으로 메워지는 고수요를 대체해야 내수가 비약적 성장을 할 수 있다. 서민의 삶이 이상적 삶인 것처럼 비치는 것이 문제다.


-자영업자를 의식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사실은 표 때문이다. 부자들을 설득해서 하려면 돈이 많이 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돈이 덜 드니까 그렇다. 정치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말이다.


-백화점 등에서 고소득자들이 돈을 쓰게 하면, 남은 자영업자는 어떻게 하나.

△고소득자들이 쓸 물건을 소상공인이 채워줘야 그 고리가 채워진다. 일본은 이런 고리가 어느 정도 있는 나라다. 일본에선 고추냉이(와사비)만 전문으로 파는 가게에서 전국의 와사비를 등급별로 취급하고 비싼 제품도 판다. 전문화가 이뤄지면 소상공인들이 고소득자에게 공급하는 제품도 생기고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의 역할 분담도 된다. 지금은 정부가 가난해야만 도와주기 때문에 전문화된 전통시장으로 갈 수가 없고 정책이 반대로 가고 있다. 지원금 지급이 혜택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통증만 잠깐 없애는 몰핀과 같은 것이다.


-증세 얘기가 여당에서 나온다.

△총수요를 메꿀 방법이 없어서 정부가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는데, 지금 증세를 하면 그 효과가 반감된다. 지금 빚을 잘 지면(돈을 풀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향후 증세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돈을 써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노력해 후세대가 갚기 쉬워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면 공공일자리 같은 경우 생산성 증진에 큰 효과가 없다.


-재정효율화가 어려운 건 맞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생산성이 가장 떨어진 쪽을 찾는다면 교육 부문과 지역 간 불균형이다. 우리나라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교육 부문 비효율성이 너무 높고, 지방에 인프라(항만·도로·정보화)가 부족하다. 기업들이 세제혜택을 줘도 못 가는 이유인데, 이런 부분은 정부가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수도권에 전 인구의 반이 사는데, 이로 인한 비효율이 엄청나다. 재난지원금을 지역불균형 해소에 쓰면서 소상공인을 돕는다면, 물려줘도 갚기 어려운 빚이 아니다.


-부동산 공급을 늘리려면 양도세율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한다. 부동산 공급을 늘리는 하(下)책은 신도시 건설로,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사람들이 원하는 위치가 아니다. 중(中)책은 재개발·재건축 허가를 완화해주는 것이다. 상(上)책은 양도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양도세율은 10%만 낮춰도 절박한 사람은 팔기 때문에 조절이 가능하다. 대통령도 ‘공급’을 늘리라고 했는데, 실무자들은 ‘생산’을 늘리려 하고 있다. 부동산과 같은 내구재는 생산(신도시 건설)으로 공급이 늘 수가 없다. 매물이 나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양도세율 조절밖에 없다. 양도세율을 높이면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매매·전세가격이 오른다.


-정부가 하고 있는 건 중책과 하책이 대부분이란 말씀인지.

△중책도 거의 없다. 심판을 봐야 할 정부가 공공주택 등으로 플레이어가 되려고 한다. 정부는 이윤동기가 없기 때문에 사업자에 비해 공급이 느릴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정부가 직접 하려는 게 문제다.


-정치인들은 한 번 물러서면 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경제는 고집을 부리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힘으로 잡는 것이 수요공급 메커니즘으로 잡는 것보다 수백배 어려운 상황이다. 씨름처럼 ‘이득을 보겠다’는 시장의 힘을 역이용해 규제하지 않고 힘을 없애거나 누르려고 하면 어렵다. 부동산 정책은 결국 못한 것, 실패다. 남은 카드(신도시, 공공임대주택)들은 1년 안에 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운전을 하다가 방향이 안 맞으면 운전대를 반대로 돌려야 하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계속해서 운전대를 돌린 것 같다.


-부채로 인한 부작용은 언제부터 나타날까.

△1세대를 30년 정도로 보면 다음 세대는 고생할 것 같다. 재정적자가 많아지면 위기에 약할 수밖에 없다.


-개혁 얘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연금개혁 등 논의도 있어야 할 텐데.

△수비를 하느라 공격 수단이 없는 것 같다. 공격 수단으로 한국판 뉴딜이 나왔는데 구체적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개혁에는 항상 피해 계층이 생기기 때문에 정권 초에 가능하다. 뉴딜은 디지털·그린·휴먼 뉴딜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디지털 인력 양성이라는 부분은 불안해 보인다. 디지털 인력, 그중에서도 코딩은 단순노동자다. 환경 역시 경제학에서는 효율과 형평성 가운데 형평성 비중이 더 크다. 구체적 계획을 못 봐서 함부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교육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 한 명을 졸업시키는 데 몇억이 든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누가 아이를 키울까. 교육제도를 혁신해 사교육이 사라지게 하고 모든 것이 공교육에서 할 수 있다면 아이를 안 낳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 직업학교로 입시지옥과 직업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유럽에서도 직업노선을 어릴 때부터 정해 직업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과잉·획일적 교육인데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 노동력을 끌어와야 하는 것 아닐까.

△정서 문제도 있지만 문을 열기 전에 확실히 정리해야 할 건 우리 노동시장의 이원화다. 저임금 노동시장은 외국인 노동자와 겹칠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인 것 같다.



최일권 경제부장 igchoi@asiae.co.kr
김은별 기자 silversta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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