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 법조팀장 |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위법성(違法性)과 불법(不法)은 흔히 같은 말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밀히 따져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위법성이 규범과 행위의 충돌을 의미한다면 불법은 행위에 의해 실현되고 법에 의해 부정적으로 평가된 반가치 자체다.
즉 위법성은 법질서에 반한다는 순수한 관계적 개념으로 언제나 단일하고 동일한 반면, 불법은 위법한 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실체적 개념으로 그 양과 질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살인죄를 저지른 범인이라도 죄질이 더 나쁘다고 하는 것은 불법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일 뿐 법을 위반했다는 위법성의 측면에선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은 내 얘기가 아니라 형법 교과서에 나오는 설명이다.
한편 우리 형법은 정당방위, 긴급피난, 정당행위 등 위법성조각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라도 규범적으로 이를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경우 범죄가 성립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가령 살인을 저지르려는 범인을 제압하기 위해 범인을 폭행하거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의 배를 갈라도 폭행죄나 상해죄로 처벌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들 위법성조각사유 때문이다.
하지만 정당방위나 정당행위처럼 보이는 행위가 언제나 처벌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각 위법성조각사유들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현재성이나 긴급성 등 각 사유마다의 요건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상당한 이유’ 혹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라는 공통된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지루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건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들 중에 이 같은 위법성과 불법에 대한 상식적인 개념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과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사건이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은 당시 법적으로 출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던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을 저지하기 위해 검사가 허위의 공문서를 만들고 가짜 내사번호를 사용해 출국을 금지시켰고, 사후에 법무부나 검찰의 간부들이 그 같은 위법행위의 은폐(수습)에 나섰다는 게 사건의 본질이다.
그리고 월성 1호기 사건은 ‘원전 폐쇄’라는 정부 정책을 조기에 실현할 목적으로 산업부 등 공무원들의 주도로 월성 1호기 원전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고, 감사원 감사를 통해 그 같은 조작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감사 직전 방대한 양의 공적인 전자기록들을 삭제해버린 게 본질이다.
검찰의 수사 대상은 바로 그 같은 범죄행위들이며, 각 행위들은 형법상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들이다.
그런데 여당을 중심으로 이들 사건의 본질을 흐려 여론을 호도하려는 주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럼 김학의가 도주하는 걸 그대로 놔뒀어야 했느냐?”며 김학의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등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점을 부각시켜 당시 저질러진 또 다른 범죄행위들의 불법성을 희석시키거나 정당화하려는 것이나, “검찰이 정부 정책에 관여하는 건 정치검찰”이라고 공격하며 명백한 범죄행위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정치적 의도를 가진 과잉수사로 몰아가는 행태가 바로 그런 경우다.
먼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의 경우 2019년 사건 발생 직전까지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 민간인 조사단원으로 참여하며 직접 김학의 사건을 다뤘던 박준영 변호사가 “당시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금지는 근거가 없었다”며 “정의실현을 위해 불가피한 업무처리였다는 주장은 무리한 주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변호사는 “제가 김학의 사건 기록을 보지 않았다면, 저는 ‘정의의 실현’으로 이 상황을 해석했을 것”이라며 “‘사필귀정’, ‘권선징악’이라는 가치의 실현 사례로 바라봤을 것”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그가 명확히 기억하는 당시 상황은 사건 발생 열흘 전인 2019년 3월 12일 과거사위원회가 김학의 사건을 포함한 과거사 조사대상사건의 진상조사 활동기한 연장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는 물론 더 이상의 조사를 이어갈 계획도 없었다.
또 결과적으로도 긴급출국금지 당시 문제 삼았던 혐의들은 전부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거나 면소 판결을 받았고, 일부 유죄가 선고된 혐의들은 긴급출국금지 이후에 수십 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이잡듯이 뒤져 찾아낸 (별건) 혐의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긴급출국금지 당시 김 전 차관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놓고 봐도 불가피한 출금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박 변호사의 설명이다.
안타까운 점은 김 전 차관의 출국금지 과정에서 저질러진 범죄행위를 엄단해야 한다는 것과 그 전에 검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인데 여당이나 법무부가 “김학의는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검찰이 부실수사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잡아서 다시 수사해야 한다”, “그걸 위해선 어느 정도의 불법은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논리로 사건의 본질을 덮으려하고, 거기에 많은 국민들이 현혹되고 있는 현실이다.
김학의 불법출금 과정에서 빚어진 범죄행위를 철저히 수사해 엄벌하자는 것이 절대 김 전 차관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애초 김 전 차관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검찰을 비난하고 책임을 묻는 것과 사후에 저질러진 범죄행위를 처벌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법이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선 조작과 불법이 다시 자행되지 않도록 범죄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하자는 것이다.
정부 정책 관철을 위해 객관적이어야 할 평가 수치를 조작하고, 그 조작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감사를 앞두고 감사에 필요한 공전자기록들을 폴더 채로 삭제한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이 명백한 범죄행위다.
공교롭게도 두 건의 사건에는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한 공무원들의 과잉충성이 빚어낸 일이라는 얘기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며칠 전 문 대통령은 검경의 명운을 건 철저한 진상규명을 지시했다. 탈원전 내지 원전의 단계적 폐쇄는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지금 이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가면 차후에 똑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명분만 있으면 범죄행위를 통해서라도 목적만 이루면 된다는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원하고 정부 여당이 지지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공문서를 위조해도, 평가를 조작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여당이 이번 사건을 아직 조직도 정비되지 않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하자고 목소리를 내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공수처법상 관할을 내세우고 있지만 아직 처장, 차장 외에 단 한명의 검사나 수사관도 뽑지 못해 수사할 여건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같은 주장을 하는 속내에는, ‘공수처로 가져오면 검찰이 수사하는 것보다는 훨씬 약하게 수사하겠지’, ‘기소를 해도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이규원 검사 정도에서 그치고 배후 윗선에 대한 수사는 안 하겠지’하는 기대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믿을 수 없어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어렵게 출범시킨 공수처를 이런 목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건, 공수처가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비난이나 권력자에게 또 하나의 칼을 쥐어주는 격이라는 우려를 현실로 만드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박범계 신임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25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학의 사건의 공수처 이첩에 대한 여당 의원의 질의에 “공수처법에 의하면 현재 상태에서 공수처로 이첩하는 게 옳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특히 당시 그는 이번 사건에 대해 “본질은 절차적 정의냐, 실체적 정의냐 문제 아니겠느냐?”며 “왜 이 사건을 갖고 검찰이 말하는 절차적 정의의 표본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 저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밝혔는데 매우 부적절한 발언으로 보인다.
마치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에서 만큼은 ‘나쁜 사람을 응징한다’는 실체적 정의 구현을 위해 긴급출금 과정에서 벌어진 허위공문서작성 등 절차적 불법은 용서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법치주의를 지키고 실현해가야 할 책무를 진 법무부 장관이 해선 안 될 말이라 생각된다.
박 장관은 ‘왜 하필 이 사건에서 유독 절차적 정의를 문제 삼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절차적 정의는 특정 사건에서는 문제되고 또 다른 사건에서는 무시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정부 말기 시작돼 현 정권 출범의 바탕이 된 ‘국정농단’ 수사나 문재인정부 들어 시작된 ‘사법농단’ 수사 등 일련의 적폐청산 과정에는 모두 그 같은 절차적 정의를 무시한 불법에 대한 엄정한 심판이 수반됐다. 절차적 정의는 항상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게 법치주의의 원칙이다.
물러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장관에게 출국금지 권한이 있으니까 문제가 없다”고 한 발언이나 박 장관이 “왜 이 사건을 절차적 정의의 표본으로 삼아야 하는가”라고 한 발언은 한창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게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이드라인은 공정하거나 정당하지 않아 보인다.
과거 검찰은 탱크를 앞세워 정권을 찬탈하고 광주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려 면죄부를 준 적이 있다.
‘과정이 불법적이었다 해도 뭐가 중요한가, 결과적으로 권력을 차지했는데’라는 논리였다. 놀랍게도 25년여가 지난 지금 비슷한 주장이 여권과 법무부에서 나오고 있다. “불법이 있었으면 어때, 결국 나쁜 놈 잡았자나”라고 말이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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