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1 (토)

이슈 헌정사 첫 판사 탄핵소추

'사법농단' 줄줄이 무죄에 보복?…판사 탄핵론 불붙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을 내린 날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4년이 지난 2021년. 탄핵 시계의 ‘카운트다운’이 다시 시작되는 분위기다. 이번엔 법관을 향해서다.

중앙일보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까지 가세한 판사 탄핵론



29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내달 1일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이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동료 의원들과 함께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사법농단 판사 탄핵소추안 발의· 가결을 위해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이낙연 대표도 전날 "대한민국 사법체계를 수호해야 할 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묵과하고 탄핵소추 요구를 외면한다면 국회의 직무유기가 될 것"이라고 탄핵론에 가세했다.

법관에 대한 탄핵안 발의는 1985년 유태흥 대법원장, 2009년 신영철 대법관에 이어 헌정 사상 세 번째다. 다만 아직까진 법관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적은 없다.



탄핵 대상 지목된 임 부장판사는 누구?



임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에게 청탁을 받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판사였던 임 부장판사가 사건을 담당한 중앙지법 형사30부 재판장이던 이동근 부장판사에게 칼럼 내용이 ‘사실무근’임을 판결문에 포함해 달라며 재판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임 부장판사는 다음 달 28일 임기 만료로 퇴임할 예정이다.



‘법관 탄핵론’ 불 지핀 1심 선고



무죄를 선고받은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론’이 불거진 건 1심이 내린 결론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를 했다"며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을 인정했다. 하지만 해당 행위가 형사수석 부장판사의 일반적 직무 권한(직권)에 속하지 않는다며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개별 법관의 독립된 재판권에 개입할 수 있는 '직권'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봤다. ‘개인적 친분’을 이용한 재판 관여 행위는 위헌적이지만 형법상 직권남용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중앙일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되 임성근, 이민걸, 신광렬 부장판사(왼쪽부터).



위헌적이지만 처벌은 불가하다는 결론에 ‘법관 탄핵’ 논의는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법관징계법상 최고 법관의 징계수위가 정직 1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다. 여당 소속 판사 출신 의원들을 주축으로 양승태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을 겨냥한 탄핵론이 일어난 것이다. 임 부장판사 탄핵을 추진한 이유에 대해 이탄희 의원은 “1심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헌법에 반한다고 판시했다”며 “이는 탄핵으로 심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 부장판사 측 “헌법 위반 행위 해당 않아”



29일 임 부장판사는 민주당의 탄핵 추진 결정에 대해 변호인인 윤근수 변호사를 통해 “임 부장판사 사건은 항소심에서 치열하게 사실관계와 법리 공방이 이뤄지고 있다”며 “법률상 명확한 평가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문에도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만 있을 뿐 임 부장판사의 발언은 의견제시·조언에 불과하고 재판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며 “탄핵이 요청되는 정도의 헌법 위반에는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탄핵 여부를 가리려면 국회법 제130조 제1항에 규정한 법제사법위원회의 회부를 통한 사실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아직 1만여 쪽에 달하는 사건 증거와 쌍방의 주장도 검토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탄핵의 목적은 공직자를 공직에서 배제(파면)하기 위한 것인데 임 판사는 오는 2월 28일 임기 만료로 퇴직이 예정돼 있어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 부장판사가 29일 오후 서울고법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9일 비슷한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신광렬 부장판사도 “탄핵은 범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수사·기소도 없이 공직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파면하는 제도”라며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탄핵은 곤란하다”고 했다. 신 부장판사는 이날 지난 2016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계 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한 수사기록을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 기소된 사건 항소심에서 1심에 이어 무죄 선고를 받았다.



법조계도 "법관 탄핵론은 정치적 퍼포먼스"



법조계에서도 여권의 임 부장판사 탄핵 추진에 대해 ‘정치적 퍼포먼스’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현직 판사는 “임 부장판사는 임기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2월 말 물러나기로 돼 있는데 뒤늦게 탄핵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했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판사들에 대해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가 선고된 데 대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에 밝은 한 법조계 인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는데 헌법과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 확인한 뒤 관련 행위가 법관 탄핵 사유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며 “과정이 만만치 않은데 탄핵소추 결정은 사실상 탄핵 효과를 자아내기 위한 정치적 행위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박현주 park.hyunjoo@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