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직 시절 동료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학교에 알린 뒤 재임용 부적격 통보 받은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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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고소하면 앞으로 정교수는 평생 못 될 것 같아…”
자신을 성추행한 동료 교수를 고소하기 망설이던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린 76세 노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야 이년아, 너 그러면 계속 참고 당하면서 살래?”
교수를 평생 꿈꿔온 딸이었고, 딸의 꿈은 엄마의 꿈이었다. 울먹이는 다 큰 딸에게 엄마는 힘이 되어 주었다.
“교수 안 돼도 좋으니 끝까지 해보자.”
지난 2015년,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의 ‘미투(MeToo) 재판’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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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재판 모두 이겼지만…
6년에 걸쳐 진행된 4건의 미투 재판은 남 전 교수의 ‘전승’이었다. 재판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로 산재 승인까지 받았다. 지난 2014년 4월 학과행사(MT)에서 남 전 교수에게 강제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은 가해자 이모 교수는 민·형사 소송에서 모두 패소했다.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과 해고무효 소송에서도 이겼다. 지난 2004년 시간강사를 시작으로 연구원과 초빙교수를 거쳐 대우 전임교수로 12년간 성균관대에서 재직해 온 남 전 교수는 미투를 폭로한 해(2015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지난해 10월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한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온 뒤에도 남 전 교수는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남 전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미투 이후의 현실을 토로했다.
재직 시절 동료 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학교에 알린 뒤 재임용 부적격 통보 받은 남정숙 전 성균관대 교수가 22일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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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일상
Q : 6년간의 재판 끝에 미투와 관련한 모든 재판에서 승소했다. 피해 회복은 어느 정도로 이뤄졌나.
A : 재판 결과만 놓고 본다면 나는 혜택 받은 1%라고 생각한다. 미투 운동이 촉발된 이후 수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지만 재판까지 간 사례가 많지 않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승소가 어려운 것이 미투 재판의 현실이다. 그러나, 나 역시 여전히 피해 회복은 요원하다. 소송을 결심할 당시만 하더라도 재판에서 이기면 모든 게 다 끝나고 해결될 줄 알았다. 부당하게 해고된 사실을 법원이 인정해준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가해자나 학교 측의 진정 어린 사과도 없을뿐더러 학교는 법원의 명령에 마지못해 복직을 제안하면서도 굴욕적인 경감 조건을 내세울 뿐이다.
Q : 굴욕적인 조건은 무엇인가?
A : 지난해 10월 해고무효 소송에서 승소하자 5년 만에 학교 측이 복직을 처음으로 제안해왔다. 그런데 재판이 이뤄지는 시기에 “대우교수에 대한 규정이 변경되었다”면서 이제는 시급을 받는 강사처럼 교묘하게 신분과 지위, 급여가 강등된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법원의 판결에 따라 부당해고 이전의 처우와 직급, 급여 등을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러나, 학교 측은 규정이 바뀌어 어쩔 수 없다며 나를 ‘비전임교원임에도 파렴치한 요구를 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다.
Q : 권력형 미투 가해자들의 대응에 대한 생각은.
A :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미투에는 일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성폭력이 발생하고 이를 폭로하면 조직적 차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낙인찍기가 이뤄진다. 나 역시 문제를 제기하자 ‘그 교수(가해자)와 평소 로맨스가 있었던 것 아니냐’ 식의 질문을 무수히 받았다.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법대로 하라’며 큰소리치는 것이 가해자와 조직의 논리다. 그렇게 미투는 기나긴 법적 다툼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가 승소해도 피해자에게 ‘해피엔딩’은 오지 않는다.
지난 201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명동 YWCA회관 앞에서 한국YWCA연합회원들이 '3.8 여성의 날 기념 미투운동 지지와 성폭력 근절을 위한 YWCA 행진'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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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재판에서 이겨도 ‘해피엔딩’이 아닌 이유는?
A : 미투 이후 피해자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일상으로의 회복’이다. 그러나 가해자 또는 가해자가 몸담고 있던 조직은 미투 이후 피해자가 되돌아갈 자리를 없애버리는 식으로 보복한다. 법원의 판결은 따라야겠고, 그렇다고 미투를 폭로한 괘씸한 피해자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는 없고…. 이러한 조직논리가 피해자의 ‘과거의 평온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자리’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 입장에서는 복직하기 위한 과정 자체가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인 셈이다.
Q : 승소 후에도 여전히 미투 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A : 그동안 1% 권력자들의 성폭력에 대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99%의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끌어냈다. 미투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급속히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동안 말 못했던 피해 여성들의 공감과 전 국민의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마음의 공감’은 일으켰으나 ‘시스템의 공감’은 여전히 부재하다. 피해자들이 사회에 제대로 복귀하고 보호받기 위해서는 결국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모순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결국 1% 권력자들이기 때문이다.
Q :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뭔가.
A : 시스템을 바꾸는 건 결국 정치의 문제다. 미투 운동 당시 이를 바꿔보고자 여성단체와 여성 국회의원들과 접촉을 많이 시도했다. 그러나 여성계에 일면식도 없던 이른바 ‘듣보잡’이었던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없었다. 미투를 단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여성단체와 여성의원들의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법을 만드는 1% 권력자들의 모습이 이러니 성범죄 피해자들의 현실이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미투는 결국 약자에 대한 인권 문제다. 피해자들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사회가 이를 보호해주고 이들의 복귀를 도울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남 전 교수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서산대사의 시구 ‘답설가(踏雪歌)’를 거론했다.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남 전 교수는 “미투로 인해 부당해고를 당했던 저의 앞으로의 행보가 중요한 이유가 이 글귀에 담겨 있다”며 “학교 측의 굴욕적인 경감 조건을 받아들이면서 복직을 하게 된다면 이를 계기로 앞으로 미투로 인해 부당한 처우를 받는 피해자들의 사례가 더 많아질 것 같아 두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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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남 전 교수 일방적 주장”
남 전 교수에게 복직을 제안했던 성균관대는 현재 해고무효확인 소송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성균관대 측은 “굴욕적인 경감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은 남 전 교수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복직에 대한 논의는 현재 계속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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