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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음주운전 사고와 처벌

“반성 이유로 감형 받고도 항소…” 음주운전에 6살 잃은 부모의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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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형량·가해자 대응 억장 무너져

구멍 뚫린 가족의 삶 안정 못찾아


한겨레

이아무개(6)군 유골함.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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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 음주운전자’에게 여섯살 막내아들을 잃은 엄마 백아무개(41)씨는 18일 오전 할 말을 잃었다. 지난 12일 1심 재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은 김아무개(59)씨가 이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9월6일 오후 3시30분께 서울 서대문구에서 낮술을 하고 승용차를 몰다 인도의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쓰러진 가로등이 햄버거 가게 앞 인도에 있던 아이를 덮쳤다. 백씨는 이날 오후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계속 울먹였다.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매일 항소 여부를 확인했어요. 김씨가 반성문도 100여통 쓰고, 선고날 입장하면서 무릎 꿇고 반성하길래 혹시나 항소를 안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막내를 허망하게 잃은 엄마는 1심 선고가 나면 조금은 마음이 안정될 거라 기대했지만 재판이 다시 진행된다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음주운전은 제발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사고는 한순간이었지만 백씨와 아빠 이아무개(42)씨, 아이의 형(10) 등 남은 가족들의 삶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형은 사고 뒤 말수가 줄어들었다. 형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를 “엄마, 집이 너무 조용해”라고 에둘러 꺼낸다. 형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휴교·휴원으로 동생과 집에서 내내 붙어 있었다. “동생과 함께 쓰던 방을 혼자서는 못 들어가요. 누군가가 같이 들어가지 않으면 연필도 못 가져 나와요.” 사고 당시 형은 도로 쪽을 보고 있어서 가로등을 피했다. 첫째가 “엄마, 나만 피해서 미안해”라고 할 때마다 엄마의 마음은 찢어진다.

사고 당일 아이들이 만나러 갔던 외할머니는 매일 새벽과 밤, 불 꺼진 햄버거 가게 앞에서 기도한다. 아이의 친할아버지는 집에 막내가 좋아하던 과자와 과일을 차려놓고 매일 아이가 잠든 추모공원에 간다. 백씨는 “아이가 올해 학교 입학을 많이 기대했다”고 말했다. “아이가 ‘형아처럼 책가방 메고 같이 학교 갈 수 있다’고 좋아했어요. 너무나 당연한 일들을 우리 아이는 누리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보내니 많이 힘들어요.”

이들은 1심 선고에서 가해자가 엄벌을 받으면 ‘텅 빈 구멍’이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빠 이씨는 계속 울분에 젖어 있다가 1심 선고를 앞두고 마음을 추슬렀다. 선고 전 법정 앞에서 만난 가해자의 20대 아들에게 준비한 편지와 용돈을 건넸다. 사고 당시 아이를 잃은 분노로 욕을 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미안하게도 나는 너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 너도 많이 지치고 힘들 테지만, 잘 이겨내야 하고, 너의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가해자의 아들은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1심은 검찰 구형(징역 10년)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다. 자동차보험 가입과 반성문 제출이 감형 사유로 고려됐다. 형은 아빠에게 재판 결과를 물었다고 한다. “어떻게 됐을 거 같냐고 되물었더니 첫째가 ‘한 30년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더라고요. ‘판사님이 8년이라고 하셨어’라고 하니 첫째가 잠시 생각한 뒤 ‘8년이면 나는 아직 고등학생밖에 안 되는데…’라고 말했어요. 그때도 자기는 학생이니 힘이 없지 않냐면서요.”

이씨는 “안 해야 된다는 것 다들 알고 계시지만 음주운전은 정말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저희처럼 갑작스레 아이를 잃은 피해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가해자 가족들도 절대 치유가 되지 않아요.”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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