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출마 선언으로 완성된 ‘어게인 2011’…여권 제3후보도 거론돼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이 1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에서 서울시장 선거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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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게, 섬세하게.” 1월 13일 이태원 골목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의원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다. “14분의 선언문에 자신의 비전, 각오, 다짐을 꾹꾹 눌러담았다”는 출마선언문을 읽다 보면 출마를 뒷받침하고 있는 선거전문가들의 솜씨가 느껴진다. ‘코로나19 위기 속 전임 시장의 성범죄’를 언급하는 한편, “서울 전역에 백신 접종 셔틀버스를 운행해 집앞 골목,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백신을 맞게 해드리겠다”고 거론하고 있다. 추상적이지 않고 그림이 그려지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선언문이다.
만약 그가 이번 보궐선거에서 야권 측 유력주자로 부상하게 된다면 ‘신의 한수’는 종편채널에서 방영한 <아내의 맛> 출연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 전 의원이 남편과 딸과 함께 보낸 ‘어느 평범한 하루’라는 콘셉트로 연출돼 있지만 시퀀스마다 그동안 자신에게 제기됐던 의혹을 반박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아침에 세안 뒤 민얼굴을 노출하고, 머릿결에 남아 있는 비누거품을 포커싱하는 것은 2011년 선거 당시 제기됐던 ‘1억 피부과 의혹’에 대한 반박이다. 딸 유나씨가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드럼으로 연주하는 장면은 성신여대 부정입시 의혹에 대해 ‘진짜 드럼 치는 실력이 있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이날 방영분엔 아들 현조씨가 나오지 않았는데, 입대를 앞두고 나 전 의원은 인터넷고무신카페에 가입해 준비물을 알아보는 ‘입대를 앞둔 자식 걱정에 잠 못 드는 평범한 엄마’ 역할을 충실히 했다. 만약 민주당 후보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결정된다면 한주 텀으로 나란히 방영된 이 종편 예능방송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박영선 대 야권 슈퍼스타K?
“결국 2011년 박원순 게임과 비슷하게 간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지 않을 것이다. 박영선과 야권 슈퍼스타K, 월드리그를 통해 결정된 후보의 싸움이다.” 선거컨설턴트 출신인 신철우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전이 막 시작된 지난해 11월, 기자는 이번 선거는 10년 전 서울시장 재보궐의 미러링, 그러니까 공수만 교대해 거의 비슷하게 치러지는 양상이 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무소속 후보까지를 아우르는 야권 단일후보가 집권 여당 후보에 대결하는 구도가 된다는 얘기다. 게다가 나경원 전 의원이 출마 선언하면서 당시 등장인물까지 거의 고스란히 갈 가능성이 커졌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그 누구도 서울시장 선거 승리를 기대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궐선거가 치러진 이유를 제공한 주체가 바로 한나라당이 배출한 시장이었으니 시민의 선택을 바라기는 어려웠다. 실제 우리 당 어느 후보를 넣고 여론조사를 해봐도, 박원순 후보에 20% 포인트 넘게 뒤처졌다. 그러니 아무도 선거에 나서지 않으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 당대표가 저에게 출마를 요청했고 저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출마했다.” 1월 5일, 나 전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10년 전 출마의 비하인드였다. 그는 당시 여권후보로 야권 단일후보가 된 박원순 시민후보에게 졌다. 나 전 의원이 당시 뒷사정을 밝힌 것은 같은 당의 오신환 후보가 “10년 전 박원순 시장 등장에 조연을 한 사람”으로 그와 오세훈 전 시장 등을 싸잡아 공개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자신은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불리한 조건에도 나가 꿋꿋이 싸웠는데, 그게 매도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언급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월 14일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도깨비시장 한 식당에서 ‘소상공인 버팀목자금’ 집행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듣던 중 밀린 임대료 얘기가 나오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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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선거의 4대 변수를 구도와 인물 그리고 명분과 정책으로 꼽는다. “분명 그런 면이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여권 후보가 된다면 구도와 인물, 비슷하다. 명분은 똑같다. 정책은 물론 시간이 흘렀으니 이슈가 되는 정책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여야 모두 부동산 주거안정 위주로 공약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구도싸움이다. 야권에서 단일후보가 되냐 안 되냐, 여당이 얼마나 자신의 집토끼를 지켜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2011년 보궐과 공통점과 차이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러나 그는 2021년의 안철수는 2011년의 최종승자, 박원순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안철수가 말하는 야권단일화의 속뜻은 국민의힘 바깥에 있는 자신으로 단일화해야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야권단일화를 외치지만, 나를 만들어달라, 내가 나가야 이긴다는 건 얼마나 정치력 없는 발언인가. 또 하나의 차이는 정치인 9년 차를 바라보는 안철수는 2011년 시민운동가에서 이제 막 정치권으로 건너온 박원순과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 그와 함께한 사람 중 돌아선 사람들이 이미 너무 많다.”
안철수 지지율 지금이 정점일까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현재 받고 있는 높은 서울시장 적합성은 인지도이며, 국민의힘이 자기 후보를 확정하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빠져나갈 것이라는 게 기자가 접촉한 선거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지금이 안철수 대표 지지율이 피크라는 것이다. 장 소장은 안 대표가 국민의당에 입당하는 형태든 어떤 형태든 야권 단일후보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의 야권이 그만큼 승리에 대해 간절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1년 뒤 치를 대선의 전초전이다. 여기서 패배한 쪽은 남은 1년간 책임공방으로 자멸할 가능성도 있다.
의문은 여권은 절실하지 않냐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는 보수 정부 10년간 진보진영과 진보적 시민단체의 방패막이였다. 많은 인사가 박원순 서울시에 들어가 행정 경험을 쌓았고, 정치역량을 쌓았다. 서울시장의 교체는 박원순 시장 10년 시기 만들어진 정책과 거버넌스체제의 청산을 의미한다. 당장 선거 직후부터 열릴 대선국면에서 ‘박원순 서울시에서 벌어지던 권력형 비리’라며 공격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박원순 10년은 ‘진보의 위선과 무능, 부패와 욕심’이 권력의 비호를 받았던 시기로 공격당할 것이다. 그러나 여권에서 서울시장 선거의 ‘절박함’은 그리 감지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 박영선 장관은 출마 선언을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결단을 내릴 시점을 1월 말 정도로 이야기하며 “고민하고 있다. 지켜봐 달라”는 메시지만 내고 있다. 한때 출마 여부에 대한 고뇌를 거듭했던 박주민 의원은 사실상 접은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권과 여권 주변에서 출마 선언을 한 인사는 현재까지 우상호 의원과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밖에 없다. 당원들을 대상으로 적합 후보를 조사하고 출마 의사 여부를 확인해 후보를 확정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춘 열린민주당에서는 정봉주 전 의원이 당내 경선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 전 의원은 정확히 말해 출마 선언이라기보다 ‘출마권유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우 의원과 김진애 의원은 1월 12일 만나 각자가 당의 최종후보로 결정되는 경우 후보단일화를 하겠다는 합의안을 만들었다. 우 의원 측은 “당 차원이 아닌 개인 결정”이라며 “후보 간의 세력연대가 아니라 가치연대”라고 밝혔다.
세세한 상황 차이를 지우고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면 나 전 의원이 밝힌 2011년 한나라당, 당시 여권의 상황과 비슷하다. 막상 선거전이 시작되자 여권에서 적임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유력주자로 거론되는 박영선 장관이 망설이는 사이 선거국면의 주요 모멘텀과 스포트라이트는 야권으로 넘어갔다.
1월 12일 결과적으로 해프닝성 오보가 되어버린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이승현 한국외국기업 명예회장 영입설은 야권 단일후보 국면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야권으로선 더 이상의 깜짝 후보는 없다. 현재까지 자천타천으로 출마 선언을 했거나 거론된 인사들 사이로 각축전의 범위는 좁혀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012년 자신의 대선후보 자진사퇴를 맹비난했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를 1월 9일 만나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액자를 선물받았다고 1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 안철수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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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은 왜 절실하지 않을까
“오세훈, 나경원, 안철수, 박영선. 모두 10년 전에 거론되던 사람이다. 이번 선거의 의미는 박원순 시장의 죽음과 책임 그리고 여러 가지 실망 등의 뒤섞인 것인데 그런 기대에 부응 못 하는 판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유창선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어찌 됐든 심판선거가 될 가능성이 큰 선거인데, 안철수의 등장으로 국민의힘에서 오히려 새로운 인물이 부상할 기회를 눌러버렸다는 것이 아쉽다. 안철수는 쉽게 말하자면 메이저리그에서 안 풀리니까 마이너리그로 내려와 자기가 먹겠다는 것 아닌가. 국민의힘으로서 바람직한 것은 새로운 인물이 치고 올라가면서 나경원, 오세훈 등을 꺾어버리고 대선을 내다보며 안철수까지 꺾고 대선을 내다볼 달라진 정당의 모습이었다. 사실 나경원이나 오세훈, 안철수 등 몇 번씩 출마했지 않나. 새로운 인물이 나오도록 비켜줘야 하지 않았을까.”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위원은 여권의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구도가 명확히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거는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여권 유력주자(박영선 등)는 아직도 대통령 지지율 추이에 따라 출마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 대통령 지지율 35~40%가 여권이 그나마 서울시장 선거에 여권주자가 희망을 걸 수 있는 박스권으로 봤는데 지금은 역설적으로 그 박스권이 안 나겠다고 버티는 힘이 되고 있다. 이 지지율마저 붕괴되면 결국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설지 모른다. 현재는 출마 의사를 접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박주민이나, 아니면 아예 당 밖에서 여권성향 인사를 찾을 수도 있다.”
박 위원이 당 밖에서 ‘도전 가능성 있는 인사’로 거론한 인사는 교육평론가 이범, 다음 창업자 이재웅 등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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