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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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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의 ‘독한’ 출마 선언…‘빠루 여장군’ 컨셉트가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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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먹자골목 인근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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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귀족’, ‘서울법대 나온 강남 부유층’ 등 그동안 따라붙었던 부정적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고심을 거듭한 흔적이 역력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끝’이라는 절박감일까? 장소 선정부터 의상 코디까지 모든 컨셉트를 ‘탈귀족’에 맞춘 것 같았다.

‘탈귀족’ 컨셉트로 잡은 ‘이태원 출사표’

일찌감치 서울시장 출마를 예고해온 나경원 전 의원은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먹자골목을 돌며 청년 상인들의 고충을 듣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회색 외투에 검정 스웨터, 검정색 운동화 차림이었다. 기자회견장 주변 상가에는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폐업하거나 ‘임대문의’를 붙여놓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장사하고 싶다’는 문구가 내걸려있는 골목길 중간에 서울시장 출마선언을 위한 자주색 단상이 세워졌다.

단상에 오른 나 전 의원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많이 힘드시죠”였다. 이날 하루는 철저하게 ‘아픔에 공감하는’ 톤과 메시지로 갈 작정인 듯했다. “서울은 울고 있습니다. 서울은 아파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지칠 대로 지쳐 계십니다. 왜 나는 이토록 힘들어야만 하는가. 시민의 마음과 영혼은 병들어갑니다.” 감성적인 단문들이 ‘스타카토’ 찍듯 이어졌다. 이어서 나온 “독하고, 섬세하게”라는 말. 나경원이 고심 끝에 선택한 출마 구호였다. “서울시민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내겠다는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구석구석 살피고 챙기는 섬세한 행정으로 약자를 돌보겠습니다. 독하게, 섬세하게 해내겠습니다.”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서울형 기본소득’

나 전 의원은 국회 대신 골목길을 출마 회견 장소로 정한 이유에 대해 “저기 적힌 ‘장사하고 싶습니다’ 저 한마디가 많은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민에게 가장 힘들고, 아픈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보듬는 게 서울시장이 되는 사람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기침체와 양극화를 시각적으로 뚜렷하게 보여주는 이태원을 자영업·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부각하면서 위기 극복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할 최적의 장소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그가 이날 던진 화두 중에는 ‘기본소득’도 있다. 진보색이 뚜렷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간판 브랜드로 삼아온 정책이다. 나 전 의원은 “빈곤의 덫을 제거하기 위해 서울형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겠다. 최저생계비조차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서울엔 절대 없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기본소득을 언제 얼마나 나눠주겠다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 나중에 말씀드리겠다”며 “서울형 기본소득은 최저생계비조차 보장되지 않는 20만 가구에 해당한다. 절대 빈곤을 추방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본소득’의 핵심적 특징인 ‘보편지급’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내용이다. 전체 서울시민이 아닌 빈곤층의 최저소득 보장을 위해 지방정부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얘기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가 최저생계비 이하 근로소득 가구에 지원하겠다고 공약한 ‘서울형 최저소득보장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안철수·오세훈 비판은 ‘독하게’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군을 겨냥한 비판은 독했다. 그는 “쉽게 물러서고 유불리를 따지는 사람에겐 이 중대한 선거를 맡길 수 없다. 중요한 정치 변곡점마다 결국 이 정권에 도움을 준 사람이 어떻게 야권을 대표할 수 있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철수’라는 이름만 직접 언급하지 않았을 뿐, 누구라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떠올리게 만들 발언이다. 9년 전 주변에서 만류하는 무상급식 찬반투표를 강행해 서울시장직을 스스로 내던졌다가, 최근에는 ‘조건부 출마선언’으로 구설에 오른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함께 겨냥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재선 의원은 “안 대표와 오 전 시장을 둘 다 저격한 것으로 보였다. 국민의힘 대표 주자로 치고 올라오기 위해 작정하고 ‘독하게’ 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단일화 논의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안 대표의 반응은 바로 나왔다. 그는 “우리 상대는 여권후보다. 그것만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주문했다. 나중에 단일화의 시너지를 온전히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과도한 상호 비판은 자제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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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전 의원이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먹자골목 인근에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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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루 여장군’ 이미지 재소환, 통할까?

전임 시장의 성비위가 원인이 돼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도 강조했다. ‘여성후보’의 강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그는 “이번 선거는 전임 시장의 여성 인권 유린에서 비롯됐다. 영원히 성폭력을 추방시키겠다는 독한 의지와 여성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섬세함을 갖춘 후보만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 두 아이의 엄마 나경원,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나경원이 따뜻하게, 포근하게, 시민을 안아드리겠다”고 했다. 코로나 방역 성공국가로 꼽히는 뉴질랜드와 타이완의 총리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독하고 섬세한 그들의 리더십이 이제 바로 이곳 서울에 필요하다”고 했다.

‘독한’ 면모를 강조할 때는 2019년 원내대표 시절 ‘패스트트랙 전투’를 진두지휘하며 쌓았던 ‘빠루 든 여장군’ 이미지를 활용하기도 했다. 나 전 의원은 “저는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오만에 가장 앞장서서 맞서 싸운 소신의 정치인이다. 누군가는 숨어서 눈치보고 망설일 때, 누군가는 모호한 입장을 반복할 때, 저는 높이 투쟁의 깃발을 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나 전 의원의 ‘투사 이미지’ 부각 전술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구의 한 의원은 “왜 아직도 투사 이미지를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서울시민 가운데 극우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는 ‘우파 전사’를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했다.

김희정 비서실장, 전희경 대변인…

나 전 의원의 이번 도전은 2011년 이후 10년 만이다. 지난 총선에서 낙선한 뒤 9개월만의 현실 정치 복귀한 나 전 의원이 재보선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승부수를 띄웠다는 분석이다. 특히 그는 오랜 시간 출마 준비 과정을 거치며, 캠프 라인업을 짜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비서실장을 맡았고, 김종석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정책을 총괄 담당한다. 대변인은 전희경 전 미래통합당 의원, 박용찬 서울 영등포을 당협위원장이 맡았다. 나 전 의원 쪽 관계자는 “이전부터 보수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캠프 꾸릴 준비를 해왔다. 나 전 의원이 사이가 좋지 않았던 홍준표 의원까지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한 것 보면 얼마나 이번 선거를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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