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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덮어놓고 산아제한, 저출산 심각성 못 알아챈 한국사회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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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30년 전 경향신문에는 ‘산아제한서 모자보건 중심이동’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존에 인구증가율을 낮추는 것에 중점을 뒀던 정부의 인구정책이 모자보건사업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기사를 아래에 옮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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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인구정책이 전환기를 맞고있다. 지난 30년 간 인구증가를 억제하는 방향에 역점을 두고 추진돼온 가족계획사업이 모자보건과 청소년 성교육등 인구 자질 향상을 위한 사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 이 같은 정책 전환은 1961년 4월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창립되고 같은해 11월 정부가 가족계획사업을 경제개발의 근간이 되는 주요 시책사업으로 채택, 본격적으로 추진한 결과 1960년 3%이던 인구증가율이 1989년 0.97%로 떨어지고 여성의 가임기간 중 출산력도 6명에서 1.6명으로 격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가족계획사업이 이만큼 성과를 거둔 데는 핵가족화 추세에다 소자녀 가치관의 정착에 따른 자발적인 산아제한 등 민간부문의 협조도 컸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를 가족계획사업의 전환기로 설정, 가족계획 예산을 삭감, 정부 지원 피임 보급물량과 대국민 홍보사업을 줄이고 자기부담 피임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정부의 가족계획사업을 일선에서 수행하는 대한가족계획협회에 대한 금년도 국고지원액은 전년대비 7.2% 줄어든 24억77백만원이며 협회의 금년 피임보급량도 전년의 4만51백건에서 3만31백50건으로 대폭 줄어들어 정부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대신 금년부터 소자녀가치관과 피임보급사업은 현재의 탄력을 유지하며 모자보건과 청소년 성교육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모자보건사업은 정부운영의 82개 모자보건센터와가족계획협회에서 운영하는 11개병원에서 영세민가정을 대상으로 ▲분만서비스·산전산후관리 ▲영유아예방접종 ▲육아법등을 실시하는 것.

그러나 인구정책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너무 조급하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한 관계자는“인구 관련 사업의 결과는 빨라야 10년 후에 나타나는데 인구증가율이 1%이하로 떨어졌다고 정부 정책 의지가 느슨해지면 또다시 출산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비뇨기학회가 작년 8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비부담 정관복원 건수가 86년 318명에서 89년에는 911명으로 증가하는 등 소자녀 가치관이 무너지는 징후가 사회 일부에서 발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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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성덕환·윤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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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한 인구증가가 국가적인 문제였던 1960~1980년대 정부는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1960년대)’,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3·3·35’ 표어·1960년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1970년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198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1980년대)’ 같은 가족계획 표어들에는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무시하고, 자녀를 세 명, 네 명씩 낳는 부모들은 주위의 눈총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불과 이삼십년 전까지만 해도 세 자녀 이상을 낳으면 지자체들이 각종 혜택을 주는 현재의 저출산 상황이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이 지나치게 강력하게, 그리고 오래 지속된 탓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목표였던 인구대체 수준 2.1명을 달성한 후에도 빠르게 감소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임기 막바지인 1988년까지 합계출산율을 인구대체 수준 2.1명으로 저하시킨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밀어붙이기식 정책을 추진한 결과 5년이나 앞서 목표치를 달성했습니다. 1984년의 합계출산율은 1.76까지 떨어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은 더욱 빠른 속도로 감소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1994년 합계출산율은 1.66을 기록했고, 1999년에는 1.43, 2002년에는 1.18까지 감소했습니다. 1996년 정부는 ‘인구 자질 및 복지 증진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역시 낮은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 내용이었습니다. 출산율이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출산 억제정책으로 일관한 것입니다. 1997년 이후부터 낮아진 출산율을 외환위기의 영향으로만 인식한 오판도 있었습니다. 1991년 경향신문 기사에 언급됐던 대한가족계획협회의 우려에서 보이는 것처럼 정책 입안자, 수행자 들이 상황을 잘못 읽은 것은 저출산 현상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저출산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정부가 출산율 회복을 위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2005년입니다. 2005년의 합계출산율은 1.08로 당시에는 역대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산아제한 정책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이삼십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듯 현재의 저출산 상황을 해결하는 것 역시 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이를 낳는 부모들을 위한 물질적 지원 외에도 사람의 가치가 존중받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장기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1월 초 경향신문에 게재됐던 ‘[다시 쓰는 인구론]사회·경제문제가 다 내 탓? ‘인구’는 억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 전문가가 제시한 대책을 소개하면서 기사를 맺도록 하겠습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은 인간 사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대전환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짚었다. 신 교수는 “출산율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 인간보다 돈과 권력이 위에 있는 사회의 가치가 바뀌고 인간들을 쥐어짜는 표준적 삶의 기준 대신 개개인을 존중하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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