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대의로 희석시켜 출마 명분 확보하기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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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야권 단일화를 위해 안철수 후보님께 간곡히 제안하고자 한다. 국민의힘으로 들어와 달라. 합당이면 더 좋다. 그러면 저는 출마하지 않고 야권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오세훈 전 시장의 7일 기자회견은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화용론적 상식을 거듭 확인시켰다. ‘단일화를 위한 아름다운 양보 선언’처럼 들렸던 말의 정체는 이어진 후속 발언으로 완곡한 ‘출마 선언’임이 곧 드러났다. “입당이나 합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저는 출마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오 전 시장은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1야당 국민의 힘으로서는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임을 국민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자신의 출마를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려는 책임있는 야당 정치인의 결단으로 받아들여달라는 뜻이다.
■ 안철수 “그게 출마선언 맞나요?”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해 경선을 치를 가능성은 현재로선 ‘제로’에 가깝다. 오 전 시장은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오는 18일부터 우리 당의 후보 등록이 시작된다. 17일까지는 안철수 후보님의 결단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불과 ‘열흘’의 말미를 준 것이다.
안 대표도 이날 통신사들과 한 인터뷰에서 오 전 시장 기자회견에 대해 “그게 출마 선언이냐”고 되물은 뒤 “단일화 방법에 대한 논의를 통해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방법을 정해놓겠다고 하면 왜 그 방법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합리적인 것 아니냐”고 했다. 안 대표는 전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중도와 합리적 진보를 모두 합쳐야 (더불어민주당을) 겨우 이길 수 있는데 한 당 내에서 경선하는 구도로 가는 게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고 이야기한 바 있다.
오 전 시장이 이날 ‘불출마선언도 아니면서 출마선언이 아닌 것도 아닌 출마선언’을 한 데는 사정이 있다. 9년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가 ‘서울을 민주당에 통으로 헌납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썼던 그로선, 다시 서울시장직에 도전하기엔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부족한 자신의 출마 명분을 ‘야권 단일화’라는 대의를 앞세운 ‘조건부 불출마 선언’으로 채우려고 하다보니, 누가 봐도 이상한 ‘조건부 출사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한 국민의힘 의원은 “안 대표가 국민의힘에 안 들어오겠다는 언론 인터뷰를 한 다음 날 이런 조건부 선언을 한 것은, 출마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힌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이번 선거를 안 대표와 자신과의 싸움으로 만들려는 의도”라고 해석했다.
■ ‘어차피 안철수는 입당 안 한다’는 계산
오 전 시장의 행보에 당내 주자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김선동 전 사무총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철수 후보 끌고 들어가지 말라. 본인의 거취는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 것”이라며 “서울시장 선거판이 그 나물에 그 밥상이 되어간다. 좀 덜 때 묻은 사람들이 나서게 자리 좀 비켜주시면 안 되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도 “야권후보의 단일화 당위성은 인정하지만 자신의 출마 여부를 왜 타인의 결정에 맡기는지 참 독특한 출마 선언”이라고 꼬집었다.
나경원 전 의원에 이어 오 전 시장까지 출마 뜻을 밝히면서 보수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 경쟁은 2011년 박원순-박영선 단일화 때와 같은 ‘선 후보선출, 후 단일화 경선’이란 2단계 방식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민의힘 주자들 처지에서도 안철수 대표와의 현격한 경쟁력 격차를 극복하려면 ‘붐업’에 필요한 시간과, 당내 경선의 컨벤션 효과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다.
■ 정진석 등은 여전히 ‘선 통합-후 단일화’
다만 국민의힘 안에는 ‘안철수 입당-100% 여론조사 경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존재한다. 당의 대표적 통합론자인 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통합없이 단일화는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두 당의 통합이 후보 단일화에 우선해야 한다. 선통합, 후단일화가 해답”이라고 요구했다. 공관위가 본경선을 100% 여론조사로 치르는 안으로 외부인의 ‘핸디캡’을 없앴으니, 안 대표가 경선 단계부터 국민의힘에 들어와 단일화 절차에 함께해야 한다는 논리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오신환 전 의원도 “안철수 대표는 범야권 대통합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 공정한 단일화 방식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명료하게 제안해 주기 바란다”며 안 대표에게 공을 넘겼다.
나경원 전 의원은 “오늘 (오 전 시장의) 회견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며 ‘야권 단일화는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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