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의 메모리반도체 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도 반도체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점치고 있다.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의 목표주가를 9만원대로 잡으며 ‘9만 전자’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메모리반도체 초호황 오나?
새해 메모리반도체 초호황의 근거는 수급이다.
사이클은 결국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으로부터 비롯된다. 지금까지 D램 시장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며 특정한 사이클을 이뤄왔다. 한 사이클은 일정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시장이 확대된 후 주기가 끝날 무렵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전환하는 모양새다.
2000년대 이후만 놓고 살펴보면 D램 가격이 급상승한 ‘빅사이클’이 총 4번 찾아왔다. 2000년대 초중반 노트북 수요 증가, 2000년대 후반 모바일 기기 확산, 2013년 일본 D램 기업 엘피다 파산 직후, 2017~2018년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에 따른 서버 수요 증가 등이다. 2017년과 2018년 진행된 빅사이클에서 삼성전자는 58조원의 영업이익(2018년)을 냈다. 이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 SK하이닉스 역시 연간 영업이익이 20조원을 넘어섰다. 업계에선 2021년에도 반도체 수요기업들의 D램 재고 소진과 코로나19로 침체를 겪었던 스마트폰 시장의 회복세가 호황을 이끌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수요 측면을 살펴보면, 스마트폰과 PC향 메모리반도체, 5G 확대, 데이터센터 확대 등이 증가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수요가 새해 회복되면서 스마트폰, PC 등 교체 수요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기에 더해 출시 준비 중인 신제품들이 대부분 5G로 넘어가면서 D램과 낸드의 기본 스펙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5G로 넘어간다는 것은 통신 회사에서 그만큼 데이터센터의 용량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최근 데이터센터용 D램 주문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반도체를 소비하는 서버생산업체 재고량 역시 부족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한 관계자는 “페이스북·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서버 4대 업체는 2020년 초 D램을 많이 구입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데이터센터 건설 등으로 재고가 많이 소진된 상황”이라고 말한다. D램을 생산하는 SK하이닉스와 이를 소비하는 서버생산기업 모두 재고가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D램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2020년 D램 비트그로스(비트 단위로 환산한 메모리 공급 증가량)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예상 대비 부진했다”며 “공급량은 줄어든 반면 2020년 반영되지 않은 수요가 내년으로 이어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D램을 구입하지 못한 업체가 2021년 한꺼번에 구매하면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모바일 수요 회복과 클라우드 서버 등의 요인으로 인해 D램 시장은 턴어라운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삼성전자 등 소위 메모리 ‘빅3’의 공급량은 당분간 큰 폭으로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2020년 삼성전자는 D램에 49억달러(약 5조3000억원), SK하이닉스는 40억달러(약 4조3000억원)를 투자했다. 2019년과 비교해 각각 21%, 38%씩 감소한 수치다. 미국 마이크론은 12월 초 대만 공장에서 한 시간 넘게 정전이 발생해 생산과정에 있던 물량을 폐기하고 설비를 재정비하기도 했다.
설비 투자는 생산량과 직결된다. 2020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설비 투자가 예년만 못했기 때문에 2020년 말부터 새해 상반기 D램 생산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실제 D램 가격은 2020년 3분기부터 이어 온 하락세를 멈추고 바닥을 다지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로 중국 화웨이가 위축되자 샤오미, 오포 등이 D램 주문량을 공격적으로 늘려 스마트폰 시장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면서 “구글·아마존 등의 D램 주문 재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신제품 출시 등 호재가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업체들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0나노 2세대 LPDDR5의 판매를 확대하는 등 모바일 수요 대응에 집중할 계획이다. 또 낸드플래시에서는 64기가바이트 이상 고용량 서버향 제품 판매 비중을 늘리고 128단 기반 제품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아직 차세대 D램인 DDR5 제품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인텔 등과 협력해 DDR5 개발·양산에 힘쓸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투자결정은 이미 2년 전 정도부터 꾸준히 장기적으로 대비해왔다”며 “DDR5가 D램 시장의 촉진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에 맞게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는 2021년 낸드와 비메모리 시설 투자를 전개하는 방향,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 사업 인수 M&A(인수합병)를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내다봤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삼성,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노린다
업체 간 기술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3D 낸드플래시 시장은 특히 적층 경쟁이 대표적이다. 적층은 회로를 수직으로 쌓아 올려 데이터 용량을 늘리는 기술로 낸드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다. 낸드 시장 5위 업체인 마이크론이 지난 11월 업계 최초로 176단 3D 낸드플래시 개발 소식을 밝히자 128단 낸드를 납품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0년 3분기 낸드 점유율 1위는 삼성전자(33.1%)였고 키옥시아(21.4%), 웨스턴디지털(14.3%), SK하이닉스(11.3%), 마이크론(10.5%) 순이었다.
SK하이닉스는 곧바로 176단 4D 낸드플래시 개발을 알렸다. 앞으로 176단 4D 낸드 기반으로 용량을 2배 높인 1Tb(테라비트) 제품을 연속적으로 개발해 낸드플래시 사업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1월 열린 ‘삼성전자 2020 인베스터스 포럼’에서 2021년 양산을 목표로 128단을 넘어서 7세대 낸드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한진만 메모리사업부 마케팅팀 전무는 “차세대 V낸드에 ‘투 스택’ 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라며 “현 6세대 V낸드는 ‘싱글 스택’이 적용돼 128단을 쌓는데 투 스택 기술을 적용할 경우 단순 계산으로 256단을 적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TSMC와 삼성전자가 양분하고 있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대만 TSMC 53.9%, 삼성전자 17.4%.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시장 1, 2위 업체의 2020년 3분기 점유율이다. 매 분기 TSMC와 삼성전자 간 점유율 격차는 약 35%포인트 수준에서 줄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신 기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초미세공정’ 분야에선 2021년 두 업체의 격차가 20%포인트까지 좁혀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공개한 시장 보고서를 통해 2021년 파운드리 미세공정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을 60%, 삼성전자는 40%로 제시했다. 트렌드포스는 미세공정을 회로선폭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로 정의했다. 미세공정이 가능한 업체는 세계에서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전체 시장 점유율이 20%에 못 미치는 한국 업체가 새해 ‘최고급 명품’ 시장에선 40%의 점유율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매출이 2019년 600억달러(약 67조원)에서 2020년 682억달러(약 76조원)로 13.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과 2022년 시장 규모 전망치는 각각 738억달러(약 83조원), 805억달러(약 98조원)다.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개발·판매 관련 경쟁 관계이면서 파운드리 시장의 주요 고객인 퀄컴 등도 최근 삼성전자에 대규모 물량을 맡기기 시작했다. 퀄컴은 중급 AP인 스냅드래곤 4시리즈, 중상급 7시리즈를 삼성전자 8㎚ 공정에 맡겼고, 차기 플래그십 제품인 스냅드래곤 8시리즈도 삼성전자 5㎚ 공정을 통해 생산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대만 파운드리 업체 TSMC가 14조원을 들여 미국 애리조나에 새로운 5나노 팹 건설을 시작한 점, 엔비디아·퀄컴 등 미국 소재 글로벌 반도체 설계 회사들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는 점 등을 들어 새해 사업계획에 오스틴 신공장 착공 계획을 포함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삼성은 ‘이미지센서’ 부문에도 박차를 가한다. 이미지센서는 정보기술(IT) 기기 내에서 눈 역할을 하는 제품으로, 렌즈에서 들어오는 빛을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삼성전자는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이미지센서 시장 1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1억 화소가 넘는 이미지센서 등으로 제품군을 늘려가고 있다. 새해 생산 능력도 확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성 D램 공장 일부를 개조해 이미지센서 생산 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여건 좋지만 변수도 많아
시장 여건은 좋아지고 있지만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코로나19에 따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다. 현재 서버 업체 빅4라 불리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은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몰라 당장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꺼리고 있다.
첨단 산업을 둘러싼 미·중 무역 분쟁도 불확실성을 제공한다. 트럼프 정부는 안보 문제 등을 이유로 전 세계 152개 화웨이 계열사를 거래 제한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고, 자국의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이용해 개발 또는 생산한 반도체 칩을 화웨이가 확보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바 있다. 당시 화웨이에 반도체칩을 납품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전 세계 반도체 제조사들 사이에서는 화웨이 제재에 따른 직격타에 대한 우려가 나왔었다.
물론 다른 효과도 있었다. 지난 3분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의외의 깜짝 실적을 올린 것이다. 반도체 공급로가 차단된 화웨이가 제재 발효 직전까지 긴급 주문을 늘리며 재고를 확보하면서 예상치 못한 ‘화웨이 특수’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웨이를 대체하는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의 중국 내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주문량도 급증하면서 의외의 실적 호조를 더했다.
변수는 새해에 본격화할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다. 미국 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화웨이 압박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반도체 굴기’의 명운이 갈림길에 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최근 미국과의 무역마찰에 따른 여파에 좌초 위기를 맞으면서 동력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측면에서다.
2020년 상반기 중국 제조사 가운데 처음으로 D램 판매를 개시한 CXMT의 경우 미국 마이크론으로부터 특허 침해를 지적받으면서 법적 분쟁이 예고된 상태다. 또 다른 중국 반도체 기업인 YMTC의 모회사 칭화유니그룹은 지나친 외형 확장으로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칭화유니그룹은 앞서 미국 마이크론과 샌디스크 등의 대형 인수·합병에 나섰지만 미국 정부의 견제로 무산된 바 있다.
SK텔레콤 AI 반도체 ‘SAPEON X220’, 삼성전자의 초소형 이미지센서 |
앞서 파운드리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은 지난 12월 초 중국 최대 파운드리 회사 SMIC도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고, 자국에서 생산한 반도체 설비와 재료, 소프트웨어 등을 자유롭게 팔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개시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국에 대한 압박을 바이든 정부에서 이어갈 가능성이 높지만, 정도나 방법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국내 업계에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새해 반도체 빅사이클이 올지는 불분명하지만, 국내 업체들의 실적 상향은 명약관화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D램 시장은 불황기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분기당 수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으며 SK하이닉스 역시 수천억원에서 1조원 이상 영업이익을 거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AI 등 신기술의 등장과 함께 반도체 수요가 꾸준하다. 빅사이클이 올지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새해 실적이 좋아질 가능성은 분명하다. 다만 장기적으로 중국 반도체 굴기가 유일한 변수”라고 말했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반등에 대한 기대가 높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추정한 2021년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평균치는 46조3337억원으로 전년보다 25.1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KB증권은 이 가운데 삼성전자의 새해 연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만 28조5000억원에 달해, 2020년보다 50%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의 경우 2020년보다 70.25% 증가한 8조3814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코로나19 위험이 여전한 데다 각국 정부들이 긴축경제에 돌입할 수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고 호황기를 맞는다면 삼성전자·하이닉스는 물론 소재·부품·장비 기업에도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4호 (2021년 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