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 최초 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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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장소에서 스스로 노출한 부위라도 몰래 촬영하면 범죄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재판부는 연속 재생, 확대 등 변형·전파 가능성 등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레깅스 착용시 드러나는 둔부와 허벅지의 굴곡 등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몰카 성범죄가 ‘노출된 신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A씨는 지난 2018년 하차하려고 버스 출입문 앞에 서 있는 B씨의 하반신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8초가량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B씨는 당시 둔부 위까지 내려오는 다소 헐렁한 운동복 상의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깅스 하의를 입었다.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발목 등이 전부였지만 옷이 밀착돼 둔부부터 종아리까지 신체의 굴곡이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출입문 맞은편 좌석에 앉아 B씨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했는데 특정 부위를 확대하거나 부각하지 않았다.
이에 1심은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A씨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피해자 노출 부위가 목과 손·발목 등이 전부였고 신체 부위를 확대 촬영하지 않았다는 점,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또 레깅스가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고 피해자도 레깅스를 입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점에 주목했다.
일상복과 다름없는 레깅스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재판부는 둔부와 허벅지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공개된 장소에서 스스로 신체를 노출했다고 해도 변형·전파 등 악용될 가능성으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또 피해자가 경찰에서 한 진술에 대해서도 “인격적 존재로서 분노와 수치심의 표현으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촬영의 대상, 촬영 결과물, 촬영의 방식 등 피해자가 촬영을 당한 맥락, 피해자의 반응 등에 비춰보면 A씨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성적 자유를 ‘원치 않는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에서 ‘자기 의사에 반해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로 확대한 최초의 판시”라고 설명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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