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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

입양기관·의사·경찰…정인이 살릴 기회 '세번'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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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원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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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그림이 놓여 있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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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입양 전 이름)를 살릴 기회가 수차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분노의 여론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입양기관의 안이한 관리, 의사의 세심하지 못했던 진단, 경찰의 부실한 초동 수사 등 우리 사회의 총체적 잘못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입양기관 홀트, 정인이 학대 알고도 "잘 지낸다" 보고

정인이의 입양을 주선한 홀트아동복지회는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입양특례법은 '입양 후 첫 1년간 입양기관의 사후관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 아동학대범죄처벌법에 따르면 입양기관은 아동학대 신고의무자에 해당한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서울시 양천구 입양아동 사망사건 보고'에 따르면, 홀트아동복지회는 지난해 5월26일 2차 가정방문 이후 보고서에 "아동의 배, 허벅지 안쪽 등에 생긴 멍 자국에 대해 양부모가 설명하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6월26일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정인이의 쇄골 골절, 2주간의 깁스 사실 등을 전달받고도 양부와 전화통화만 했다. 또 '양모가 아이를 30분가량 자동차에 방치했다'는 신고 이후 7월2일 3차 가정방문에 나섰으나, 별도 대응을 하지 않았다. '체중이 감량돼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에도 9월18일 통화만 하고, 양모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가정방문을 10월15일로 미뤘다.

10월3일에는 양부와 통화한 후 '아동이 이전 상태를 회복해 잘 지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정인이는 열흘 뒤인 10월13일 숨을 거뒀다. 지속해서 학대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4개월간 아이를 내버려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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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트 측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해 12월31일과 지난 2일 홈페이지와 SNS에 올린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 관련 글을 삭제한 뒤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이 게시물에도 직접 댓글을 달며 비판에 나서고 있다./사진=홀트아동복지회(holt_welfare)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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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의사 "아동학대 확진할 수 없었다…책임 통감"

한 소아과 의원 원장 A씨는 정인이 진료 후 구강 상처에 대해 "놀다가 다쳤다"는 양부 답변을 믿고 구내염이라고 진단했다. 이 병원은 양부모의 단골 병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차례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 등을 고지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A씨는 '한경닷컴'에 "진료 당시 입 안 상처와 구내염, 체중 감소에 대한 소견을 밝혔다"며 "입 안 상처를 구내염으로 바꿔 진단한 적도 없다. 구강 내 상처와 구내염은 치료했고, 체중 감소에 대해선 대형 병원의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맞아서 생긴 상처였다면 주변에 점상 출혈, 멍, 압통 등이 관찰될 텐데 당시 발견되지 않았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는지 명확하지 않아 '지금 상태만으론 아동학대로 확진할 수 없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A씨는 "제 소견이 정인이 양부모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어린 생명을 살릴 기회를 놓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책했다. 진심으로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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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OO소아과의원에서 정인이에게 허위진단서를 내린 의사의 의사면허를 박탈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머니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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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3차례 학대의심 신고에도…내사 종결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 6월, 9월 세 차례나 학대의심 신고를 접수했지만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달아 송치했다. 아이를 부모와 분리하지도 않았다.

마지막 신고는 한 소아과 의사 B씨가 지난해 9월23일 정인이의 병원 방문 직후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전화한 것이다. 이때라도 아이를 양부모와 분리했다면 정인이를 구할 수 있었지만, 경찰은 전문가 진단에도 아동학대의 고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B씨는 2분58초간 이어진 경찰과의 통화에서 정인이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점, 이전에도 아동학대 의심 신고 전력이 있던 점, 어린이집 원장이 병원에 데리고 온 점, 멍이 예전에 자주 들었던 점 등을 설명했다.

정인이는 B씨 신고 이후 20일 뒤인 10월13일 서울 양천구 목동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췌장이 절단되는 심각한 복부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에 서울지방경찰청은 양천경찰서에 대한 감찰 결과, 2차 신고사건 담당자인 7명에게 '주의' 또는 '경고' 처분을 내렸다. 3차 신고사건 담당자인 팀장과 학대 예방경찰관(APO) 등 5명은 징계위원회에 넘겨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 정부는 경찰청에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 아동 보호를 전담하는 '아동학대 총괄 부서'를 신설하기로 했다. 2회 이상 신고된 아동학대 사건에는 반기별 1회 이상 경찰의 자체적 사후점검도 정례화할 예정이다. 검찰이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한 양모 장모씨, 유기와 방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양부 안모씨의 첫 공판은 오는 1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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