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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건'

"내 딸로 와주면 안 되겠니"…눈 덮인 정인이 묘 찾아간 이모·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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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양평(경기)=이강준 기자] ['정인이 사건', 구멍 뚫린 아동보호④]추운 날씨에도 이어진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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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뉴시스김선웅 기자 =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서 추모객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故 정인 양은 생후 16개월째인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폭력과 학대로 숨을 거두었다. 2021.01.05. mangust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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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람을 피할 곳 하나 없는 벌판에 정인이가 누웠다.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도 추모객들은 각자 선물을 들고 와 아이의 묘지를 감쌌다. 전날밤에 눈까지 내려 5분만 걸어도 신발은 젖고 마스크엔 물방울이 맺힐 정도였지만 오전에도 많은 사람이 정인이를 찾아왔다.

5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방문했다. 묘지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경사가 가파른 눈쌓인 도로를 10여분 가량 올라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정인이만 허락해주면 이모의 둘째딸로 와주면 안 되겠니"…추운날 이어진 추모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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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위치한 故정인양의 묘./사진=이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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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안내판이 없었지만 멀리서도 선물이 가득 쌓여있는 묘지가 있어 쉽게 정인이를 찾을 수 있었다. 선물은 16개월 아이가 필요할만한 것들이 곱게 정리돼있었다. 유아용 과자부터 시작해 음료, 인형, 장난감 심지어 작은 목도리와 베이비 로션, 파우더까지 있었다.

모두 정인이가 건강하게 살아있었다면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선물이었다. 정인이 삼촌·이모를 자처한 추모객들의 편지도 가득했다. 한 편지에는 "아가야 미안해. 밤에 너무 무섭지 않게 빛나는 등을 두고 갈게"라며 "정인이만 허락해주면 이모의 둘째로 와줄 수 있겠니"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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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9시 30분쯤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위치한 故정인양의 묘비./사진=이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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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편지에는 "하늘에서는 너가 겪었던 반대의 삶을 살기를 늦게나마 빌겠다"라며 "추운날,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으면 한다. 언니가 입던 옷 말고, 새 옷 입고 이쁘게 지내"라는 글과 함께 스웨터가 담겨 있었다.

같은 양평군 주민들뿐 아니라 서울, 심지어 충청도에서도 추모객이 찾아왔다. 아이와 함께온 양평 주민 오모씨(37)는 "우리 넷째 막둥이가 정인이와 동갑"이라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정인이 이야기가 남같지 않고 가슴이 너무 아파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어 추모하러 왔다"고 말했다.

차를 빌려타 정인이를 추모하기 위해 온 연인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문모씨(18)는 "양평을 잠깐 가야할 일이 있었는데 정인이가 있다는 걸 알고나서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 묘지를 방문했다"고 답했다. 그는 장난감과 인형을 정인이 묘지 곁에 두고 다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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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10시쯤 경기도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서 만난 문모씨(18)가 故정인양에게 줄 장난감과 인형을 들고 있다./사진=이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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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시에서 온 이모씨(40)는 "양평에 외근을 나왔는데 잠시 짬을 내서 정인이를 보러왔다"고 했다. 이씨는 덤덤하게 묘를 바라본 후 길을 내려가던 중 갓길에 정차하더니 차 안에서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꽤 긴 시간을 남몰래 울기도 했다.

정인이로 알려지게된 양평 하이패밀리는 소아암·백혈병으로 사망한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로 수목장을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다. 이곳 사이트는 트래픽 초과로 한동안 마비돼 이날 오전 급하게 서버를 확충하기도 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송길원 목사는 "정인이를 찾는 추모객들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며 "방문객이 많지만 모두 정인이와 묘지를 존중하고 있다. 묘지 방문객들이 쓰레기 한 톨도 남기고 가지 않아 관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인이 일은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라면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제2의 정인이가 나와서는 안 된다. 아동복지에 끝없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양평(경기)=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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