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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 자백

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린 윤성여씨 32년만에 누명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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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53)가 32년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부실 수사와 판결로 한명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법원 검찰 경찰은 일제히 윤씨에게 사과했다.

윤씨는 "1988년에 멈춘 시간이 다시 풀린 기분"이라면서 "제2의 고향인 청주에서 새 삶을 살겠다"고 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17일 오후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선고 공판을 열어 "과거 수사기관의 부실 행위로 잘못된 판결이 나왔다"면서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하자 재판정은 환호성이 울렸다. 지난해 경찰의 재수사부터 재심 청구, 재판 전 과정을 도운 박준영 변호사,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이주희 변호사, 다수 방청객들은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윤씨는 22살이던 1988년 9월 16일 발생한 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듬해 범인으로 지목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하면서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 재판부는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이날 강간 살인 누명을 벗은 윤씨는 "이제야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누명을 벗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게됐다"면서 "조만간 어머니 묘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1988년에 멈춘 시간이 다시 풀린 기분이다. 홀가분하다"면서 "10여년을 살아 제2의 고향과 같은 청주에서 가죽 재단 일을 계속하며 살겠다"고 했다.

이날 법정에서 동생의 무죄 선고를 지켜본 윤씨 누나와 조카는 윤씨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춘재 8차 사건 당시 부실수사·판결을 한 법원과 검찰, 경찰은 일제히 윤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날 무죄 선고를 한 재판부는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구성원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 선고가 피고인의 명예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경찰청도 "무고한 청년에게 살인범이라는 낙인을 찍어 20년간의 옥살이를 겪게 하여 큰 상처를 드린 점 깊이 반성한다"면서 "재심 청구인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 등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경찰청은 "앞으로는 이 사건을 인권보호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반면교사로 삼아,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는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결심공판에서 "수사의 최종 책임자로서 20년이라는 오랜 시간 수감 생활을 하게 한 점에 대해 피고인과 그 가족에게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했다.

30여년만에 누명을 벗은 윤씨는 사건 당시 관여돼 있던 법원·검찰·경찰 관계자를 용서했다. 하지만 개인에 대한 용서와 별개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등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윤씨의 재심 사건을 맡아온 박준영 변호사는 "내년초께 국가배상청구소송, 국가가 공무집행과정에서 저지른 불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양(당시 13·중학생)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당한 사건이다.

[지홍구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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