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신뢰가 가지 않는다. 국민의힘과 대표는 따로인가."
여권 관계자들이 내놓곤 하는 일종의 푸념이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말과 당의 행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스터 경제민주화'로 불리는 그는 정부ㆍ여당의 '경제 3법(상법ㆍ공정거래법ㆍ금융그룹통합감독법)'에 대해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과거 김 위원장이 직접 발의했던 법안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하다. 민주당 법안 중에서는 김 위원장의 과거 법안을 그대로 다시 내놓은 것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에서는 경제 여건과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 우려 등을 감안해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당의 대표와 반대 방향으로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보면, 사실 '정통 보수' 입장에서는 비판적인 기류가 강하다.
김 위원장이 올해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 중 하나는 기본소득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휘발성이 컸고, 다양한 담론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화두만 던졌을 뿐 정작 당내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노동 이슈 역시 김 위원장이 비정규직 문제 해법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업별에서 산업별 노조로의 전환 등 메가톤급 발언들을 쏟아냈지만 당의 후속 작업들은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이 5ㆍ18 영령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사죄했으나, 당에서는 이른바 5.18역사왜곡처벌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의 정당들은 위기에 처하면 김 위원장을 찾곤 했다. 주로 보수 진영에 몸 담아 왔으나 '경제민주화'로 상징되는 개혁적 이미지가 중첩돼 있다는 점에서 요긴했다. 좌우가 뚜렷하지 않은 중도층에게로 확장하는, 정당의 일신 면모를 보이는 데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정치 이력을 다시 보자.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해 전두환 정권 때 민주정의당으로 두 차례 국회의원을 했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고, 1992년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또 의원이 됐다.
2004년에는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돼 17대 의원을 지냈고, 2011~12년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에 있으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의 산파 역할을 했다. 2016년에 다시 더불어민주당으로 갔다가, 올해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으로 컴백했다.
전무후무할 것으로 얘기되는 '비례대표 5선'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정치 행보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정치인이지만 학자적 소신을 지켜왔다는 평가가 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신은 지금 국민의힘에 녹아들어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을까. 국민의힘이 김 위원장을 대표로 영입한 것은 변화의 의지였다. 국민의힘은 변화했는가.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후보로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곱씹어볼 만 하다. 국민의힘 대권 후보들이나,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보다 훨씬 높다. 국민의힘이 정권의 대안 세력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김 위원장의 임기는 내년 4월7일 보궐선거까지다. 선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건물을 임시로 지었다가 결국 제 집을 찾아갔다고 국민들이 판단하면 설 자리는 더욱 협소해질 것이다. 시간은 많지 않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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