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3사, 5G투자 본격화 후 현금자산 급감…투자 여력 갈수록 줄어
"당근 없이 채찍만 제시한 투자 계획"…소프트웨어 투자 위축 우려
정부가 내년에 이용 기간이 만료되는 LTE 이하 이동통신 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3조원대로 최종 산정하면서, 통신업계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주파수 이용료라 할 수 있는 재할당 대가를 통신사의 5G 무선 기지국 투자와 연계하는 방식에 대해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통신사들이 5G 기지국 투자에 분기별 수조원 씩 투입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투자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만 몰아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동통신 사업의 수익성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5G 기지국 개수 늘리는 데 집착한 정부가 모든 부담을 통신사에 떠넘긴다는 것이다.
오용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파정책국장이 30일 오후 세종시 파이낸스센터에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이동통신 주파수 재할당 세부 정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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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G 무선 기지국 실적에 연계된 LTE 주파수 할당대가
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017670)과 KT(030200), LG유플러스(032640)등 통신3사는 지난달 3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LTE 이하 주파수 재할당 대가 최종 산정안을 수용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는 내년 6월부터 12월까지 순차적으로 이용기간이 만료되는 LTE주파수를 향후 5년간 재할당하는 대가로 3조1700억~3조7700억원(3사 합산액 기준)을 받겠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종전 할당대가 대비 25% 낮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LTE서비스가 주력 상품이 아닌 만큼 주파수 재할당 대가가 1조원대 후반에서 2조원대 초반으로 산정돼야 한다는 통십업계의 요구와는 현격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통신업계는 표면적으로는 정부 방침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번 주파수 재할당 대가 산정에 불만을 감추지 않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통신업계는 과기정통부가 LTE주파수 재할당 대가를 통신 3사의 5G 무선기지국 투자와 연계시켰다는 점에 문제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과기정통부 방안에 따르면, 통신 3사는 2022년까지 무선기지국 12만 국을 각각 구축하면 총 3조1700억원에 해당되는 할당 대가를 적용받지만, 기지국 구축 실적이 사별로 6만국을 웃도는 수준에 그치면 총 3조7700억원을 납부해야 하는 구조다.
현재 통신 3사는 5G 기지국을 각 사별로 4만5000~6만국 가량 구축 중이다. 정부가 제시한 3조1700억원대 옵션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별로 6만~7만5000국을 더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9년 이후 2년간 투자한 실적보다 더 많은 규모의 투자 실적을 향후 1년 안에 채워야 한다는 게 정부측 요구다.
오영수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주파수 재할당 대가 옵션으로 제시한 무선 기지국 12만국(1개 통신사 기준)은 지난 7월 통신 3사가 발표한 5G 투자계획에서 제시한 목표치를 웃도는 수준"이라면서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표출된 5G 통신서비스에 대한 불만 등을 해소하기 위해 통신사 투자계획보다 높은 옵션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16일 서울 광화문 KT 사옥에서 모델들이 가상현실(VR) 기기를 쓰고 5G(5세대 이동통신) 버스를 체험하고 있다.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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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분기 兆 단위 투자 이뤄지고 있는데…"
통신업계가 5G 기지국 투자 요구치에 난색을 표하는 것은 이미 분기별로 조(兆) 단위 투자가 집행되고 있는 점을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조선비즈가 통신 3사의 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유형자산 취득액은 KT가 2조1640억원으로 가장 많고, SK텔레콤 1조9990억원, LG유플러스 1조850억원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장비 등이 포함된 유형자산 취득액은 통신사들의 5G 투자액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재무지표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한 유형자산 취득액 증가 규모는 SK텔레콤이 4290억원으로 가장 많고, LG유플러스(3915억원), KT(2271억원) 순이다.
이같이 5G망 투자에 매 분기 조단위 자금이 투입되면서 통신 3사의 현금보유액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SK텔레콤은 5G투자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8년 4분기 8700억원에 이르렀던 현금성 자산이 지난 1분기에는 2600억원까지 줄었다. KT는 같은 기간 현금보유액이 1조8000억원을 육박한 수준에서 7500억원으로 급감했다. LG유플러스도 같은 기간 현금성 자산이 3200억원에서 1700억원까지 줄었다.
올해 2분기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경제활동 활성화, 부동산 자산 매각 등 유동성 확보 노력으로 통신 3사의 현금성 자산은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정부가 요구하는 대규모 5G 투자를 감당하기에는 다소 버거운 상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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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찍 뿐인 정부 5G 투자 압박, 서비스 비효율성 확대 우려"
일각에서는 정부가 ‘당근 없는 채찍’으로 통신사들의 5G투자를 압박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통신사의 5G 투자에 최대 3% 가량 법인세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공제 수준이 투자 유인을 높일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선기지국 등 하드웨어 투자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5G 기지국 위주로 통신사 투자를 유도하면, 5G 서비스 확충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투자 재원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정부 의도대로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5G망은 깔려있는 데 소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5G 서비스가 변변치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5G 무선기지국 설치 실적과 주파수 할당대가를 연계한 정부 방침은 통신사들의 5G투자를 하드웨어 구축 위주로 흐르게 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이 경우 5G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투자를 위축시키고, 전체적으로는 5G 서비스가 비효율적으로 제공되게 만드는 발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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