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 기자] 시청률 장인, 김순옥 작가의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가 화제를 흩뿌리고 있다. 초반 다소 폭력적이며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률과 비난을 한꺼번에 받았던 드라마이지만, 중반에 이르러서는 결국 김순옥 작가의 투박한 듯 섬세한 서사가 또 한 번 보는 이를 움찔하게 만들어 버린 듯 하다.
부동산과 교육, 애초에 이 드라마는 젠체하는 인간들 조차 기어코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 소재를 다룬다. 그리고 드라마는 작정하고 욕망하는 인간들의 극악함을 다룬다. 마치 헤라팰리스 층별로 인간의 계급을 나눈 것처럼 그 묘사는 너무 직접적이라 자칫 투박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주단태(엄기준), 천서진(김소연)을 통해서는 최상류층 인간들의 무분별한 악함을, 이규진(봉태규)과 고상아(윤주희)를 통해서는 그들에 적당히 기생해 단물만을 빨아먹으려는 중간층 인간들의 비겁함을, 그리고 오윤희(유진)와 배로나(김현수)를 통해서는 이를 쫓아 달려가려는 하류층 인간들의 악착같음이 그려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펜트하우스'의 세계 어떤 곳에도 인간의 선함이 놓여있지 않다는 점이다. 명확한 선악의 구도 속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다룬 빤함이 아닌 거의 모든 캐릭터들의 극악스러운 질주는 보는 이들의 진을 빼기도 한다. 마치 모든 것을 기괴하리만치 과장한 표현주의 미술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런 '펜트하우스'의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이라는 평을 듣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배우 윤종훈이 연기하는 하윤철이다.
하윤철이 유일하게 정상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 역시 그가 선해서가 아니다. 그의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모든 과장을 배제하고 현실적인 묘사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 회 하윤철은 실력과 미모, 모든 것을 가진 완벽한 아내 천서진을 비꼬면서 등장했다. 아내에 대한 열등감을 냉소로 풀어내는 못난 캐릭터인가 싶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현실을 기반으로 한 섬세함이 그를 통해 이야기 된다.
모든 파국의 시작, 천하의 라이벌인 천서진 오윤희의 싸움 한 복판에서 그의 인생이 꼬였다. 야망과 사랑을 사이에 둔 선택에서 그는 빤하게도 야망을 택했고 그래서 천서진의 옆자리에 서 있게 됐다. 그의 가난은 수시로 무시를 당했고 풋사랑까지 저버릴 정도로 절박했던 그의 욕망은 여전히 이글거렸지만 때때로 허무에 빠지기도 했다.
하윤철은 주단태를 필두로 한 부동산 투자 모임에서 주단태 덕택에 거액의 돈을 거머쥐게 되지만, 속으로는 늘 주단태의 모든 것을 혐오했다. 천서진의 부를 통해 자신 역시 그 세계에 발을 디뎠으나, 정작 중요한 것을 가지지 못해 발을 동동 거리는 아내의 남모를 초라함을 비웃기도 했다. 윤철은 서진 앞에서 자주 주단태를 빈정거렸는데, 이는 어쩌면 서진을 상대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윤철을 향해 열등감이라며 질색을 한 서진 역시 윤철의 메시지를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철이 내뱉는 대사들은 다소 과장된 '펜트하우스' 속 인물의 대사들과는 달리 섬세하다. 김순옥 작가가 작정하고 윤철을 통해 현실을 말하기라도 한듯, 그의 대사와 그의 표정은 다른 결의 표현을 보여준다. 그런 윤철이 상징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감춰진 이중성이다. 타인의 욕망을 비난하면서도 자신 역시 늘 남들보다 더 갖고자하는 이중성 말이다.
윤종훈 역시 하윤철을 연기할 때 극단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크던 작던 매회 자신의 캐릭터가 표현하는 감정선을 치밀면서도 담담하게 연기해냈다. '펜트하우스'를 통해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확연히 굳힌 그는 그러고보면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연기력 논란이 없었던 실력파 배우이기도 하다.
마침내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총까지 겨누게 된 10회를 시작으로 윤철은 필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욕망을 쫓아 달려갔으나 그 욕망을 혐오하게 된 하윤철이 보여줄 변화는 '펜트하우스'의 세계에 어떤 진동을 전할까.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윤철이야말로 자칫 투박해 보이는 '펜트하우스' 속 세계관에 감춰진 김순옥 작가의 리얼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nyc@osen.co.kr
[사진] '펜트하우스' 방송 캡처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