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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시선] 축구스타일 뿐이라고?…결점많아 더 '神' 같았던 마라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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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에서 세계 최정상까지…아르헨티나에선 축구선수 이상의 의미

마약·사생활 스캔들에도 많은 이들의 우상…"가장 인간적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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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추모하는 아르헨티나 시민
[AP=연합뉴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울부짖는 사람들과 나부끼는 깃발, 중무장한 경찰과 자욱한 최루가스.

지난 26일(현지시간) CNN 스페인어 뉴스에 생중계된 장면은 격렬한 시위가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중남미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던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에서 경찰과 대치한 사람들은 시위대가 아니라 축구스타 디에고 마라도나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려는 팬들이었고, 그들의 울부짖음에 담긴 건 분노보다 슬픔에 가까웠다.

마라도나가 지난 25일 60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슬픔 속에 빠졌다.

곧바로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고, 대통령궁에 시신이 안치됐으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속에서도 일반인의 조문이 허용됐다.

빈소와 묘지 주변에 인산인해를 이룬 조문객들이 마치 가족을 잃은 것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은 다소 놀랍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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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통령궁 앞 마라도나 추모 인파
[텔람/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는 여러 번 체감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기간 찾았던 아르헨티나와 칠레, 우루과이의 수도는 도시 전체가 축구장 같았다. 칠레 대지진 후 만난 한 이재민은 어느 한 곳 성하지 않은 집 대신 망가진 동네 축구장을 걱정했다.

그렇게 축구를 사랑하는 민족에게, 세계 최고로 꼽히는 자국 출신의 축구 선수가 어떤 의미를 가질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단순한 축구스타 이상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그에게 '신(Dios)'이라는 호칭을 허락했다. '축구의'라는 수식어도 필요 없는 그냥 신이었다.

그는 빈민가에서 공을 차던 수많은 아르헨티나 아이 중 하나였다. 부모 세대와 다름없는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거나, 나쁜 길로 빠져들 가능성이 큰, 그런 많은 아이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그는 천재적인 재능 덕분에 다른 길을 걸었고, 빈민가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그의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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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월드컵 당시 우승컵에 키스하는 마라도나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르헨티나가 군부 독재 시절을 지나고 경제 위기를 겪는 동안에도 아르헨티나와 유럽에서 훨훨 날던 마라도나의 모습은 큰 위안이 됐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침몰시킨 마라도나의 두 골은 포클랜드 전쟁에서 잉글랜드에 패했던 아르헨티나의 울분을 어느 정도 씻어줬다.

이렇게 마라도나의 활약은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늘 축구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마라도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오히려 흠이 많았다.

도핑테스트에 걸려 월드컵 도중 귀국하기도 했고, 코카인 중독을 쉽사리 끊어내지 못했다. 기자에게 공기총을 쏴서 입건되기도 했고, 여러 명의 혼외자를 둘 정도로 사생활도 복잡했다.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과 가깝게 지내며 정치적 논란에도 자주 휘말렸고, 부적절한 발언이나 행동으로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들도 아르헨티나에서 마라도나가 갖는 의미를 약화시키지 못했다. "공은 더럽혀지지 않는다"는 생전 고인의 말처럼 그를 둘러싼 논란은 그가 쌓아 올린 위상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결함 많고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신'의 면모를 돋보이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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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마라도나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마라도나 별세 이후 아르헨티나 안팎의 언론들은 "가장 인간적인 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마라도나 부고 기사에서 "그의 어둠이 그의 빛을 더욱 뚜렷하게 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 40년 가까이 거주한 한 교민은 "어디 가서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아, 마라도나의 나라'라고 말한다"며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마라도나는 단순한 축구스타가 아니라 아르헨티나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 술, 여자 등 결점도 많았지만 늘 솔직했고 가식적이지 않았다. 모든 결점을 뛰어넘는 존재였다"며 "축구 팬이든 아니든 모두가 슬퍼하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나라가 그렇지만 아르헨티나는 올해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전 세계 10위 안에 들고, 아홉 번째 채무불이행(디폴트)을 겪은 경제는 더욱 악화했다. 세계 최장 수준의 오랜 봉쇄로 많은 국민이 몇 달간 집에 갇혀 있었다.

안 그래도 울고 싶은 일 투성인데 힘들 때마다 희망을 주던 축구 영웅까지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다. 마라도나의 유니폼을 안고 서럽게 울던 팬들의 심정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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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나 죽음에 슬퍼하는 아르헨티나 사람들
[AFP=연합뉴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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