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6일 오전 국회 의안과에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제출했다. 특별법은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부산 가덕도로 정하고,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특별법에는 예타 면제를 비롯해 각종 행정절차를 단축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2030년 부산 엑스포에 맞춰 신공항을 조기 개항해야 한다는 내용도 들어간다. 또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국토부 장관이 전담기구를 구성할 수 있으며 국가가 필요한 비용을 보조하거나 자금을 융자할 수 있도록 했다. 신공항 및 배후지 활성화를 위한 자유무역지역 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과 부산,울산,경남 지역 의원들이 26일 국회 의안과에 '가덕도 신공항 건설 촉진 특별법'을 제출한 뒤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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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선정도 안됐는데, 예타 면제… 기재부⋅국토부 "정부 입장 밝힐 때 올 것"
예타는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에 대해 미리 타당성을 따지는 제도다.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 되는 건설, 정보화, 국가연구개발 사업 등은 예타를 받아야 한다.
신공항 건설 사업은 입지선정과 관련해 국민적 합의를 거친 뒤 5년마다 작성되는 공항개발계획에 입지가 반영돼야 한다. 이후 ‘사전타당성 검토➝예타➝타당성 평가 및 기본계획➝기본⋅실시설계➝착공’ 등의 과정을 거친다. 국토부에 따르면 입지선정이 법률적으로 확정이 되는 것은 기본계획이 고시될 때 부터다.
하지만 여당은 특별법을 통해 사전타당성 검토에서 기본⋅실시설계 수립까지의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면제하는 방식으로 공항 건설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이다. 사실상 관련 부처인 기재부와 국토부를 패싱(Passing) 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기재부 내에서는 순서가 틀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기재부의 예타 운용지침에 따르면 입지선정이 구체화 된 사업만이 예타를 신청할 수 있다. 입지선정도 안된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 여부를 논의한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등 국민적 합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4일 오후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김해신공항 백지화 규탄대회'에서 대회를 주최한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 관계자들이 가덕도 신공항의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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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국토부로부터 입지 선정과 관련한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입지선정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된 이후에나 사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예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입지선정도 안된 상태에서 예타를 면제하겠다는 것이 옳은 순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특별법안이 정해지면 기재부도 찬성할지, 반대할지 입장을 표명할 시기가 올 것 같다. 현재로서는 추진되는 것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가장 시급한 것은 5년 단위로 수립되는 '제6차 공항개발계획'에 가덕 신공항 건설 계획을 명시하는 것이다. 6차 계획은 다음 달 마련된다. 현행 공항시설법은 공항의 신설·증설 등 공항개발 계획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매 5년마다 수립되는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반영하도록 정하고 있다. 공항개발계획에 포함되지 못하면 가덕 신공항 건설 계획은 수년간 표류할 수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6차 계획에 반영될지는 아직 확정된 게 없다"며 "이번에 반영을 할 수도 있고, 사후적으로 반영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의원 입법이기 때문에 향후 관련 부처들이 의견을 내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15곳 공항 중 5곳이 5년째 적자… "국토부 패싱안돼… 경제성 없다는 고백"
기재부나 국토부 내부에서는 가덕도신공항 사업과 관련해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등의 이해관계가 갈리고 정치권에서 사업을 주도하는 만큼 행정부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월성 원전(原電) 조기 폐쇄와 관련해, 감사원 조사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점도 부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자칫 사업을 추진한 뒤,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정권이 바뀌면 나중에 책임을 추궁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김해신공항을 폐기하고 가덕도신공항을 결정하는 사안은 공무원으로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며 "부처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보다는 법을 만들어주면 법에 따라 추진하겠다는 소극적인 분위기가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예타 없이 가덕도 신공항이 추진될 경우, 오히려 비용이 증가하고 사업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특히 항공업계가 경영난을 겪고 있는 만큼 향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속에서 항공 수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픽=김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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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국내 공항 14곳 가운데 10곳(71%)이 2016년부터 5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김포공항, 부산 김해공항, 제주도 제주공항을 제외한 나머지 공항들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예타없이 추진했다가 ‘또 하나의 적자공항’이 탄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명예교수는 "예타는 전문가 집단이 다양한 모형과 시나리오를 만들어 사업의 미래 위험요소를 제거해주는 절차"라며 "예타를 안하면 더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업기간 동안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공항만 짓는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다. 고속도로나 철도 등 연결망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련부처인 기재부나 국토부를 배제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가의 재정사용이 정치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가 예타인데, 예타를 받지않겠다고 특별법을 만드는 것은 꼼수다. 경제성이 없다는 걸 고백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며 "(정치권에서)국제행사 때문에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추가하는 게 더 빠르다"고 했다. 이어 "과거 4대강 사업에서 예타 면제를 비판했던 여권이 이번에는 특별법으로 예타를 생략하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성우 기자(foxpsw@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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