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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슈 윤석열 검찰총장

원전·신공항·윤석열…나라가 난리만 나면 사라지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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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마스크를 벗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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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와 직무정지 명령을 내린 이튿날인 25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여성폭력 추방 주간 첫날이다. 여성 대상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겠다.”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임명권자인 문 대통령은 이를 외면한 채 다른 얘기를 한 것이다. 야당에서 “대통령이 딴 세상에 산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문 대통령의 '실종'은 이번만이 아니다. 최근 한 달간 정국을 뒤흔드는 현안이 터질 때마다 문 대통령의 입은 굳게 닫혔다. 대부분 문 대통령 및 청와대와 직결된 사안임에도 그랬다. 대신 이 기간 문 대통령은 국제 행사나 뉴딜 행사 등을 찾았다. 공개 발언도 대부분 '공자님 말씀'이었다. '착한 대통령'으로만 비치는 데 집중할 뿐 갈등 완화나 의혹 해소 등 국정 책임자로서의 모습은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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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한 달, 문 대통령 무슨 일 했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난 10월 20일 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감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월성 1호기 영구가동 중단은 언제 됩니까”라는 문 대통령의 한마디로 산업부 보고서, 원전 경제성 평가 등이 조작됐다는 취지의 발표가 나오며 ‘청와대 개입 의혹’이 일었지만, 문 대통령은 모른척했다. 발표 당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여민관에서 룩셈부르크ㆍ이탈리아 총리, 이집트 대통령 통화 일정 등을 소화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감사 결과에 대해) 입장을 낼 것은 없을 거로 보인다”고 했다.

이후에도 문 대통령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관련된 의혹에 묵묵부답이었다. 22일 인천 송도 스마트시티 통합운영센터를 방문해 “한국판 뉴딜로 세계 최고의 스마트시티 국가로 나아가자”고 했고, 28일 시정연설 차 국회를 찾아서는 “K-방역은 전세계의 모범이 되고, 경제에서도 기적 같은 선방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천으로 시민 심판을 받는 게 책임 있는 도리”라며 사실상 ‘서울ㆍ부산시장 무공천’ 당헌 뒤집기에 나섰다.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ㆍ보궐을 실시하면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였던 2015년에 만든 조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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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인천 연수구 송도 G타워에서 한국판 뉴딜 연계 스마트시티 추진전략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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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함께 30일 친환경 미래차의 현장인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 미래형 모빌리티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3D프린팅 전기차를 시승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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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혁신이라며 앞장서 만든 당헌이 파기되는데도 문 대통령은 말을 아꼈다. 대신 이날 테워드로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게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높이 평가해주셔서 고맙다”는 트위터 글을 올렸고, 다음날(30일)에는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을 방문해 “한국판 뉴딜을 미래차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으며 31일에는 북한산 둘레길 산행에 나섰다.

11월 17일 국무총리실 산하 신공항 검증위가 사실상 ‘김해신공항 백지화’ 방침을 발표하자 세간의 시선은 다시 문 대통령을 향했다. 동남권 신공항은 10여년간 영남 지역을 지배하던 지역 이슈이자, 천문학적인 예산이 투여되는 국책 사업이어서다. 이 때문에 과거 전임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논란이 불거지고 정리해야 할 때마다 직접 나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대선 공약인 ‘TK(대구ㆍ경북) 신공항’ 백지화 뒤 “경제적 타당성이 결여될 경우 국가의 부담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대통령인 저의 책임”이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김해공항 확장’ 결정을 내린 뒤 “외국 전문기관 용역 결과 김해공항 확장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결론이 났다”며 설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검증위 발표 이후 일주일을 넘기도록 아무런 언급이 없다.

18일에도 논쟁적 사안이 터졌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가 성과 없이 종료된 것이다. 173석의 거여인 민주당은 곧바로 공수처법 개정안 착수에 들어갔다. 7명의 추천위원 중 6명의 동의를 얻도록 해, 야당 비토권을 보장해 준 기존 방식을 뒤집겠다는 뜻이다. 국민의힘은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5월 청와대 회동에서 문 대통령이 ‘공수처는 야당 동의 없이 절대 출범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모르쇠한다”고 비난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인천 송도에서 열린 바이오산업 행사를 찾아 “바이오 헬스 투자로 9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를 발표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추-윤 갈등의 정점이었다. 특히 지난달 22일 윤 총장의 대검 국정감사 이후 양측의 갈등은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이를 매듭지어야 할 문 대통령은 조용하기만 했다. 이날도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문 대통령은 법무부장관 발표 직전 보고를 받았고, 별도의 언급은 없었다”(강민석 대변인)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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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대한민국 인공지능’을 만나다 행사에서 김윤 SKT 부사장으로부터 국내 최초 개발한 인공지능 반도체를 증정 받고 있다. 청와대사지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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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자 추천위원회의 참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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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집권 3년 반이 넘도록 문 대통령이 갈등 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정자로 나선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개월 남짓한 기간은 청와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의혹과 이슈가 연이어 터진 시기였다. 그럼에도 묵묵히 뒤에만 남아 있는 문 대통령을 향해 야당은 "비겁하다"고 했고, 일반 대중 사이에선 "질린다"며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신평 변호사는 25일 언론 기고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꼴불견을 보며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문 대통령의 침묵"이라며 "문 대통령의 큰 특징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마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내각제인 독일 대통령처럼 국내 정치 이슈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태도”라며 “월성 1호기, 신공항 등 현안마다 대통령이 입을 닫아 버리면, 정치적 책임을 질 주체도 실종되고 만다”고 했다.

한달 넘게 이어지는 '문 대통령 침묵'에 대해 청와대 입장을 묻자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윤석열 직무배제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 (윤석열) 징계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란 말이냐.”

손국희ㆍ윤성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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