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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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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한류에 日"위기감"...그들은 왜 '블랙핑크'에 열광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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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문재인 대통령과 유명희 장관이 청와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서 일본의 서명식을 보며 박수치고 있다/사진=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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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15개국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에 가입하면서 세계 최대 FTA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이번 체결로 한국 정부가 중점 추진해 온 '신남방 정책'에도 한층 탄력이 붙게 됨에 따라 동남아 시장에서 한류 확산에 거는 기대도 커졌습니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인식된 경향이 있지만, 동남아 시장은 한국에 있어 일본에 버금가는 중요한 시장입니다. 특히 한일 양국은 그간 드라마,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 시장을 중심으로 동남아에서 경합해 왔습니다. 사실, 진출 시점 면에서도 수십 년 이상 앞섰지만 일본이 아세안에서 갖는 영향력은 한국에는 소위 '넘사벽'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태국,미얀마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막대해 ODA(공적 자금 원조) 등 정치경제적 영향력과 별개로, 일본은 문화적 패권을 쥔 나라로 인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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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중문화에 있어 동남아에서 일본이 누리던 위상은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문체부 산하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내놓은 '2020 해외한류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남아 4개국 국민이 꼽은 '자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에서 일본 드라마, 예능, 영화가 차지한 비율은 미국, 한국은 물론 중국 콘텐츠보다도 낮았습니다. 동남아에서 처음 한류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여 년 전 일이지만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일본 내에서 의식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日언론 "태국서 한류의 힘 목격…위기감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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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야후 재팬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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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발간하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한일 양국 대중문화의 위상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한류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일본에서 더 위기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는데, 해당 기사는 10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는 등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태국에서 애니메이션 이외에 일본 콘텐츠가 누리던 인기는 한류에 잠식된 지 오래"라며 "일본 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라는 건 일본인들만의 착각"이라고 주장했죠.

태국은 동남아 국가들 중에서도 일본의 존재감이 큰 나라입니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문화가 유입되면서 태국에서 일본은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도 태국에서 일본 문화는 음식 등 다양한 형태로 곳곳에서 소비되고 있고 국가 이미지 또한 좋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태국의 젊은 세대에게서 과거와 같이 일본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류가 지금 같은 인기를 얻기 전에 태국 대중음악계는 아라시 등 J팝 선두 주자들이 주름잡고 있었지만 점차 존재감이 옅어졌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K팝 스타들입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태국에서 K팝 인기는 최근 전개된 반(反)정부 시위 지원을 위한 기부금 모금 운동에서도 나타납니다. 태국 젊은이들은 팬들끼리 연대감을 느끼고, 연예인 이미지도 좋아진다는 이유로 연예인 팬클럽을 통해 기부를 했는데, 기부금 총액 중 80%가량이 K팝 팬클럽들 로부터 모인 것이었습니다. 반면 일본 연예인 팬클럽에 모인 액수는 기부금 총액 중 1%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태국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 수에서도 이 같은 변화는 감지됩니다. JETRO(일본무역진흥기구)에 따르면 2017년 이전까지 3년간 태국 지상파가 방영한 외국 방송프로그램은 한국이 40개였던 데 반해 일본은 14건에 그쳤고 일본 드라마 방송 횟수는 매년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거대 내수 시장에 되레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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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일본 영화는 국내 시장만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해외 진출 의욕이 떨어지고, 국내 관객에게 어필할 것 같은 기획만 해갈라파고스화가 심해졌다"고 말한 바 있다/사진=매경DB


태국 등 동남아에서 일본 콘텐츠의 위상이 추락한 원인에 대해선 일본 국내외에서 이미 많은 논의가 이뤄져 왔습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건 역시 일본 기업들이 해외 진출을 꺼리고 내수에만 몰두하다 경쟁력을 상실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비록 2014년 전후 중국에 역전되긴 했지만, 일본의 콘텐츠 시장 규모는 여전히 세계 3위로 한국의 3배에 달합니다. 내수 시장이 크다 보니 가전, IT처럼 콘텐츠 산업에 있어서도 일본 기업들은 국내 수요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주, 유럽도 아닌 동남아는 일본 기업들로선 수익성 리스크로 진출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시장 이었습니다. 큰 내수시장이라는 유리한 조건이 되레 일본 엔터 기업들의 해외 진출 저해 요인이 된 겁니다. 이는 일본 영화와 가전 산업 등에서 발견되는 '갈라파고스화', 즉 상품에 있어 자기들만의 표준에 안주하다 세계 트렌드와는 동 떨어지는 경향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일본 방송산업은 수익 구조상 제작물의 최초 방송만으로도 제작비 회수는 물론 수익도 낼 수 있는 규모의 안정된 광고시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굳이 국외 판매 등 2차 방영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작품당 한국에 비해 10배나 되는 광고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죠. 따라서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수익 회수가 우선시되고, 국외 판매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였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작은 내수시장은 한국 기업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더 큰 시장의 문턱을 넘게 하는 촉매제가 됐습니다. 최근 만들어지는 한국 방송 콘텐츠들 상당수가 처음부터 수출이나 외국 시청자들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며, 부족한 제작비를 수출을 통해 조달하기도 한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2018년 기준 한국 드라마 수출액은 연 2억4190만달러로, 일본 드라마 수출액(3148만달러) 대비 8배에 달했죠.


일류(日流)가장 오래간 인니, 지금은 한류 선호도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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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서 콘텐츠 시장 규모가 가장 크고, 성장세도 가장 가파른 나라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배 영향 때문인지 소위 '일류'(日流·일본 대중문화 유행 현상)가 동남아 에서도 가장 오래 지속된 곳이며 베트남, 태국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한류가 늦게 전파된 곳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류는 1980년대 '오싱' 이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시작돼 2000년대까지 계속됐습니다. 패션도 일본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이 1990년대부터 같은 시기까지 젊은 층 사이에 유행했고, J팝은 2010년대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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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에서 1980년대 큰 인기를 끈 일본 드라마 `오싱`(좌)/2002년 인도네시아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가을 동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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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도네시아에서 한류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02년 무렵으로, 드라마 '가을 동화'와 '겨울 연가'가 연이어 히트를 한 이후입니다. 자체 제작보다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는 편이 비용은 적게 들고 시청률 효과도 보자 현지 방송국들이 한국 드라마를 대량 방영하면서 한류는 점차 확산됐습니다. 초기 드라마가 중심이었던 인도네시아 내 한류도 지금은 K팝으로 중심이 옮겨간 상태입니다. 그리고 동남아 주요 4개국(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 현재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예능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 콘텐츠가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에서 빠르게 확산된 요인 중 하나는 일본에 비해 느슨한 저작권 검열과 단속입니다. 일본에서는 저작권이 최근에야 일원화돼 드라마 한 편을 수출하려 해도 원작자, 각본, 출연자, 음향 등 모든 권리자들에게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현지에서 한국에 비해 일본 콘텐츠는 접근도가 떨어지거나 합법적으로 구하더라도 철 지난 것만 손에 넣게 되니 찾는 이들도 점차 줄어들게 된 겁니다. 해적판 등 영상 제작물의 불법 유통은 큰 문제지만, 역설적으로 현지인들로 하여금 접근을 쉽게 해 한류의 빠른 전파로 이어진 면도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지인 멤버' '적극적 투자' 동남아 한류 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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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지수, 로제, 제니, 리사. 특히 리사는 태국인으로서 동남아에서 인기가 많다/사진 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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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K팝 인기는 2010년대에 접어들며 크게 고조됐습니다. K팝 가수들의 역량과 콘텐츠 수준도 요인으로 꼽히지만, 한국 기획사들의 전략적이고 적극적인 시장 공략도 주효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K팝그룹의 현지 국적 멤버들이 아세안인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예를 들어 '2PM'의 닉쿤을 시작으로 '블랙핑크'의 리사 등 태국인 멤버들은 고국에서 최고 스타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하는 건 이들이 태국인이지만 태국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적도 다르고 인접국끼리 라이벌 의식도 존재하지만, 리사 라는 자신들과 같은 "아세안인" 이 K팝 무대에서 활약한다는 데서 오는 동질감과 뿌듯함이 팬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태국뿐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전원 현지 국적 멤버로 구성된 K팝 그룹을 만드는 등 한국 기획사들의 동남아 공략 행보는 매우 적극적입니다.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콘텐츠에 투자하는 비용 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드라마 제작비가 한국 드라마보다 평균적으로 높게 책정됐다지만 지금은 반대입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최근 한국 드라마는 작품당 100억~3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데 반해 일본 주요 방송의 드라마 제작비는 작품당 1억~5억엔(약 11억~53억원)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투자액 차이는 곧 작품의 퀄리티 차이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무역진흥기구는 이에 대해 "라이선스 비용은 비슷하지만 일본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 비해 편수가 적다 보니 시청률이 오르려 할 때쯤 끝나버려 현지에서 수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동남아 4개국 52% "한류 1~4년 갈 것"…지속 발전 물음표
한류의 약진 때문인지 일본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쿨 재팬'이란 브랜드 명을 내세워 주로 동남아를 포함한 신흥 시장 공략에 공들여 왔습니다. 태국,베트남,싱가포르에서 일본 정부가 쿨 재팬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무렵이었죠.

그러나 싱가포르에 오픈했던 '일본 전문 백화점'을 시작으로 관제 영화사 등이 수십억 엔 적자만 내고 매각 되는 등 사업들이 성과를 못 내자 국내외에서 호된 비판에 직면해 왔습니다. 2018년 경영진을 교체하는 등 절치부심했지만 2019년 상반기 누적 적자가 180억엔을 넘어서는 등 최근에도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애니메이션, 게임 등 분야에서 영향력은 여전하나, 한때 동남아에서 독보적인 대중문화적 위상을 갖던 일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모습이 "자국 콘텐츠가 선호되지 않고 있다는 불편한 현실은 외면한 채 '쿨 재팬'이라는 명칭 자체에서 보이듯 자기도취에 빠진 결과"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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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지적이 비단 일본에게만 해당 될거라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한류가 현재 동남아에서 각광 받고 있다고 해도 향후 지속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동남아 4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과반수인 52%가 한류를 "짧게 1년, 길어봤자 4년 정도 갈 것"으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이미 수년 전부터 획일성으로 인한 식상함과 지나친 상업주의 등을 이유로한 반한류 기류도 곳곳에서 감지돼 왔습니다.

여느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에서도 수용자 기호는 계속 변하게 마련입니다. 지금까지 이룬 한류 성과가 앞으로를 보장해 줄 순 없습니다. 안주하고 자만하다 퇴보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은 한국의 모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고 치부하기보다,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 한류의 지속 발전을 도모 할 수 있는 기업들의 노력과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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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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