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재호. 연합뉴스 |
반세기가 넘게 연기자로 활동하며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았던 배우 송재호가 지난 7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따르면 송재호는 지병으로 1년 이상 투병하던 끝에 지난 7일 세상을 떠났다.
북한 평양 출신인 송재호는 동아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1959년 KBS 부산방송총국 성우로 데뷔했다. 배우로서의 경력은 1964년 영화 <학사주점>으로 시작했다. 1968년에는 KBS 특채 탤런트로 선발됐다. 이후 고인은 반세기가 넘도록 스크린과 안방 극장을 넘나들며 200여편이 넘는 작품에서 폭 넓은 연기를 펼쳐왔다.
젊어서는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반항아 역할 등으로, 나이가 들어서는 인자한 아버지 역할을 연달아 소화하며 ‘국민 아버지’로 사랑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1981), 드라마로는 1980년대 높은 인기를 누린 <보통사람들>·<열풍>, 김수현 각본의 <부모님 전상서>(2004~2005) 등이 있다. 2010년에 들어서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연평해전>과 드라마 <싸인>·<추적자>·<동네의 영웅> 등 여러 작품에 출연했다. 최근작은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과 <질투의 역사>다.
고인은 병세가 깊어지기 전까지 평생을 연기에 전념하며 50여년의 세월을 대중과 호흡했다. 2011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그는 “나이가 90이 돼도 움직일 수만 있다면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란 직업을 택한게 후회없고, 행복하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바 있다.
2012년에는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일원으로서 KBS를 대상으로 밀린 출연료 지급을 촉구하며 촬영거부 투쟁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 스스로는 생계 걱정을 안 하지만 이 돈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후배 연기자들을 위해서 결심했다”며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송재호는 배우뿐 아니라 다양한 이력으로도 주목 받았다. 1979년 서울용호구락부 소속 사격연맹에 선수로 등록된 그는 국제사격연맹 심판 자격증도 갖춰 1986년 아시안게임 사격종목 국제심판, 1988년 서울 올림픽 사격종목 보조심판으로도 활약했다. 2000년에는 밀렵감시단 단장도 지냈다.
환경, 어린이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1999년에는 99하남국제환경박람회조직위원회 홍보위원으로 활동했고 최근까지도 야생생물관리협회장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홀트아동복지회 홍보대사, 문화재사랑 어린이 창작동요제 홍보대사를 지냈다.
고인의 별세 소식이 알려지면서 추모와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일 페이스북에 “국민 배우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원로배우 송재호 선생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고인께서는 평생을 연기에 전념하며 반세기 넘는 세월을 대중과 호흡한 ‘국민 배우’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년 이후에는 인자한 아버지 역으로 친숙해지셨지만 젊은 시절 제임스 딘 같은 반항아 이미지를 기억하시는 국민도 많다”며 “2012년에는 밀린 출연료 지급을 촉구하는 촬영 거부 투쟁을 벌이며 ‘나는 생계 걱정을 안 하지만 이 돈을 받아야 생활할 수 있는 후배 연기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끝으로 “참 따뜻한 배우이셨다. 많이 그리울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8시30분이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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