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굴' 리뷰
이제훈·조우진·신혜선·임원희 주연
태생적 한계 극복한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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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선릉을 도대체 왜 도굴하나요, 우리 문화재를 왜 훔치려하죠?"
고분·유적을 몰래 발굴해 거기에서 꺼낸 부장품들을 업자나 후원자에게 파는 행위. 이런 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도굴꾼이라 칭한다. 영화 '도굴'(감독 박정배)은 도굴꾼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기에 이같은 태생적 물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바로 고물이 아닌 땅속에 묻힌 우리 문화재를 캐내어 돈을 번다는 설정이 전면에 깔려있기 때문.
아무리 오락적 재미를 추구하는 엔터테이닝 케이퍼무비라 할지라도 영화를 고르는 관객에게 최소한의 설득이 되어야 티켓을 구매하고, 두 시간에 달하는 시간을 투자할 터. 영화 보기에 앞서, 도굴꾼을 전면에 내세운 설정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예비 관객에게 그런 걱정을 잠시 넣어두라고 말하고 싶다.
'도굴'의 영제는 '컬렉터스'(Collectors)이다. 제작진은 '도굴'에서 '컬렉터'로, 또 '컬렉터'에서 '도굴'로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꿔가며 고심해왔다. 바로 이같은 우려를 해왔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도굴'이 상업영화의 잘빠진 제목으로 비치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컬렉터'가 더 적절했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
도굴꾼으로 분하는 강동구(이제훈 분)와 존스 박사(조우진 분), 삽다리(임원희 분)의 행위는 상업영화 속 부담 없이 즐기기 좋은 범주에서 행해진다. 어떤 동기를 가지고 행하는지도 명백히 그려진다. 이는 극 말미 큰 재미 요소로도 작용하지만 스포일러에 해당하기에 이만 줄인다. '도굴'을 볼 관객이라면 강동구와 일행이 어떻게, 또 왜 우리 문화재를 도굴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제훈은 "유물을 캐서 이득을 취한다는 프레임이 있지만, 극 말미 남다른 의미를 전한다"며 "강남 한복판 선릉을 파헤치는 설정에 의문과 걱정도 많았지만, 공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설정을 가져갔다. 영화에 다양한 유물이 나오는데 훼손이나 손상 장면을 최소화하며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주인공을 연기한 이제훈의 말처럼, 영화는 선릉을 왜 도굴하는지,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유쾌하게 그려내며 무리 없이 관객을 설득,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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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굴꾼 강동구는 귀엽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귀엽다. 이는 디테일한 캐릭터 묘사에 있다. 담배, 술이 아닌 초코파이, 후라보노 껌 등은 강동구로의 이입을 돕는 귀여운 오브제다. 이제훈은 시종일관 유쾌한 동구로 매력을 발산하며 범죄 오락 영화의 주인공으로 중심을 잘 잡았다.
'도굴'의 말미에 문화재 밀반출 문제가 언급된다. 이는 영화의 본론이라 할 수 있다. '도굴'은 마치 이것이 본론이 아닌 것처럼 상업영화 공식을 빌려 본론을 심어넣었다. 일제강점기 때 성행한 도굴과 밀반출된 일본 ‘오구라 컬렉션’, 21세기 중국 지안에서 일어난 고구려벽화 도난사건을 언급하며 다음 시즌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상황 속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도굴'로선 아쉬울 것으로 보인다.
'도굴'의 또 다른 재미는 오락적 재미와 영화의 리얼리티 구현을 동시에 완성해냈다는 점이다. 특히 후반부 땅굴 장면은 실감 나게 재현돼 몰입을 돕는다. 중반 등장하는 벽화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윤 실장(신혜선 분) 캐릭터는 아쉽다. '범죄의 재구성'(2004), '타짜' 시리즈, '도둑들'(2012) 등 케이퍼 무비에서처럼 성적 텐션을 안기는 역할에 그치고 만다. '도굴'은 다수 케이퍼 무비를 통해 소비돼온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답습한다. 이는 아쉽지만, 후반작업에서 윤 실장 분량을 상당 부분 걷어낸 것으로 보인다.
'도굴'은 11월4일 개봉했다. 러닝타임 114분. 12세 이상 관람가.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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