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늦었지만 고맙다" 20년 억울한 옥살이 윤씨의 한마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복역 후 출소한 윤성여씨가 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그나마 진실을 말해줘서 여기까지 온 것이죠.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 사람(이춘재)한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53)씨는 2일 '실제 범인' 이춘재(57)가 증인으로 출석한 재판을 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7차 사건' 발생 7일 뒤인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피해자인 중학생 박모양(당시 13세)은 집에서 잠을 자던 중 성폭행을 당하고 피살됐다. 1989년 7월 체포된 윤씨는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은 뒤 20년형으로 감형돼 만기 몇 개월을 앞두고 출소했다. 이춘재는 지난해 9월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윤씨는 이날 자신이 청구한 8차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춘재를 처음으로 직접 마주했다. 그는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준 것은 고마운 일이고 홀가분하지만 100% 만족스럽지는 않고 결심, 선고 등 결과가 나와봐야 100% 만족이 될 것 같다"며 재심 무죄에 대한 기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서 이춘재가 자신에게 사죄한 것은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고, "본인이 사과하니까 예의상 받아준 것"이라고 했다.

윤씨는 재판에서 이춘재가 과거 범행 현장 주변을 묘사하는 답변을 할 때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춘재가 "그 당시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할 때는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며 슬픈 감정을 드러냈다.

한편 윤씨는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올해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앞서 지난 9월 재판부는 사건 당시 '결정적 증거'로 쓰였던 현장 체모가 오래돼 DNA 손상으로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오자, 이춘재를 직접 법정에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춘재가 '증인 지위에 불과하다'며 얼굴 등에 대한 촬영을 불허했다.

고석현·최모란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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