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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눈물, 후회...이동국의 축구인생을 바꾼 '3번의 슛' [SS취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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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동국이 지난 10월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하며 회한의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뉴스


[스포츠서울 김경무전문기자]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몇번의 결정적 기회는 오기 마련이다. 그 기회를 잘 살려내면 특정분야의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할 수 있다.

1998년부터 23년 동안의 화려했던 K리그 선수생활을 마치고 2020년 11월1일 대구FC와의 시즌 최종전(오후 3시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동국(41·전북 현대). 국내 프로축구 무대에서 그는 이 경기 전까지 개인통산 547경기 출장, 228골 77도움 등 불멸의 기록(역대 최다 득점, 최다 공격포인트)을 세워 ‘레전드’로 영원히 남게 됐다.

‘라이온 킹’으로 불리던 이동국은 월드컵 본선 무대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자신의 축구인생을 바꾸거나,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었던 기회가 여러번 왔다. 그의 축구인생에 중대한 변곡점이 됐다고 할 수 있는 3차례 슛이 있었던 것이다.

그 첫번째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때다. 그해초 포철공고 졸업 뒤 3월 포항 스틸러스에서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 만 19세이던 그는 차범근 감독의 한국 축구대표팀의 막내로 생애 처음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는다. 그해 6월21일 프랑스 마르세유의 오렌지 벨로드롬. 이동국은 한국이 E조 조별리그 2차전(0-5 패배)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의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를 맞아 무기력하게 0-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32분 등번호 21번을 달고 서정원(11번) 자리에 투입된다.

이동국은 한국이 어이없이 당하고만 있던 후반 막판 오른쪽 중원에서 질주하다 임팩트 강한 오른발 중거리포를 작렬시키며 네덜란드를 위협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것으로 그는 국내에서 일약 주목받는 10대의 영건이 됐고, 귀국 후 소녀팬의 사인공세를 받는 등 전국적인 축구스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렇게 태극마크를 달고 월드컵 무대에서 깜짝 스타로 떠오른 이동국은 이후 월드컵 무대에는 불운의 연속이었지만, A매치 105차례 출전 33골(1998~2017년)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국가대표 생활을 마무리짓는다.

두번째는 미들즈브러 유니폼을 입고 치른 EPL 데뷔전이다. 2007년 초반 포항 스틸러스를 떠나 꿈에도 그리던 미들즈브러로 이적한 이동국은 그해 2월24일 레딩FC와의 2016~2017 시즌 28라운드 경기에 후반 40분 나이지리아 출신 야쿠부 아예그베니와 교체투입돼 추가시간까지 9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다.

후반 추가시간 3분을 넘어 이동국에게 절호의 득점기회가 찾아왔다. 왼쪽에서 길게 문전으로 공이 넘어오자, 페널티지역 오른쪽에 도사리고 있던 이동국은 자신의 장기인 발리슛을 논스톱 왼발로 작렬시켰다. 그러나 그의 발을 떠난 공은 아쉽게도 오른쪽 골대를 맞고 튕겨 나가 버렸다. EPL 데뷔 무대에서 보란 듯 첫골을 넣을 수 있었으나 축구의 신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동국이 이날 골을 넣고 화려하게 잉글랜드 무대를 출발했으면 그의 축구인생은 크게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이후 그는 2007~2008 시즌까지 한 시즌 반을 뛰었으나, 결국 EPL에서는 1골도 넣지 못하고 보따리를 싸야 했다. 그리고 돌아온 곳이 성남 일화. 거기서 1년 뛰다가 ‘재활공장장’으로 불리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09년 전북 현대로 이적해 이후 EPL 대신 K리그에서 찬란한 축구인생을 써가게 된다.

세번째는 2010 남아공월드컵 16강전에서 나온 결정적인 실축이다. 그해 6월26일 포트 엘리자베스의 넬슨 만델라 스타디움. 허정무 감독의 한국대표팀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맞아 전반 7분 당시 23세 루이스 수아레스(아약스 암스테르담 소속)에게 먼저 골을 내주고 끌려갔다. 수아레스는 한국 수비진이 문전에서 엉성하게 볼을 흘려주는 사이 문전을 파고들며 골을 성공시켰다.

한국은 그러나 힘을 내어 후반 22분 이청용이 문전 혼전 중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1-1 동점을 만들어 8강 진출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앞서 허정무 감독은 후반 15분 김재성을 빼고 이동국을 투입해 반전을 노렸다. 이동국은 이날 후반 42분 중원에 있던 박지성의 킬패스를 받아 문전 오른쪽에서 골키퍼와 맞서는 단독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너무 서둔 탓에 그의 슛은 발등에 제대로 맞지 않았고, 이날 부슬부슬 내린 비로 촉촉하게 잔디가 젖은 그라운드도 그의 원활한 슈팅을 막았다.

이동국의 발을 떠난 공은 데굴데굴 구르며 골문으로 빨려들어가지 못했다. 후반 34분 다시 수아레스한테 골을 내주며 1-2로 뒤져 패배 위기에 몰렸던 한국팀이었기에 동점골이 절실했지만, 이동국은 천재일우로 찾아온 그 골 기회를 허망하게 날려버렸다. 결국 허정무호는 1-2로 져 8강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이동국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반짝 스타로 등장했지만 2002 한일월드컵 때는 거스 히딩크호에 발탁되지 못해 한국의 대표적 골잡이이면서도 한국팀의 4강 신화를 먼발치에서 지켜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땐 K리그에서 당한 무릎 부상 때문에 결국 본선행이 불발되고 말았다. 그리고 4년 뒤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평생 두고두고 후회할 슛을 날리는 불행을 맛봐야 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은 불혹의 나이에 공격 ‘조커’로 한국대표팀 발탁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신태용 감독은 그에게 끝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월드컵과 EPL은, 되돌아보면 돌아볼수록 ‘라이언 킹’에게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무대다. 이동국이 지난 10월2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린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 무대에서 유종의 미를 기대해본다. kkm100@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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