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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권정당에서 ‘즈엉이당’까지…진보정당 23년,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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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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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도 예산안 설명을 위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하자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차벌법 촉구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국회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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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관 223호 아니겠어요? 아니면 여의도 정의당 당사이거나.”

어디로 찾아가면 되냐는 물음에 당대표 일정을 관리하는 이신호 당 대표실 부실장의 말이다.

질문지도 간략하게, 핵심키워드만 요약해 보내줘도 된다고 했다.

준비된 당대표다. 김종철 정의당 신임 당대표.

지난 총선 당시 오랫동안 지역구에서 터를 닦던 그가 비례순위에서 후순위로 밀렸을 때 기자가 알고 지내던 당 주변 인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20년 넘게 당을 위해 헌신한 결과가 이것이냐고.

고 노회찬 의원이나 심상정 의원과 구분해 정의당을 이끌 2세대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김 대표를 제외하곤 다른 2세대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스포트라이트가 2세대를 건너뛰고 류호정·장혜정과 같은 그 아랫세대로 넘어간 느낌이다. 관련 지적에 김 대표는 “2세대가 성장하지 못한 데엔 두 번의 진보정당 분당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부터로 보면 진보정당 역사에서 대략 잃어버린 12년”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치사에서 존재감이 있는 진보정당의 기원을 찾는다면 1997년 창당한 국민승리21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23년의 역사다.

노회찬·심상정은 2000년 창당한 민주노동당에서 현재의 정의당까지 진보정당의 역사를 만들어온 1세대들이다.

두 사람 다 86세대가 아니다.

심상정 의원은 서울대 사범대 78학번이다. 이른바 ‘학출’로 오랫동안 ‘언더’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진보정당운동에 합류했다.

고 노회찬 전 대표도 ‘학출 출신 노동운동가’라는 경력은 엇비슷하다. 노 전 대표는 인민노련이라는 지하운동 조직을 이끌다 한국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을 만든 전력이 있다.

2세대는 1세대와 뭐가 다를까. 김종철 신임당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90학번이다.

대학 시절 단과대 학생회장을 했고, ‘민중정치실현을 위한 대장정’이라는 학생운동 조직활동을 했다. (대장정이라는 이 조직의 명칭은 그의 제안에 따라 붙여졌다) ‘PD계’ 운동권 출신이다.

당대표 경선에서 그와 맞대결을 펼쳤던 배진교 의원은 인천연합(NL계)으로 분류된다.

“생전에 노회찬 대표는 “진보정당이 운동권 동창회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출신계보로 성향을 판단하는 것은 현실이다. 오히려 진보정당의 2세대가 NL·PD 또는 민주노동당 버전의 자주파·평등파와 같은 계파에 더 익숙한 세대다. 그런 의미에서 김종철 신임대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상은 특별하다. PD 출신이지만 NL도 싫어하지 않는, 그냥 진솔하고 우직한 사람이라는 평가가 많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김 대표체제의 숙제로 “집 나간 NL 계열을 어떻게 감싸 안으면서 동시에 반발하는 당내 PD 그룹을 끌고 갈 것이냐”는 걸 꼽았다.

■‘준비된 당대표’ 정의당 2세대 리더십은


진보정당의 지난 23년 역사를 보면 민주노동당 시절 김혜경 당대표를 제외하고 원외인사가 당대표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당대표 선거에서 국회의원도 아니고 원외인사를 대표로 뽑은 것은 그가 정의당식 혁신정치를 이끌어낼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본다. 특히 그가 언급한 ‘금기를 깨는 진보정치’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언급한 진보정치가 깨야 하는 금기는 넷이다.

보편증세, 의원내각제까지 염두를 두는 연동형 비례제로 선거제도 개편, 연금통합, 스웨덴식 노동유연안정성 도입.

보편증세나 연동형 비례제 개편은 그간 진보진영 내에서도 일각에서 주장해 왔다면 연금통합이나 노동유연안정성은 민감한 이슈다. 진보정당이 기반하고 있는 조직노동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김종철 신임 대표 인터뷰 참조)

“21대 국회 첫 국감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보기엔 딱 두 사람밖에 없다. 윤석열과 류호정.” 박신용철 연구위원의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논란이 ‘검찰개혁’이라는 그 이전 세대의 오랜 화두를 대표한다면 삼성 임원의 국회 불법 출입 폭로에서부터,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 앞에서 발전소노동자 작업복을 입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잊지 말아달라”고 벌인 1인시위까지 류 의원의 활동은 연이어 화제가 되었다.

꼭 긍정적인 의미만의 화제는 아니다.

‘어떻게든 관심을 끌려는 퍼포먼스 아니냐’는 비판적 시선도 있다.

“총선 전, 이른바 롤 대리게임 논란 때는 주로 젊은 남성들이 반감을 보였지만 원피스를 입고 등원했을 때는 젊은 남녀 모두 ‘저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원피스 이슈는 이른바 ‘유시민 빽바지 등원 논란’을 기억하는 중년 아저씨들 사이에서만 문제였다.”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 저자인 장석준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부소장의 말이다. 그는 “초창기에는 좋은 정치인이 될지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히려 창조적인 의정활동으로 자신에게 씌워진 부정적 시선을 돌파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오카시오 코르테스(미국 최연소 연방하원의원)’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장혜영 의원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앞 세대와는 전혀 다른 감수성과 가치를 지닌 밀레니얼세대 정치인의 출현”이라며 “한국의 류호정·장혜영 의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 전혀 다른 밀레니얼세대 정치인의 등장


21대 정의당 의원은 6명이다. 그런데 두 밀레니얼세대 의원의 활동을 제외하고 다른 의원들의 활약상은 그리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왜일까.

이어지는 안 교수의 말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다. 양당제 구심화 경향 아래에선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상황과 조건은 다르지만 좌파 일각의 비난을 무릅쓰고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미국 샌더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는 없었을까. 심상정·노회찬의 과거 활동만 놓고 보면 웬만한 민주당 의원 100명과 맞먹는 역량을 보였다. 노·심이 만약 민주당에 들어가 진보 블록을 형성했다면 어땠을까. 현재 대권주사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다투는 이재명 지사가 말하자면 소프트한 샌더스의 역할이다. 그 역할을 진보정당이 해야 했다.”(장석준 부소장은 “샌더스가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경선에 나간 것은 미국 정치지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었고, 바람만 일으켰지만 결국 선택받지 못하지 않았냐”며 “샌더스의 활동은 한국에서 진보정당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진보정당 출신으로 민주당으로 옮겨가 두각을 나타낸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부대표 출신인 박용진 의원이 대표적이다. 박주민 의원도 한때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을 거쳤다. 이소영 의원은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 출신 변호사 경력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민주노동당 시절 청년조직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민 의원과 함께 ‘21세기진보학생연합’ 활동을 한 강병원 의원은 1993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 수행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비슷한 연배로 1999년 국민승리21에서 권영길 대표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김종철 정의당 신임대표는 “자기의 뜻을 펼치기 위해 각자 다른 길을 갖고 모두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개인적인 정치 목표가 더 중요했다면 저도 비슷한 길을 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당이 정치를 바꾸는 가장 핵심 주체라고 봤다. 정의당을 키워서 집권하는 것이 비록 느리지만, 사회를 바꾸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23년의 진보정당 역사에서 특히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의 ‘선택’을 두고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대선이나 21대 총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즈엉이당’이라는 별명이 대선과 총선을 거치며 나왔다. 주로 친문성향 커뮤니티에서 정의당을 비판할 때 쓰는 멸칭(蔑稱)이다.

지난 총선에서 류호정·장혜영 의원과 같은 밀레니얼세대 여성 주자를 전면배치한 걸 두고 정의당이 “종전의 진보를 버리고 페미니즘 정당으로 ‘테라포밍(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에 지구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과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뜻으로 SF·게임계에서 널리 쓰이는 말)’한 것 아니냐”와 같은 비판이 나왔다. 또 다른 멸칭으로 사용되는 메갈당 등도 비슷한 불만 내지는 비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민주노동당 당직자로 활동했던 최병천 전 서울시 정책보좌관은 정당의 이념적 지향, 즉 ‘진보·보수 또는 안철수당과 같은 제3당’과 같은 가치지향을 떠나 정당 노선을 나눠보면 크게 수권정당과 등대정당으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수권정당은 51% 연합, 즉 다시 말해 현실적인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반면 등대정당은 ‘집권은 지향하지 않는 대신 자기 진영 내에서는 절반 이상이 지지하는 정책을 표방하는 정당’이다. 예컨대 동성혼이나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은 사회의제는 진보 내에서는 다수가 지지하지만 전체 국민 다수가 지지하는 이슈가 아니다.

“수권정당이 아니라면 남는 것은 등대노선이다. 소수파를 감수하지만, 그래도 사회의 이념분포에서 20% 언저리의 진보를 겨냥하는 것이다.”

최 전 보좌관이 보기에 최근의 상황변화는 역설적으로 민주당의 변화로부터 비롯됐다.

“민주당이 2010년 무상급식 이후 친노동 친복지까지 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야당을 9년 하면서 정당포지션을 왼쪽으로 노선전환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이 ‘자신은 다르다’고 자신하기 어려운 포지션이었다.”

그러다 다시 상황이 변했다. 그는 김종철 대표가 내놓은 일성을 보면 ‘자신들은 다르다’는 차별화에 확실히 성공했다고 말했다.

“51%의 지지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민주당이 내놓을 수 있는 건 내일 당장 대통령이 되면 쓸 수 있는 정책, 다시 말해 자신의 집권 기간인 5년 내외의 이야기에 한정된다. 하지만 정의당은 30년 후를 이야기해도 된다. 예컨대 ‘노동 유연안전성 도입 필요’을 주장할 때 그 전제조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장 집권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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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즈엉이당, 메갈당’이라는 비판

이후 진보정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일단 정의당을 제외하고도 다른 진보 소수정당들도 원내에 있다.

조정훈 의원이 소속된 시대전환과 용혜인 의원의 기본소득당이다.

네트워크 플랫폼 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시대전환은 지난 10월 11일 전당대회를 열어 조정훈 의원이 당대표로 당선되었다. 조 의원은 1호 법안 발표 대신 ‘입법노동자’로서 보좌진과 함께하는 첫 기자회견으로 화제를 모았다.

“민주나 정의, 국민과 같은 단어들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기본원칙이 될 수 없으며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이 모인”(박기홍 기본소득당 사무총장) 기본소득당은 당원의 80%가 30대 이하, 밀레니얼 세대로 구성된 당이다. 이 당은 내년 재·보궐 서울시장 후보를 지난 10월 17일 이미 선출했다. 지난 총선에서 고양에 출마했던 신지혜 당 상임대표다.

김병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은 “정의당 당대표 선거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각기 다른 성향의 네 후보가 출마했는데, 기존의 ‘노동’과 함께 ‘기후위기’, ‘젠더’를 포함한 다양성 존중을 네 후보 모두 중요한 기본 의제로 꼽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다른 기성 정당의 문제의식에서 하위·주변 의제 정도로 머물러 있는 것을 주요이슈로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의제를 제기했다고 정의당의 지지기반을 넓혔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넘어서지 않으면 지지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이라며 “진보정당이 그 이슈를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단계는 넘어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병권 소장은 “언론에서는 김종철 대표를 2세대라고 하고, 젊은 청년 의원들을 3세대라고 지칭하지만 2세대가 3세대와 같이 가면 더 긍정적인 여지도 있는 게 아니냐”라며 “그런 의미에서 2세대와 3세대가 한꺼번에 등장해 기성정당들이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면 국민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발전가능성은 무척 높다고 본다. 일반 서민들은 현 체제의 정당성에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노동시장의 불공평, 불평등문제에 기존사회경제체제는 어떤 대안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대변하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강한 의심과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의 말이다. 오 위원장은 ‘제대로된 혁신을 보여준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기존정당체제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대안을 요구하는, 시대적 민심에 가장 부응할 수 있는 것이 진보정당이지만 그간 20여년의 역사에서 원내소수정당에 머물렀던 것은 사실이다. 다수 민심과 소통하고 에너지를 만들 수 있는 의제기획과 아래로부터의 활동으로 당을 혁신한다면 도약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의당에 제기된 대부분의 비판을 보면 소위 ‘민주당 2중대’로 무임승차하겠다는 것이거나, ‘민주당 때리기’로 반대급부를 얻으려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비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종철 신임대표의 언론 인터뷰 등을 보면 이런 비판을 명확히 인식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라며 “포스트 노·심 이후 정의당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에 치러질 재·보궐선거와 2022년 대선·지방선거와 관련해서도 “단순 다수결제를 채택하는 현행 선거제도 아래에서, 예를 들어 2022년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이 단체장을 얻기란 쉽지 않다”면서도 “울산공업지대뿐 아니라 서울·수도권 지역에서도 하기에 따라서는 단체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영국 노동당이나 캐나다의 진보정당 성장 경험을 보면 (단체장 획득이) 전혀 불가능한 목표설정은 아니다”며 “가치동맹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민주당보다 정의당에 더 많이 기회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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