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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동학개미들의 주식 열풍

동학개미운동이 남긴 과제…‘세대’ 아닌 ‘계층’으로 나뉜 청년들 [창간기획-2030 자낳세 보고서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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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동학개미운동 그 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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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31층 전망대 유리창 바깥의 아파트단지 위로 태블릿PC에 띄운 주식 차트가 비춰져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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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상징되는 올해 20·30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주식 투자 열풍은 과거의 ‘투자 붐’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될까.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직후 정보기술(IT)과 벤처 위주로 불었던 투자 열풍은 상승장에 대거 뛰어든 당시 20·30대 X세대에게 ‘주식 트라우마’를 남겼다. 열풍 이후 ‘거품’이 꺼지며 대규모 손실을 입은 X세대는 주식 투자에서 멀어졌고, 피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들일수록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상승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는 현재의 주식 열풍이 20·30대에게 미칠 영향은 20년 전과 같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고성장·고금리였던 당시 경제 환경은 저성장·저금리로 ‘상전벽해’처럼 변했다. 그나마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주식 투자에서 손을 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며, 낮은 이자율에 빚을 내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청년층 내부의 불평등은 과거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동학개미운동 이후 한국 사회가 직면할 사회·경제적 의제에 대해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상화된 주식 투자를 어떻게 건전한 모습으로 정착시킬지, 투자 손실에 따라 계층 분화가 두드러질 청년층의 미래를 무엇으로 담보할지의 과제가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집단화되고 이에 호응해 정부가 ‘자산시장 띄우기’에 치중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거론된다.

■ 불로소득 ‘투기’ 아닌 경제활동 ‘투자’로

장기보유 세제 혜택·정보 비대칭 해소
‘도박장’ 아닌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야
기업 리스크 줄이고 투자자 수익도 안정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금융화가 진행되던 2000년대 초중반 성장한 20·30대는 투자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적은 세대로 평가된다. 경향신문이 만난 다수의 청년들은 주식 투자를 초저금리 시대를 극복하는 ‘적금’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투자가 자산을 늘리는 일상적 경제활동으로 자리 잡은 만큼, ‘불로소득’의 부정적 관점으로만 인식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소득을 불리는 쉬운 해법이 부동산 투자였으나 투기적 성격이 강해졌다”며 “단기적 이윤을 얻기 위한 투기가 되지 않도록 주식 투자를 건강하게 정착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주식 투자를 ‘장기 투자’ 형태로 유도하는 것이 동학개미운동 이후 바람직한 투자 문화를 만드는 방향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장기 투자는 주식회사의 자금 조달과 의사결정 과정의 리스크(위험)를 줄여 미래의 성장을 돕고, 이를 통해 투자자는 안정적 수익을 얻을 수 있어 긍정적이다.

주식 투자가 투기로 여겨진 데에는 짧은 기간에 주식을 사고팔며 고수익을 얻으려는 ‘단기 투자’가 많았던 탓도 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투자자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코스피가 16.1개월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27.8개월)와 홍콩 항셍지수(27.0개월) 등보다 짧았다. 동학개미운동이 한창이던 올해 8월 말 기준으로 코스피(4.9개월)와 코스닥(1.1개월)은 지난해 대비 11.2개월과 1.8개월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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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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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 성향이 강한 한국의 주식 투자를 장기로 전환하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투자 시장을 바라보는 태도’로 평가되는 세금 제도 정비다. 전문가들은 주식 투자 이익에서 손실을 뺀 ‘순이익’에 과세하는 ‘손익통산’ 제도와 함께 2023년부터 적용되는 ‘손실 이월공제’ 기간(5년)을 늘리는 방안을 제안한다. 손실 이월공제는 장기적으로 주식 투자에 따르는 세금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장기 보유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연기(이연)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최근 국회에는 주식 보유 기간이 길수록 양도소득세율을 낮춰주는 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주식 장기 투자 세제 혜택을 ‘자본 동결에 따른 거래 위축’ ‘장기 투자 여력이 큰 고소득층으로의 혜택 집중’ 등 이유로 반대한다. “이미 주식은 양도소득세 등에서 세제 혜택이 많다. 현재의 세부담마저 장기 투자 유도 명목으로 줄이면 과세 형평성에 어긋난다”(이종우 이코노미스트)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개인투자자들이 투자 정보로 활용하는 공시 자료의 신뢰도를 올려 시장의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과제도 제시된다. 최석원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개미들의 장기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주식시장의 정보 비대칭 구조를 개선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이 금융사를 압박해 자료의 중립성·객관성을 해치는 행위, 기관투자가들이 미공개 사전 정보를 획득하는 행위 등은 주식시장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낮추는 요인이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펀드’에 비판적 의견이 담긴 증권사 리포트가 지난달 돌연 비공개 전환되자 금융투자업계를 중심으로 ‘외압’ 의혹이 나오기도 했다.

■ 버블 이후의 손실, 양극화될 청년층

버블 꺼진 후 손실 복구 가능 여부 따라
‘빚투’ 청년 등 빈곤층 전락 대비도 필요

20·30대 동학개미들의 주식 매매에 힘입어 주가가 올라가는 만큼 한편에서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청년들이 상승장에서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등의 방식으로 ‘빚내서 투자(빚투)’한 경우가 크게 늘었고, 이는 향후 맞이할 하락장에서 고스란히 손실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학개미운동은 투자에 참여한 청년층 내부의 사회·경제적 계층 분화를 가속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빚과 손실의 부담을 견뎌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이를 ‘피해의 계층화’로 표현했다. 그는 “투자 수익 차이로 인한 계층화보다는 버블이 꺼진 후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지에 따른 계층화를 걱정해야 할 때”라며 “2000년대 초반 투자 붐이 꺼지며 카드대란이 발생했고, 이때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다수가 신용불량 상태에 빠져 빈곤층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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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코로나19로 주가가 폭락하자 20·30대 청년들은 ‘위기는 기회’라는 생각에 대거 주식시장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향후 ‘동학개미운동’으로 불리는 주식 투자 열풍이 잦아들고 주가가 가파르게 하락한다면 얼마나 손실을 견딜 수 있는지에 따라 청년세대 내 양극화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스닥지수는 정보기술(IT)과 벤처 투자 열풍에 힘입어 1999~2000년 거침없이 올랐으나 이후 ‘닷컴버블’이 터지며 급락했고,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약세를 면치 못했던 코스닥지수는 올해 코로나19로 반등세를 보이다 최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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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내 양극화 심화로 한국 사회가 청년층의 삶을 어떻게 보장할지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주식시장 참여와 실패로 부각된 계층화와 자산 불평등은 청년을 세대의 관점으로 동질화해 뭉뚱그린 기존 ‘청년담론’의 실패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홍기빈 전환사회연구소 공동대표는 “청년들이 자산시장으로 몰려갔다는 것 자체가 지난 10년간 청년담론에 근거한 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인생을 자산시장에 걸었는데 이마저 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낸 청년들에게 사회정책 차원의 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청년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답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루는 거대한 문제”인 만큼 앞으로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방향성을 두고는 “삶의 불안정성과 불평등 축소”(이승철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청년·중년·노년에 이르는 인생주기 전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홍기빈 대표) 등이 언급된다.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부상한 기본소득 지급, 사회보장 시스템 확충 등이 구체적 방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

대다수 청년들이 자산 증식 기반으로 활용하는 노동소득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연세대에서 금융자본주의를 연구하는 박준영씨는 “돈을 벌어들이는 돈의 기반이 되는 노동소득이 늘지 않으면 청년 간 불평등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득과 노동소득의 격차가 커진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노동소득을 강조하는 것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김보형 미국 밴더빌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 행동하는 투자 계층, 버블 부양 경제로?

정부,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 치중 땐
더 큰 거품과 또 다른 경제위기 올 수도

과거 개별적 차원에 그쳤던 주식 투자자들의 목소리는 점차 집단화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의 연대를 돕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기술 활용에 익숙한 20·30대 투자자들은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적극적이다. 올해 정부의 주식시장 공매도 금지 및 금지조치 연장, 금융투자소득 과세 기본공제액 상향(2000만→5000만원) 등은 동학개미들의 집단적 요구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이 금융세제 개편과 관련해 “개인투자자들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 사회에 결과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더 크게 반영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경향신문 설문조사 결과 주식·부동산 등 12개 분야 중 4개 이상에 투자해본 20~34세 ‘적극적 투자자’ 그룹의 64.9%는 자신의 계층을 ‘중상·중’으로 인식했다. 이승철 교수는 “청년 주식 투자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내지는 중상층의 이해관계가 정치·사회적 영역에서 과대 대표될 수 있다”며 “결국 투자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소외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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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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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경제정책의 초점을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 부양에 맞출 수 있다며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저금리 시대에 주식시장으로 대거 유입된 투자자들의 자산 가격 유지가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고, 실물경제 반등을 도모하기 어려운 저성장 국면에서 자산시장 부양이 손쉬운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물경제가 불황에 빠지자 각 나라에서는 유사한 대응이 감지된다. 올해 2분기 역대 최악의 성장률(-32.9%)을 기록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추가 경기부양책 논의를 중단하며 “현재 우리 경제는 잘되고 있고 주식시장은 기록적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자산시장 거품에 의존하는 경제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실물경제와 주식시장의 괴리가 커질수록 ‘주식은 승승장구한다’는 믿음이 강해지고, 이는 개인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작용해 거품을 키울 수 있다. 역사적으로 거품 경제는 또 다른 경제위기로 이어졌다. 일본은 1980년대 말 실물경제 위기를 주식·부동산 호황으로 극복하려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에 빠졌다. 미국은 2000년대 초 주식시장의 ‘IT 버블’이 급격히 꺼지고 부동산 버블을 키우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에필로그] 청년에게 일과 집을

9월부터 두 달간 투자하는 MZ세대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유례없이 돈 공부에 적극적인 이들 세대의 생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일’ 그리고 ‘집’이었다. 지난 1~2월 경향신문은 신년기획 ‘녹아내리는 노동, 내:일을 묻다’에서 기술 발전과 자본주의 고도화로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노동의 미래를 주목한 바 있다. 창간기획 ‘2030 자낳세 보고서’를 통해 투자하는 청년들 목소리를 들어보니, 청년 투자 열풍이 노동환경의 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MZ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 ‘일의 불안정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투자하는 청년들 중 ‘일에 나의 미래를 기댈 수 있다’고 믿는 이가 거의 없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투자에 몰두하는 한 청년은 투자를 ‘구명조끼’에 비유했다. 직장에 매여 원하는 삶을 포기해봐야, 언제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청년들은 노동소득 아닌 금융소득으로 얻는 ‘경제적 자유’를 이야기했다. 돈을 벌어 지금 일하는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경향신문이 여론조사기관 ‘피앰아이(PMI)’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임대·투자 등 소득으로 생계비가 해결되면 일은 안 하고 싶다’는 청년은 12.5%에 불과했다. 요컨대 청년들은 현재의 일하는 방식이 ‘충분한 소득은 담보하지 못하면서 삶을 구속만 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청년들의 투자 목표는 ‘내집 마련’과 ‘노후자금 마련’으로 수렴했다. 미래를 낙관하는 정도 또한 주택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높았다. 부모 세대는 집을 사서 주거와 자산 증식을 동시에 해결했지만,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는 MZ세대 청년들은 주거도 노후도 막막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 중에는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불로소득을 노려 주식 투자에 몰두하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지금 청년들에게 ‘투자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주거는 불안하지 않게 해주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바탕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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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연·최미랑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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