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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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틀어쥐고 나서 그룹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그야말로 눈부신 도약이었다.
취임식에서의 약속대로 첨단 기술산업 분야를 더욱 넓히고 해외사업을 활성화해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서 토대를 닦았다.
이 회장은 1990년대 들어 그룹의 주요 사업체를 분리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룹의 소유와 경영 체제를 명확히 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1991년 11월에는 신세계[04170]와 전주제지(현 한솔제지), 1993년 6월 제일제당(현 CJ)을 분리했고 1995년 7월에는 제일합섬을 떼냈다.
이에 따라 전자·중공업·화학 등의 핵심 사업군과 이를 뒷받침할 금융서비스 사업으로 사업 구조가 새롭게 짜였다.
그룹을 정비한 이 회장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며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그룹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이 회장은 또 결단한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하늘 아래 직원들이 모였다. 운동장 중앙엔 무선전화기 등 삼성 마크가 붙은 전자제품 15만점이 놓였다. 해머를 든 직원들이 제품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이윽고 무선전화기엔 불이 붙었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한 이기태 당시 데이터사업본부 이사는 "내 혼이 들어간 제품이 불에 탔다. 그런데 그 불길은 과거와의 단절이었다"고 회고했다.
회장이 직접 나서서 '삼성의 품질만은 믿어달라'고 외쳐댄 강력한 메시지에 시장의 반응은 곧바로 나타났다.
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의 무선전화기 시장 점유율은 1년 뒤 시장 점유율 19%를 달성하며 1위에 올라섰다.
1990년대 중반에 일기 시작한 '애니콜 신화'는 국내 시장을 휩쓸고 세계로 뻗어나갔다. 당시 휴대전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던 모토로라가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다. 애니콜의 인기는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 시리즈 등 모바일 기기의 혁신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반도체에 대한 이 회장의 남다른 집념도 결실을 봤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이 같은 체질 개선과 미래 산업에 대한 집중투자는 삼성을 크게 변화시켰다.
이 회장 취임 당시 9조9000억원이었던 그룹의 매출은 2013년 390조원으로 25년 만에 40배나 성장했으며 수출 규모도 63억 달러에서 2012년 1567억 달러로 25배 커졌다.
시가 총액은 1987년 1조원에서 2012년 300조원을 넘어섰다. 총자산은 500조원을 돌파했다. 고용 인원(글로벌 기준)도 10만여명에서 42만5000여명으로 늘었다.
계열사 수도 비상장사를 포함해 17개에서 83개로 증가했다.
실패도 있었다. 이 회장에게 자동차사업은 젊은 시절부터의 꿈이자 필생의 도전이었다. 회장 취임 직후부터 자동차사업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 현대그룹의 매출을 넘어서려면 답은 자동차밖에 없다고 여겼다.
이 회장은 에세이에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다"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깊은 애착을 표현했다.
삼성은 '죽어가는 부산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 아래 부산 신호공단을 근거지로 상용차 사업에 뛰어들고 이어 승용차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다.
그러나 당시 삼성자동차는 차 한 대를 팔 때마다 150만원의 손실이 나던 사업체였다. 기아차 도산 사태와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금융당국은 삼성에 결단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이 회장은 눈물을 머금고 삼성자동차를 포기한다. 법정관리에 맡기고 이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채권단에 증여하기로 약속한다. 근로자와 하청업체에 대한 보상안도 내놓았다.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인수됐다.
[김승한 기자 winone@mkinter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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