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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가족장으로 치를 것, 조화·조문은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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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선영 앵커
■ 출연 : 김태민 경제부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취재기자와 함께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태민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별세했다는 속보를 지금 전해 드렸는데 오늘 몇 시쯤입니까?

[기자]
최초로 보도가 나온 건 9시 정도였고요. 그때 저희가 바로 삼성 측 주요 관계자들에게 곧바로 확인한 결과 삼성 측 관계자들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해서 급히 확인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만큼 갑작스럽게 별세한 것으로 보이고요. 2014년부터 6년여간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이건희 회장의 건강상태가 상당히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알려지기로는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 사실 살아 있는 상태다라면서 사망설을 일축해 왔었는데 오늘 급성심근경색이 악화하면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6년 전이었어요. 2014년 5월이었는데 그때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다. 갑자기 입원을 했고 위독하다, 이런 상황이 전해지지 않았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당시 2014년 5월에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이건희 회장이 쓰러졌고요. 그 당시에 삼성서울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 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는데 당시에 굉장히 급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건강 상황을 두고 굉장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고요. 결국 의식은 끝내 회복하지 못한 채 삼성서울병원 병동에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아온 상태였습니다.

[앵커]
지금 삼성전자 측에서도 장례 일정도 준비하고 경황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입장을 어느 정도 내놓은 것 같아요. 장례 절차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자]
일단 장례 절차는 간소하게, 지금 코로나 시국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겠다는 입장인데 아직은 기본적인 입장 하나만 나왔습니다. 소개를 해 드리면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 양해해 달라, 이 정도의 내용만 확인이 됐고요.

이제 막 유족들도 상황을 접하고 병원으로 가고 있을 것으로 지금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상황이 점차 진행되면 오늘 오전이나 이르면 오후쯤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장례 일정이 확인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이제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향년 78세로 영면에 들게 됐는데요. 아무래도 장기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한국 재계의 큰 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잠시 소개를 해 주실까요?

[기자]
이건희 회장 생애를 잠시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1942년 1월 대구에서 출생을 했고요. 8남매 가운데 7째. 아들 셋 중에서는 막내였습니다.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있었고요. 그다음에 1987년 45살 나이에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유명하죠.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모두 바꿔라라는 일성과 함께 삼성그룹을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장본인. 우리나라 재계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앵커]
김태민 기자도 지금 이건희 회장의 발자취라고 할까요? 간략하게 소개를 해 주셨는데요. 고 이건희 회장,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면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켜놨다, 이렇게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출은 39배가 늘었었고 그리고 시가총액은 300배 넘게 키웠습니다. 이 내용을 정리해 드리죠. 계훈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선대 이병철 회장에 이어 삼성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건희 :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6년 뒤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발언을 통해 신경영을 선언하고 재창업에 가까운 경영혁신에 나섭니다.

이 회장 취임 25년 뒤 삼성은 엄청난 성장을 합니다.

1987년 10조 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은, 25년 만인 2012년 현재, 383조 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습니다.

시가총액은 1조 원에서 300배 이상 커졌습니다.

수출은 지난 25년간 25배 증가했는데, 특히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이후로는 15배의 증가 폭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습니다.

1987년 삼성그룹의 수출이 국내 총수출에서 차지한 비중은 13% 남짓이었지만, 2012년 수출액 1,567억 달러로 국내 총수출의 28%에 달합니다.

삼성의 글로블 브랜드 가치도 꾸준히 성장하며 2012년 세계 9위에 올랐습니다.

[정동일 /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 이건희 회장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 때문에 삼성그룹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신경영은 삼성그룹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데 가장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가 있죠.]

27년 동안 삼성을 이끌어 온 고 이건희 회장.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한 취임 때 약속을 지키고 영면했습니다.

YTN 계훈희입니다.

[앵커]
이제는 고인이 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자취를 돌아봤습니다. 김태민 기자, 많은 분들은 오늘 TV 아침에 틀어보시고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지금 사망 소식이 오전에 전해진 건데 그러면 지금 정확한 사망 시각은 확인이 안 된 건가요?

[기자]
그렇습니다. 사실 산업 쪽을 취재하는 저희도 깜짝 놀란 뉴스였는데요. 9시 50분쯤에 최초 보도가 나왔고 10분 뒤인 10시쯤에 삼성 측에서 이건희 회장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지금 최초 보도된 건 9시 50분, 오전쯤이지만 사실 사망 시점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새벽에 숨져서 그 사이에 대책을 논의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실제로 그 시점에 사망이 확인됐을 수도 있고요. 사실 가능성은 여러 가지인데요. 구체적으로 아직 사망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후쯤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사실 관계가 확인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앵커]
물론 가족들에게는 아픔이겠고요. 그리고 워낙에 재계 대표 인물이기 때문에 재계에서도 큰 슬픔일 것이고 또 세계 곳곳에서도 상당히 관심 있고 비중 있게 보도를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삼성을 키우면서 빛과 그림자도 있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 삼성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기도 했지만 어두운 면도 있었죠. 3세 경영 승계 과정에 어려움도 있었고요. 그리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자동차 사업에서는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김도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싸게 발행해 편법으로 이재용 씨에게 넘겼다는 의혹. 또 삼성SDS 주식 역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해 재용 [기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싸게 발행해 편법으로 이재용 씨에게 넘겼다는 의혹.

또 삼성SDS 주식 역시 신주인수권부사채를 이용해 재용 씨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것은 편법 경영권 승계 의혹의 핵심이었습니다.

결국 의혹의 정점에 있던 이건희 회장은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건희 회장 (특검 출석 당시) : 특검 수사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겠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여기에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비자금 의혹까지.

이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08년 회장직에서 전격 사퇴했습니다.

[이건희 회장 (사퇴 기자회견) : 삼성 국제회의장 할 일 많고 갈 길 멀지만, 지난날의 허물을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좀처럼 실패를 모르던 이 회장은 자동차 사업에서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한 뒤 1998년 SM5를 선보였지만,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사재까지 털어 넣었지만 결국 회사는 2000년 프랑스 회사 르노에 매각됐습니다.

반도체 공장 직원들의 백혈병 발병과 사망은 무노조 삼성의 그림자로 불렸습니다.

또 형 이맹희 씨와 유산배분 소송을 하면서 불거진 가족 간 불협화음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YTN 김도원입니다.

[앵커]
고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 빛과 그림자를 한번 짚어봤습니다. 김태민 기자, 지금 6년 투병이었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 투병이었고 워낙에 관심이 쏟아지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건강상태에 관해서 이런저런 보도도 있었고 또 오보도 한 번 있었잖아요.

[기자]
맞습니다. 사실상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단순히 개인의 사망뿐만 아니라 후계인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도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재계 쪽에 큰 관심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실제로 저희 기자들이 삼성 측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항상 당연히 따라오는 질문처럼 회장님 상태는 어떠시냐라고 항상 질문을 드렸거든요. 그때마다 삼성 측 관계자들은 의사소통만 어려울 뿐이지 건강하시다라는 답변을 계속해 왔었는데요.

실제로 이런 사망설 관련해서 지난 2016년이죠. 4년 전쯤에는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고 오후에 발표한다, 이런 루머가 돌아서 삼성 주가가 폭등하기도 하고 이런 여러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도 모두 오보로 밝혀졌는데 4년이 지난 2020년 오늘은 공식적으로 사망이 확인됐습니다.

[앵커]
워낙 재계의 비중이 큰 인물이니까 그랬을 것 같은데 이건희 회장이 걸어온 길. 여러 가지 발자취 중에서 경영철학도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은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주된 동력이 됐다고 할 수 있죠. 이 회장은 변화를 끌어 내기 위해 불량제품 200억 원어치를 불태워버린 적도 있습니다. 이 내용은 한상옥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이건희 회장은 취임 때부터 많이 만들기보다는 잘 만들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 : 삼성은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사회에 공급하고….]

하지만 뜻대로 안 됐습니다.

오히려 아귀가 맞지 않는 불량 세탁기 뚜껑 부품을 칼로 깎아서 대충 조립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사내 방송 전파를 타기까지 했습니다.

이 회장은 삼성을 3만 명이 만들고 6천 명이 고치러 다니는 집단이라고 혹평합니다.

[이건희 회장 : 회장이 되고 만 5년 몇 개월간 계속 불량 안 된다, 불량 안 된다, 질을 향해라. 그런데도 아직까지 양을, 양을, 양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고쳐지지 않자 1995년에는 충격 요법을 사용합니다.

[당시 삼성 사내 방송 : 다시는 불량제품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결의대회 현장입니다.]

품질 불량으로 수거된 무선전화기와 팩시밀리, 키폰 등 200억 원어치에 달하는 제품 15만 대를 불태워 버린 겁니다.

이후 삼성은 1994년 4위이던 무선전화기 시장에서 1995년 1위로 올라서며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이 20개가 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는 기업이 됐습니다.

그 뒤에는 양보다 질을 앞세운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 있었습니다.

YTN 한상옥입니다.

[앵커]
이건희 회장, 이런 경영 철학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왔고요. 김태민 기자,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이제는 이재용 회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렇게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삼성에도 큰 변화가 있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사실상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에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삼성은 이미 자리를 잡았고요. 6년 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면서 사실상 이건희 회장의 부재가 삼성그룹에 큰 타격이라고 볼 수 없었고요. 사실 6년여 시간 동안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체계, 그리고 차녀인 이부진 신라호텔 회장 그리고 이서현 씨까지 해서 3남매가 삼성그룹을 잘 맡아서 운영하면서 큰 잡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건희 회장의 사망이 공식 확인되면서 후계 구도에 대해서도 말이 많이 나올 텐데요. 사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이재용 부회장이 여러 경영권 승계 의혹 관련해서 송사가, 그리고 또 검찰의 기소가 있었고요.

앞으로도 법적 다툼이 상당히 오랜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이 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현재 삼성의 체제에는 큰 흔들림은 없을 것이다라는 게 당연한 얘기이고요, 이건희 회장의 사망으로 인해서. 하지만 앞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법정 다툼, 그 결과, 이 부분이 앞으로 삼성그룹을 이끌어나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앞으로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앵커]
어쨌든 이재용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것만은 사실이니까요. 이재용표 삼성은 어떻게 변할지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기울일 것 같고요. 이건희 회장표 삼성,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기업으로 이끈 이건희 회장 경영의 핵심 단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고비 때마다 던진 이 회장의 화두는 삼성은 물론 한국 경제 전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내용은 홍성혁 기자가 보도합니다.

소니 438달러, 삼성 348달러.

1993년, 삼성과 당시 일류기업의 격차는 TV 가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자고 외쳤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는 삼성에 이건희 회장은 일침을 가합니다.

[이건희 회장 : 2류 내지 2.5류, 잘해봐야 1.5류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류는 절대, 내 말에 절대라는 용어는 여간해서는 안 써요. 절대 안 된다 이거야 지금 안 변하면."

그것도 완전한 탈바꿈을 요구합니다.

[이건희 회장 :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 자식 빼고는 다 바꿔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2년 만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이 다시 꺼내 든 것은 위기론이었습니다.

[이인용 / 당시 삼성그룹 부사장 (2010년 3월) :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반도체, 스마트폰 등 세계 1등 제품이 스무 개에 달할 정도로 삼성이 성장했을 때에도 '1등과 자만의 위기와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며 긴장을 끈을 놓지 않습니다.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 불어넣은 이 주문은 삼성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YTN 홍성혁입니다.

[앵커]
한국 경영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이건희 회장. 지금 내용을 저희가 계속해서 보내드리고 있는데 지금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재용 부회장도 앞으로 긴 재판에서 싸움이 예상되고 있는데 이건희 회장도 경영 성과를 크게 이룬 면도 있지만 또 소송에 휘말려서 상당히 어려운 시간도 있었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지금 이건희 회장이 지금의 삼성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림자가 일부 있었는데요.

대표적으로 지난 2008년이죠. 삼성의 전 법무팀장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차명계좌가 적발되고 이후에 2008년 4월 임원들과 함께 불구속 기소됐던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건희 회장은 모든 책임을 지겠다 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었죠. 그런 부분이 이건희 회장이 삼성을 초일류기업으로 이끌면서도 일부 여전히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앵커]
삼성그룹을 재계 1위로 올려놓은 고 이건희 회장. 평소에는 과묵한 성격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하지만 한 번 발언을 하면 재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했던 주요 발언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강진 기자입니다.

[기자]
1987년 이건희 회장의 취임 일성은 초일류였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 1987년) :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이때부터 삼성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화두를 내걸고 변화를 꾀합니다.

[이건희 (삼성 신경영 선언 / 1993년 프랑크푸르트) :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

1993년 프랑크푸르트 발언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의지는 확고하게 드러납니다.

[이건희 (삼성 신경영 선언 / 1993년 프랑크푸르트) : 잘해봐야 1.5류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일류는 절대, 내 말에 절대라는 용어는 여간해서 잘 안 써요. 절대 안 된다는 얘기야, 지금 안 변하면….]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끊임없이 숙제를 던졌습니다.

쫓아오는 중국과 앞서 가는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 우리나라 전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5~6년 뒤 큰 혼란을 맞을 거라는 발언으로 끊임없는 위기의식을 강조했습니다.

[이건희 (2010년 12월) : 옛날 10년과 달라서 앞으로 21세기의 10년은 굉장히 빠르게 온다….]

정부 정책에 대해서 과감하게 쓴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건희 (전경련 회장단 회의 / 2011년 3월) : (MB정부 경제 정책에 점수를 매긴다면?) 참 어려운 질문인데 흡족하다기보다는 낙제는 아닌 것 같다.]

정치인은 4류, 관료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수준이라는 말로 우리 정치권을 거침없이 비판한 적도 있었습니다.

"놀아도 좋으니 뛰는 사람 뒷다리 잡지 마라." (1993년 6월)

"천재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2003년 6월)

인사에 관해서는 항상 신상필벌을 강조했습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서초사옥 출근 / 2011년 12월) :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끔 발탁을 하고, 못하는 사람은 과감하게 무르고….]

평소의 지론대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삼성을 일군 이건희 회장의 어록은 우리 기업사에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습니다.

YTN 이강진입니다.

[앵커]
지금 들으신 이건희 회장의 어록 하나하나가 경영계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게 됐는데요. 아무래도 이건희 회장의 별세 소식은 외신에서도 상당히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겠죠?

[기자]
그렇습니다. 워낙 이건희 회장이 국내 산업계에 미친 영향이 크고요. 실제로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에 사실 세계 시장에서 굉장히 하급 취급을 받던 우리나라 제품들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라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굉장히 우리나라 산업계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나라 삼성그룹이 전 세계 글로벌 브랜드 가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초거대 일류기업이기 때문에 외신에서도 아마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고요.

사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지가 아직 2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외신의 반응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데요. 아마 외신뿐 아니라 많은 전 세계 곳곳에서...

[앵커]
경영계에도 파장이 클 테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경영계에서도 재계 주요 인사들이 조의를 표명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끝까지 출연을 계속 보신 분도 계시지만 지금 TV 켜신 분들은 많이 놀라실 것 같은데 오늘 사망 소식을 확인하게 된 경위 그리고 앞으로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하겠다고 삼성에서 밝혔는지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주시죠.

[기자]
지금까지 내용 다시 한 번 간략하게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오전 9시 50분쯤에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최초로 보도가 됐고요. 10분 뒤쯤인 오전 10시에 삼성그룹 측에서 공식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사망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발표 문구를 보면 2020년 10월 25일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그리고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하겠다. 지금 유족들도 아마 삼성병원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요.

저희 취재진들이 다 가고 있는데요.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아직 나온 것은 없고요. 오후쯤에는 구체적으로 장례 일정 등이 확인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6년간의 장기 투병이었고요. 한국 경영계 거목, 오늘 쓰러지게 됐다는 소식 다시 한 번 전해 드리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태민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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