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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장르물에 러브라인?…이제 ‘그래서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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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OCN 드라마틱 시네마 4번째 작품 ‘써치’가 지난 17일 방영을 시작했다.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실종과 살인을 다룬 10부작 밀리터리 스릴러 드라마다. 그런데 ‘써치’에 대한 각종 미디어 반응들을 살펴보면 사뭇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써치’에도 물론 한국드라마답게(?) 기본적인 러브라인은 존재한다. 사건수사과정에서 만난 용동진(장동윤 분)과 손예림(정수정 분)은 사실 헤어진 연인관계란 설정이다. 그런 관계 특유의 긴장과 아이러니가 플롯 중간 중간 로맨틱 코미디적 감흥을 불어넣는다.

그런데 이런 구성요소도 예전 같으면 상당부분 비판대상이 되곤 했다. 미디어부터가 앞장서 그랬다. 애초 관계 중심인 가족드라마나 트렌디드라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수사물 등 장르드라마까지 러브라인이 빠지지 않느냐는 비판. 미국드라마는 의사와 변호사와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고, 일본드라마는 의사와 변호사와 경찰이 삶의 교훈을 일깨워주고, 한국드라마는 의사와 변호사와 경찰이 연애한다, 는 유명한 우스개로 상황이 잘 설명된다.

특히 2000년대 들어 ‘프리즌 브레이크’ 등 미국드라마 붐이 형성되면서, 한국도 밤낮 연애드라마만 만들지 말고, 미국식 드라이한 장르드라마를 지향해야 한단 주장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심지어 ‘겨울연가’와 ‘대장금’ 이후 한참 잠잠했던 드라마 한류 상황을 ‘밤낮 질질 짜는 연애드라마에만 몰두한 탓’으로 규정짓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종류 비판은 거의 보기 힘들다. ‘써치’를 놓고서도 마찬가지다. 비무장지대 살인사건 수사란 하드한 설정 하에서도 러브라인을 빼놓지 않은 점에 오히려 칭찬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미디어에서도 이 러브라인 부분을 잘 활용해 자칫 힘겨워지기 쉬운 무거운 분위기를 그때그때 환기시켜줘야 한단 주문이 등장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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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듯 미디어와 대중 반응이 180도 달라진 걸까. 이유는 간명하다. 그토록 비판받던 ‘연애=관계중심’ 한국드라마들이 지금 아시아권을 넘어 서구권까지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판데믹 사태를 타고 세계적 OTT 넷플릭스를 통해 일대 붐이 형성됐다. ‘사랑의 불시착’을 시작으로 ‘이태원 클라스’ ‘싸이코지만 괜찮아’ ‘청춘기록’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 이르기까지 연속 성공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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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모두 ‘연애=관계중심’ 드라마들이고, 어떤 의미에선 그에 특화된 드라마들이기도 하다. 결국 그간 숱하게 겪어온 드라마 한류 ‘주춤’ 현상도 그저 기존 유통 장벽의 문제였을 뿐, 넷 기반 글로벌 플랫폼으로 장벽이 무너지고 나면 얼마든지 글로벌 시장에서 일정 규모 이상 스테디 시장을 마련할 수 있단 점이 증명된 셈. 소위 ‘그래서 안 팔린다’가 아니라 ‘그렇기에 팔린다’는 점을 새삼 확인하게 됐단 얘기다.

이는 지난 2016년 영화 ‘부산행’ 글로벌 대성공으로 힌트를 남긴 부분이기도 하다. 그간 미국과 유럽 중심 좀비 서브장르에 한국 콘텐츠 특유의 진한 감정선과 관계중심 해석을 가미하자 전 세계적으로 매우 신선하고 독특한 접근이란 호평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기존 한류 팬들 사이에선 ‘감정이 없으면 한국 콘텐츠가 아니다’란 캐치프레이즈까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면 국내선 미디어는 물론 대중반응까지 180도로 달라진다. 1960년대부터 진행된 ‘수출신앙’ 국가 특성이 그렇게 발현된다. 아닌 게 아니라, K팝도 마찬가지 경로를 거쳤다. 2010년대 직전까지만 해도 미디어는 밤낮 ‘아이돌 천하’ 비판일색에 대중반응 역시 신통치 않았지만, K팝 아이돌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수출역군’으로 거듭나자 모든 논조와 입장이 일거에 180도 달라졌다. 오히려 K팝 아이돌을 ‘더 밀어줘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시점.

어찌 됐건 이외에도 레딧 등에서 볼 수 있는 해외 한국드라마 팬들 반응은 다양하다. 먼저 미국 등지처럼 시즌제가 아니고 12~20화 분량으로 모든 얘기가 끝나 더 좋단 반응들이 많다. 성질이 급해 빨리 끝(?)을 봐야하는 한국인들 기질 및 한국선 문화유행이 극단적으로 빠른 탓에 등장한 경향이다. 속편이 별로 없는 한국영화 상황으로도 간단히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특성이 수년에 걸쳐 같은 설정을 지켜보다 결국 인기가 떨어져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고 마는 시즌제 드라마 속성에 질린 이들에겐 오히려 반가운 형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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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유교문화권 특유의 보수적 가치관이 콘텐츠마다 기본적으로 배있는 분위기를 환영하는 반응도 많다. 이는 K팝도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 ‘Dynamite’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를 경쟁했던 미국 여성솔로가수 카디비의 ‘WAP’ 가사와 그 반응만 들여다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 중심 서구권이 ‘너무 막 나가기에’ 오히려 한국의 보수적 콘텐츠를 환영하는 이들도 늘고 있단 얘기. 한편, 관계성 중심이기에 등장인물들이 많고, 그렇게 다양한 인물군상이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칭찬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 콘텐츠가 그렇게 관계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원인이 있다. 산지가 국토 70%인 좁은 땅에서 쌀 문화권 특유의 많은 인구가 다닥다닥 붙어 살다보니 일어난 농경사회 집단주의 풍조라 봐야한다. 엄밀한 장르 콘텐츠조차 결국은 사람과 사람 간 관계와 그 관계를 규정짓는 인간감정의 문제로 천착하게 되는 흐름이 거기서 나온다. 그렇게 탄생된 콘텐츠가 서구 개인주의사회 이성 중시 풍조 하에서 나름의 차별성과 독보성을 지니며 어필하고, 특히 관계와 감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여성층 중심으로 널리 선호되는 추세란 것.

결국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란 캐치프레이즈도 근본적으론 상당히 단순한 논리란 얘기다. 미국 등 문화선진국 트렌드와 형식만 따라잡으려다 보면, 오히려 차별성과 독보성 측면에서 선택의 이유를 잃게 된단 논리. 오히려 국지정서를 보다 고도화시켜 풀어내려는 노력이 훨씬 유효하다. 또 하나,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를 그저 전통문화 품목의 세계화 차원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단 점이 있다. 현대사회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배경이나 형식 등을 취하되, 그 해석과정에서 한국 특유 정서로 재편하는 방식이 더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어찌 됐건 한국대중문화산업 입장에서 참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는 시점이다. 우리도 이제 시즌제를 해야 한다, 장르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밤낮 사랑 타령만 해선 안 된다 등등 무조건 ‘할리우드 따라잡기’ 얘기들이 미디어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그렇다. 해외 문화진출 전략이란 결국 남의 것만 따라 해서도, 자기 것만 고집해서도 안 되며, 그 중간 어느 지점을 찾아내 공감대와 차별성을 동시에 확보해내는 작업이어야 한단 점이 새삼 와 닿는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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