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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63 : 도시의 새벽을 밝히는 사람들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내가 아트센터를 청소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기 때문이고 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청소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오는 게 싫어졌다. 내가 청소해 놓은 곳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깨끗이 청소를 하고 나면 로비에 들어서는 사람은 다 밉상이고, 화장실로 향하는 사람은 괜히 얄미웠다.
그렇게 한동안 혼자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미워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엉뚱한 데에 집착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청소는 사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인데……' 내가 변기를 닦는 건 변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금 상기했다. 새하얗게 빛나는 세면대를 보며 뿌듯해할 것이 아니라, 급한 볼일을 보러 들어가는 사람들, 더러워진 손을 씻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해하자고 그렇게 마음을 쓰자고 거듭 나 자신을 타일렀다."
저는 SBS의 아침뉴스 프로그램인 [모닝와이드]에서 '친절한 경제'라는 코너를 맡고 있어서, 매일 새벽에 출근합니다. 제가 출근하는 시간은 SBS 본사 빌딩에 하루 종일 오갈 사람들 중 1%도 채 나와있지 않은 시간이에요. 그렇다 보니, 회사에 도착해서 뉴스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까지, 마주치고 인사를 하게 되는 사람들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시간에 출근해 있는 사람들은 동선이 일정한 법이거든요.) 의상실과 분장실 사람들, 그리고 보도국 사무실 층을 청소해 주시는 환경미화원 분들입니다.
새벽에 나오기 전에는 사실 알아채지 못했던 일인데요. 환경미화원들은 각자 정해진 구역을 맡아서 일정한 시간에 청소를 합니다. 그래서 저 같은 새벽 출근자는 매일 아침 같은 분을 만나 안면을 익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담당 구역이 바뀌어 또 새로운 분이 오세요. "(아 그분 참 상냥하셨는데…) 어디로 가셨어요?" 이런 것도 묻게 되고, 귤 같은 걸 나눠 받아서 감사하게 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사무실을 청소해 주시는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끔 짧은 대화도 나누면서 깨닫게 된 게 있어요. 회사가 우리 집보다 깨끗하다는 것을요. ㅎㅎ 새벽 출근을 하기 전에는 그 '깨끗함'에 대해서 한번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늘 당연한 듯 휴지통은 비어있고, 세면대는 물기 없이 정리돼 있는 거고, 난간 손잡이는 손자국 없이 반짝이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여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자연스럽게 될 리가 없는 거죠.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 청소하고, 새벽 출근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시간에는 보이지 않는 비좁은 공간에서 쉬는 미화원들이 아니면 사무실은 반나절 만에 어마어마하게 지저분한 곳이 됩니다. 종종 주말에 출근할 때마다 다시 한번 느껴요. 미화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날의 회사란 얼마나 쾌적하지 않은 곳인가. 어제 오후에만 해도 그렇게 깨끗했는데.. 하고 말이죠.
이렇게 나의 환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미화원 분들은 되도록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고안된 시스템과 동선 안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인다는 것도 새벽 출근 이후로 깨닫게 됐습니다. 이걸 한번 보게 되고, 의식하게 되고 나니,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되더라고요. 시스템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딱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까진 아직 제 생각도 정리해 보지 못했지만, 서로서로 더 눈에 띄는 것이야말로 좀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공청소기는 항상 남자가 돌린다는 것도 알게 됐고, 미화원은 대부분은 여성들인데 일종의 리더 격으로 이런저런 지시는 그 남자분이 내리는 것 같은 모습도 종종 보게 됐습니다. 끼어들어 묻기까지는 못했지만, 그 '서열'과 '업무분장'은 어떻게 정해지는 건가 의문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고 싶은 책은 9월 18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입니다. 지은이 최성연은 유명한 대학의 음대를 졸업했고, [택시 드리벌] [날 보러 와요] 같은 히트작에 출연했던 연극배우 겸 신춘문예 등단 작가이자 요가 강사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양한 일을 인정받으며 해온 그는 정확히 50세가 되던 해에 모든 활동을 그만두고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미화원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들을 썼습니다.
"내 나이 오십에 청소노동자로서 일 년을 살게 되었다. 돈을 벌겠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 당시 나는 심혈을 기울인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려도 보러 오는 관객이 얼마 없어 속상해하곤 했다. '왜 사람들은 연극 한 편 보러 올 여유가 없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냐?' 답답한 마음에 투덜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영업 사원들의 전쟁 같은 삶을 잠시 엿본 뒤로는 그런 사람들에게 연극이나 문화 예술을 들이댄다는 게 참으로 시건방진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분들이 낸 피 같은 세금으로 마련한 지원금 덕분에 예술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나는 세상을 지나치게 단순한 구도로 보고 있었고 도덕적 허영도 상당했다. 이 일로 나는 한동안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유희의 무용성에 대한 원죄 의식에 시달렸다. 이로부터 자유로워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때 내가 예술가입네 하는 한량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로써 떠올린 존재가 농부와 청소부였다."
" "젊은 분들은 대부분 오래 못 하고 그만두시더라고요."
"저는 청소하는 일이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을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관리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니까요. 제가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으니 오랫동안 보람을 느끼면서 즐겁게 일할 수……"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싶었지만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끝까지 말을 마치려는데, 화장실 청소도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 훅 들어왔다. 순간 나는 무척 당황했다. 왜였을까? 미화원이라면 화장실 청소하는 게 당연한데 말이다. 청소 일을 하겠다고 면접을 보는 순간에도 내심 화장실 청소만큼은 안 했으면 하고 바랐었나 보다. 찰나에 스치는 많은 생각을 뒤로하고 나는 애써 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
이 에세이들은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다고 합니다. 솔직히 연재될 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연재 칼럼을 모아서 묶은 책들은 (굉장히 멋진 책이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재미있는 대목들과 그렇지 않은 대목들이 어느 정도는 나뉘게 된다는 선입견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와 함량이 고르다는 걸 일단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길지 않은 편이기도 하지만, 정말 한 자리에서 후딱 다 읽고 말았습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하고 담백한 글투도 내내 편안했습니다. 새벽 출근하면서 환경 미화원들을 다른 직장인들보다 자주 만나며 봤던 모습들이나 했던 생각들이 '이거 들키는 기분인데?' 싶을 정도로 빠짐없이 등장하더라고요. 익숙한 장면이나 상황들에 대해 '아하 그건 이런 거였구나' 풀리는 궁금증이 있기도 했고, 제가 품었던 의문들을 작가 역시 여전히 품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에 대한 작가의 성찰도 중량감 있게 펼쳐집니다.
"오랫동안 청소 노동을 했던 미화원 언니들은 이미 마음을 써서 일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몸으로 하는 일에 마음을 함께 쓰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겪으며 깨달았을 것이다. 언니들은 청소를 '한다'기 보다는 '해 준다'고 여긴다. 공간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돌본다는 마음이 있다.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으니 청소밖에 더 하겠냐는 푸념으로 무겁게 몸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으이구, 내가 안 치워 주면 꼴이 뭐가 되겠어?" 하며 냉큼 일어선다. 한 번은 요청한 비품의 결제가 늦어져 필요한 세제가 떨어졌는데, 한 언니가 자기 돈으로 세제를 사 가지고 왔다. 청소를 '해 줘야' 하는데 세제가 없으니 내가 사서라도 해 '줘야'겠다는 마음이었던 거다.
황당한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다. 풀밭에 놓인 벤치 아래쪽의 풀을 모조리 뽑으라고 했다. 벤치 아래쪽에는 왜 풀이 있으면 안 되는지도 모르겠고, 뽑아 봤자 며칠이면 금방 다시 자랄 텐데 그런 소용없는 짓을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두 불만스러웠지만 시킨 일이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풀을 뽑으면서도 속으로는 내내 투덜거렸다. 그런데 언니들은 어떻게든 그 일에다 마음을 욱여넣었다.
"그래도 이렇게 해 놓으니 깔끔해 보이긴 하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나는 내심 놀랐다. 두 가지 생각이 연달아 떠올랐다. 처음에는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딸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여우가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신 포도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상황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어찌 됐든 몸이 하는 일에 마음을 담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벌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별수 있어?' 하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하지 않은가?"
이렇게 여러 분들이 청소 '해 주셔서' 반들반들한 회사 화장실, 큰 빌딩의 티끌 하나 없는 복도 같은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직장인이라면, 또는 그 안에서 '나는 내일 어디서 뭘 하고 있게 될까' 걱정해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또 가까이서 접해보고 싶은 반듯한 마음과 생활인으로서의 존엄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 직업인, 직무인으로서 문득문득 깨닫고 또 고민하게 되는, 이른바 직업윤리의 여러 측면들을 새삼 곱씹게 해주는 멋진 글들입니다. 청소라는 일의 전문성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는 우리의 일들이 각자 가진 전문성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전문성을 발휘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게 그 업무의 일부인 미화원의 직무 세계가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북적북적]에서 발췌해 읽은 부분들은 최성연 작가님이 미화원의 전문성을 몸과 마음에 익혀가는 그 일 년 초기의 대목들입니다. 안 해보던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똑똑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나이 오십에도 속된 말로 '어리바리'해지는 때가 있다는 걸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는 대목들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어리바리함'을 경험할 일들을 늘 조금씩은 만들면서 살아야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를 읽다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마음입니다.
최성연 작가님은 일 년 동안 미화원으로 일하면서 번 돈으로 여행경비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그 여행을 가지는 못하고, 책을 한 권 내셨네요.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새로운 지평에서 노동을 하면서 "마법 빗자루를 하나 선물" 받은 것 같다는 말로 이 책을 끝맺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최성연 작가가 열어본 그 새로운 지평을, 우리가 모두 다 똑같이 경험해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책에서 함께 들여다보실 수 있습니다.
*'위즈덤하우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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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미디어부)
권애리 기자(ailee17@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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