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본격적인 양적완화를 도입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점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고채 매입 대상 및 규모 확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밝혔다.
올해까지 5조원 규모로 계획한 국고채 매입과 관련해선 "(앞서 2조원을 매입했고) 3조원이 남았는데, 매입 규모를 확대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며 "(향후 매입 계획은)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3% 내외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내부적으로 추정한 결과 지난 8월 전망치(-1.3%)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Q.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의 효과와 관리 기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A. 국가 재정운용에 있어서 요구되는 자기규율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나라보다 빠른 저출산,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연금, 의료비 등 의무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기적인 재정건정성을 위해 엄격한 재정준칙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한편으론 코로나 사태에 따른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재정 운용에 있어 유연성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2018년 IMF는 단순성, 강제성, 유연성 등 효과적인 재정준칙 기준 3가지를 제시한 바 있다. 위기 시 재정정책을 재량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마련한 재정준칙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앞으로 여러 의견을 듣고 최선의 방안이 마련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Q. 최근 외국인들의 중국 국채 투자가 늘고 있다. 한국 채권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A. 최근 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국채 투자가 늘어난 요인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의 상대적으로 양호한 경제여건이고, 또 하나는 WGBI(세계국채지수)에 중국이 편입된 점이다. 국내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는 '대체 효과'와 '보완 효과' 등 두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국내 채권 투자가 감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체 효과가 있는 반면, 글로벌 자금의 아시아 신흥국 투자 확대로 보완 효과도 병존한다. 그 영향을 단적으로 말씀드리기는 곤란하다. 결론적으로는 국내 금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의 외국인 투자가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Q. 내년 국고채가 대규모로 발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채권 시장에선 수급 불안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A. 내년 국고채가 대규모로 발행될 예정이어서 채권시장에 부담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최근 채권시장 여건을 되돌아보면, 주요국의 통화정책 완화기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국내 금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점, 그간 국내 채권 투자에 우호적으로 작용했던 여건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로선 향후 채권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크게 우려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수급 불균형에 따른 시장 불안성이 발생한 여지는 있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외국인 등 장기 투자 기관들의 채권수요 변화 등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누차 언급했듯 시장 불안가능성에는 적시에 적극 대응할 준비가 돼있다.
Q.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저금리 상황에서 금융 불균형 가능성이 나온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견해는.
A. 가계부채는 2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5% 조금 넘게 증가했다. 3분기 연속 증가율이 높아졌다. 특히 6월 이후에는 주택 거래, 주식투자 자금수요가 늘어나면서 신용대출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큰 폭 증가했다. 사실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어느정도 가계부채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부채 수준이 이미 높은 수준인 가운데, 최근 증가세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늘어난 가계대출 자금이 자산시장으로 과도하게 유입될 경우 추가적인 금융불균형 축적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가볍게 넘길수는 없다고 본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하셨는데, 이미 가계부채 억제 등 자산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이 추진 중이다. 그러한 제반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한은도 정책당국과 긴밀히 상황을 공유하면서 필요하면 여러가지 대응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Q. 저금리로 한계기업 정리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A.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코로나 사태에 따라 불가피한 조치다. 그러나 지적하신 대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 상황에서는 어떤 기업이 생존 가능하고, 어떤 기업이 부실 기업인지를 판단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원론대로 한계기업이나 부실기업을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현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조급히 추진할 경우 생존가능한 기업까지도 피해를 입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어렵게 코로나19에 대응한 실효성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Q. 한은의 통화정책 목표에 미국처럼 고용 부문이 추가돼야 한다는 진단이 있다.
A. 통화정책 목표에 고용을 넣는 국가가 몇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에 상당히 고용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볼 때 중앙은행도 고용 증대에 유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취지는 공감한다. 그렇지만 한은법 목적 조항에 고용 안정을 명시적으로 추가할지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입장 밝혔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가와 금융안정 목표가 있는데, 고용안정을 집어넣으면 이 목표들 간 상충 가능성이 있고, 상충 가능성 있는 복수의 책무를 달성하기에는 통화정책 수단이 제한돼 있다. 또 상충 가능성이 있는 통화정책을 하다 보면 정책 일관성을 이루기 어렵다. 현재 통화정책 운용 시 물가, 금융안정 상황, 경기는 물론, 고용 상황도 매번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을 참고로 말씀드린다.
Q. 내년 국채 추가공급이 심화될 가능성 있는데, 국고채 단순 매입을 늘릴 계획인가. 양적 완화 도입에 대해 현 시점에서 필요성은 있는지.
A. 국고채 매입과 관련한 입장은 누차 밝혀 왔다. 다시 한번 언급하면, 소위 수급 불균형 우려가 있는데, 실제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나서 금리 변동성이 확대되고 시장 불안상황이 나타난다면, 국고채 단순매입 등 시장안정화 조치를 적극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규모나 시기는 내년 실제 상황을 보고 결정할 사안이다. 국고채 매입과 관련된, 특히 시장 불안성에 대한 대응의 자세는 시종일관 지금과 같이 유지하고 있다는 말씀 드린다. 매입 증권 범위를 확대하는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그럼 본격적인 QE(양적완화)가 된다. 채권 매입 대상, 규모를 확대하는 본격적인 양적완화를 도입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Q. 일각에서 11월 기준금리 인하 전망 나오는데 어떻게 보나.
A. 저희들이 파악한 바로는 시장에서 11월에 인하될 것이라는 (시장) 기대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떻든 입장을 말씀드린다면, 다음달 기준금리를 어떻게 할지는 2주 후에 발표되는 3분기 성장률, 추가 지표를 토대로 판단할 일이다. 저희들이 현재 갖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보면, 의결문에도 표현돼 있지만 앞으로의 성장흐름이 8월 전망 경로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Q. 실질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한 진단이 궁금하다.
A.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물가급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올라서 9월에 1.0%까지 상승했다. 주된 요인이 기상여건 악화로 농산물 가격 오름폭이 크게 확대된 데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일시적 요인이 4분기에는 해소될 것으로 보이고, 이달 이동통신요금을 지원하는 조치가 시행되면 가계 휴대전화요금 부담이 줄면서, 4분기에는 물가상승률이 상당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지금 현재 스태그플레이션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경기가 물론 부진하지만 물가 급등 현상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을 아직 거론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Q. 또 달러 약세가 가파르면서 원·달러 환율이 1140원대까지 낮아졌다. 당국의 인식 궁금하다.
A. 몇개월 간 환율 흐름을 정리하게 되면, 7월 이후에 미 달러화 지수가 급락하고, 위안화가 크게 절상하는 가운데서도 원·달러 환율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하락했다. 그래서 디커플링되는 모습을 보였다. 9월 중순 이후부터는 원화 강세가 빨라져서 최근에는 1150원 내외에까지 이르렀다. 9월 중순 이후에 원·달러 환율이 하락한 데에는 무엇보다 국내 코로나 재확산세가 진정되면서 그동안 원화의 강세폭이 제한적이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간의 디커플링이 해소되는 과정이 아닌가 볼 수도 있다. 최근의 글로벌 리스크 요인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에, 환율의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대내외 여건 변화가 우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주의깊게 살펴볼 것이고, 필요 시에는 시장 안정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해나갈 계획이다.
Q. 환율 하락의 여파로 수출에 대한 영향은 어떻게 보는지.
A. 환율이 수출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지만, 우리나라 수출은 환율에 대한 영향이 과거보다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우리 수출 구조의 고도화 등 여러 요인이 있겠고, 환율보다는 글로벌 수요라든가 국제 교역 상황, 최근에는 코로나 상황에 더 좌우된다. 환율이 수출이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본다. 최근 환율이 떨어졌지만 수출에 부정적이라고 보는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Q. 지난달 미 연준이 점도표를 2023년까지 제로금리 유지하겠다고 했다. 한은의 중장기적 통화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A. 미 연준이 통화정책 체계를 바꾸면서 제로금리를 상당기간 유지하겠다는 스탠스를 밝혔다. 연준이 장기간 유지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도 통화정책을 완화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연준의 통화정책 변화가 우리 통화정책 결정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항임은 분명하지만, 기계적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건 아니라는 말씀 누차 말씀드린 바 있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완화 기조를 유지해나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Q. 한은이 연내 국고채 단순매입 규모와 시한을 이례적으로 약속했는데, 3조원이 남아있다. 향후 정례화할 계획이 있나.
A. 국고채는 3조원 남았다. 규모를 확대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시장상황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에, 지난번에 5조원 매입 계획을 밝혔고, 아직 그 계획이 바뀐 것은 아니다. 수급 상황이 바뀌면 또 바꿀 여지는 있다.
Q. IMF가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한은 전망치도 개선될 가능성 있는지.
A. 세계 경제가 그렇듯, 우리경제도 앞으로 성장흐름, 회복세 등은 코로나 전개상황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상당히 높다. 한 분기가 남았는데, 저희들이 다시 한번 모니터링해보고, 나름대로 추정해보면 8월 전망치(-1.3%)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Q. 국가채무가 급증해 국가신용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A. 그런 지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도 눈여겨 들을만한 대목이라고 본다. 저출산, 고령화, 또 우리가 비기축통화국이라는 점은 분명 재정운용에 있어서 난제고, 리스크다. 지금은 재정의 적극 운용이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소위 국가채무를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억제하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려를 저희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지만, 현재로서 적극적인 재정 정책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서대웅 기자 sdw618@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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