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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연재] 매일경제 'MK포커스'

감독 목숨 파리처럼 여기는 ‘프로야구 일그러진 영웅’ 키움 히어로즈 [MK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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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정말 비정상적인 팀이다. 정의로운 영웅보다는 일그러진 영웅에 가까운 키움 히어로즈다. 과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선수팔이에 나섰던 구단이 이젠 감독이란 자리를 ‘모바일 게임 아이템’ 취급하고 있다.

손혁 감독의 퇴진에 야구판이 시끌시끌하다. 8일 오후 키움은 손 감독의 자신 사퇴를 발표했다. 감독대행으로 1985년생인 김창현 퀼리티컨트롤(QC) 코치를 선임했다. 지난해까지 전력분석원으로 일했다. 이 또한 파격이라는 평가다.

파격이라는 표현은 하나부터 열까지 뜯어봐도 관둘 이유가 없는데 관뒀기 때문에 나왔다. 건강 문제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성적 부진’이다. 손혁 감독은 구단을 통해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라면서 “기대한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죄송하다. 기대가 많았을 팬들께 죄송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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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상위권 레이스 중 성적부진을 이유로 자진사퇴한 최초의 감독으로 남게 됐다. 사진=MK스포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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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분위기는 아니다. 시기도 그렇고, 관둔다고 두어 번 말리다가 수용한 구단의 결정 모두 파격을 넘어 뜨악하다는 게 적확하다. 좋게 말해 파격이지, 정상적이진 않다는 의미다. 키움은 지난 7일 고척 홈에서 열린 1위 NC다이노스전까지 2위 kt위즈와 1경기 차 3위를 달리고 있었다. 이날 NC전 포함 12경기가 남았다. 1위를 노리기에는 힘들어졌지만, 2위 싸움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3위를 하고 있고, 순위 싸움 중인데, 성적 부진을 이유로 관두는 감독은 없다. 만약 손혁 감독이 정말 그랬다면, 무책임한 사람이다.

히어로즈 감독직에 부임하기 이전, 해설위원과 투수코치를 역임한 손혁이라는 야구인을 이해한다면, 이런 무책임한 결정을 할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오히려 창단 이후부터 이번 감독 퇴진까지 히어로즈 구단의 행보들을 보면, 더 이해가 빠를 수 있다.

사실 손혁 감독이 올 시즌 지휘봉을 잡는 과정부터가 파격이었다. 역시 좋게 말해 파격이지, 일반적이지 않은 신임 감독 선임이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로 팀을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올려 놓은 장정석 감독(현 KBS N 해설위원)과 재계약 하지 않고 결별을 선택했다. 팀 최고 성적을 낸 감독을 갈아버린 것이다.

논란 속에 사령탑에 오른 손혁 감독은 초보 감독치곤 팀을 잘 이끌어 온 편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변수, 믿을맨 윤영삼의 팀 내 불화 및 성추행 파문, 박병호 부상 등 악재가 잇따랐지만, 화려한 멤버를 앞세워 줄곧 선두 경쟁을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키움의 경기력이 떨어졌다. 손혁 감독은 운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말수도 적어졌다. 야구 얘기라면 어떤 주제라도 열변을 토했던 손 감독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듯했다.

현재로서는 구단 윗선의 외압이 작용했다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여러 퍼즐을 맞춰보면 그렇다. 대주주인 이장석 전 대표는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살이 중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제명을 받아 구단 경영에 관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운영했던 허민씨가 이사회 의장으로 들어왔고, 허민 세력이 히어로즈 구단을 장악했다. 현재 대표이사 하송씨는 허 의장의 최측근이다. 원더스 시절에는 단장을 역임했던 이다.

허민 의장은 돈키호테 같은 사람이다. 직접 야구를 하겠다면 미국에서 너클볼을 배워왔고,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었다. 2년 전에는 신인드래프트에 참가 신청서를 내기도 했다.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으로 부임해서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방문해 청백전에 깜짝 등판하기도 했다. 홈런왕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는 고양 2군 선수단을 방문해 선수들을 상대로도 너클볼을 던졌다. 키움 측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위해 어울리는 자리였다”라고 해명했지만,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선수들을 데리고 놀았다’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홈런왕 박병호를 너클볼로 삼진 처리한다는 것은 게임에서나 가능한 일인데, 이를 현실에서 구현한 것이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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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사진=MK스포츠 DB


감독 교체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장정석 전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고, 손혁 감독을 선택한 이유는 허민 의장과의 오랜 친분에서 비롯됐다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손 감독 또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구단 고위층이 현장에 간섭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올 초 장안의 화제가 된 야구 소재 드라마에도 나온 말이지만, 야구가 망가지는 걸 야구인 손혁이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손 감독의 자진 사퇴는 여러 배경에서 해석해야 한다. 이미 열흘 가량 전부터 “손혁 감독을 날린다”라는 소문이 솔솔 흘러나왔다.

일부에서는 히어로즈 구단이 표방하는 프런트 야구다운 결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히어로즈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의 시스템을 갖췄고, 선수들을 키워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조상우, 김하성, 이정후 등 한국야구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들을 배출해왔다. 꾸준히 성적을 내는 것도 시스템 덕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프런트 야구를 한다고, 감독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감독의 역할이 미미하다면 그냥 허수아비에 ‘감독’이라고 써 붙이고 벤치에 놔두면 될 일이다. '구단 윗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해서 감독을 갈아치우는 게 프런트 야구는 아니다. 40년 간 축적된 역사를 자랑하는 프로야구에서 감독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대한 구단 팬들이 수년 동안 “가을에도 야구하자”고 외친 건 유명하다. 그걸 프런트 야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날 광주에서 한화 이글스와 KIA타이거즈의 경기 중계 해설을 맡은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누군가는 야구 감독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 감독을 해임시킨 사람이 감독을 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남겼다. 손 감독 자진 사퇴를 함축한 말이었다. 다만 손혁 감독은 속사정을 묻어두고 문자메시지로 “역량이 부족하다.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만 남긴 채 칩거에 들어갔다.

히어로즈의 행보는 우려스럽다. 과거 개인의 사리사욕 수단으로 선수팔이에 나섰던 구단이 이제 감독이란 자리를 모바일 게임 아이템이나 게임 카드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괜히 히어로즈를 두고 ‘아사리판’이라는 손가락질이 나오는 게 아니다. jcan123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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