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사실관계 확인해주지 않아
전직 고위관계자 “남북관계 중요 변수 아냐”
탈북민 출신 태영호 의원 “무분별 보도 유감”
조성길 전 이탈리아주재 북한 대리대사. 조 전 대리대사가 2018년 3월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트레비소 인근에서 열린 한 문화 행사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018년 11월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리대사’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들어왔다고 뒤늦게 알려졌다. 국회 정보위원회 국민의 힘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6일 밤 “조성길 전 대사는 작년 7월 한국에 입국해서 당국이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는 조 전 대리대사의 한국행 여부에 대해 공식·비공식을 불문하고 아무런 확인을 해주지 않고 있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특정 탈북민의 한국 거주 여부를 공개·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원칙’의 연장선이다.
조 전 대리대사는 귀임을 앞둔 2018년 11월10일 이탈리아 대사관을 벗어나 부인과 함께 종적을 감춘 뒤 지금껏 행방이 묘연했다. 조 전 대리대사의 직급은 ‘1등 서기관’이지만,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시험 뒤 이탈리아 정부가 유엔 제재를 이유로 문정남 당시 대사를 추방한 뒤 ‘대리대사’ 구실을 해왔다. 이탈리아 정부는 조 전 대리대사의 딸이 북한으로 송환됐다고 지난해 2월 밝혔다.
여러 언론 매체는 ‘조 전 대리대사의 한국행’을 두고 “황장엽 이후 최고위급 망명”이라거나 “남북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대형 사건”이라고 성격 규정하지만, 사실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황장엽 이후 최고위급 망명’이라는 성격 규정은 이미 알려진 점에 비춰봐도 사실에 어긋난다. 직급을 기준으로 할 때, 조 전 대리대사는 1등 서기관으로, 영국 주재 대사관의 공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온 태영호 국민의 힘 의원보다 직급이 낮다.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당사자와 정부 모두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는 다수의 ‘고위급 탈북민’의 존재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대리대사’는 직급이 아니라 ‘임시 임무’다. 북한의 외교에 밝은 소식통은 7일 “북에선 대사가 공석일 때 그 하위 직급자한테 ‘임시대리대사’의 임무를 임시로 부여한다”고 전했다. 북한 대사관의 직제는 원칙적으로 ‘대사-공사-참사-서기관’ 등의 순으로 이뤄지는데 “북한 대사관엔 재정 사정 탓에 공사와 참사가 없이 ‘대사-서기관’ 등 3~4명의 외교관만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다른 소식통이 전했다. 소식통은 “조성길은 ‘고위급’이 아니고 그냥 외교관”이라며 “굳이 다른 탈북민과 차별성을 찾자면 한국에 온 사례가 많지 않은 ‘북한 외무성 소속 정식 외교관’이라는 사실”이라고 짚었다.
조 전 대리대사의 한국행이 남북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리라는 전망을 두고는 섣부르다는 지적이 많다. 태영호 의원의 선례와 비교하면 당사자와 정부의 행보에 차이점이 분명하다.
태 의원의 한국 입국 사실은 2016년 8월17일 당시 박근혜 정부의 통일부가 대변인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지금까지 탈북한 북한 외교관 중 최고위급”이라며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렸다. 태 의원도 왕성한 공개 활동을 해왔다.
반면 조 전 대리대사는 2019년 7월 입국 이후 15개월째 당사자나 정부 모두 입을 꾹 닫고 있다. 조 전 대리대사는 국내 탈북민 사회에도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철저한 은거’엔 북쪽으로 송환된 어린 딸을 포함한 재북 가족이 가급적 ‘불이익’을 덜 받게 하려는 고려가 작용한 듯하다. 조 전 대리대사와 “20년 지기”라는 태 의원은 “조성길 본인의 동의 없이 관련 사실이 언론을 통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딸을 북에 두고온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언론이 집중 조명과 노출을 자제했으면 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7일 발표했다. 태 의원은 “조성길은 아버지와 장인이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집안 출신”이라고 언론에 말한 적이 있다.
‘흡수통일 배제’를 공언하며 2018년 세 차례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를 개선하려 애쓰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조성길 한국행’을 국내 정치 목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지적이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당사자와 정부가 침묵하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어, 조성길의 한국행이 사실로 공식 확인되더라도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중요 변수로 작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