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리드 군 병원 앞에 이틀 전부터 모여
트럼프 '깜짝 차량 방문'에 수백명 환호
"이번 일로 지지자들 오히려 결집할 것"
마스크 안 쓴 참가자 "난 원래 면역 있어"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메릴랜드 월터 리드 군병원 앞에 지지자들 수백 명이 모였다. 각자 만들어 온 손팻말을 들고 트럼프 대통령을 응원했다. [김필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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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바로 이만큼 거리에서 봤어요. 떨리네요. 차를 타고 나와서 손을 흔들었어요."
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워싱턴 인근 메릴랜드 월터 리드 군병원 인근 네거리. 한 여성이 다른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좀처럼 진정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인근에 차를 세우고 병원 앞으로 걸어오던 다른 무리의 지지자들도 앞다퉈 서로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병원 앞에는 이틀 전부터 지지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밤낮으로 모임이 이어지더니 이날은 수백 명이 도로 양쪽을 가득 메웠다. '트럼프 2020',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부터 '트럼프를 지지하는 히스패닉', '트럼프를 지지하는 아시아인' 등 다양한 지지층의 깃발이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크게 인화해 들고 온 한 부부는 같이 사진을 찍자는 다른 지지자들의 요청에 응하느라 분주했다.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메릴랜드 월터 리드 군병원 앞에 지지자들 수백 명이 모였다. 한 커플이 트럼프 얼굴 사진을 크게 인화해 들고 오자 다른 지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자며 다가섰다. [김필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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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깜짝 외출'은 그만의 감사 표현 방식"
트럼프 대통령이 다녀간 뒤 병원 앞 지지자들은 한층 더 고무됐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경찰이 교차로 양쪽을 통제하더니 검은색 쉐보레 SUV 차들이 천천히 이들 앞을 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검은 마스크를 쓴 채 창밖으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엄지를 치켜세우자 환호성이 터졌다. 차량은 교차로에서 한 바퀴 돌아 반대편에 있던 지지자들에게도 인사를 한 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통보되지 않은 깜짝 방문이었지만, 나름대로 계획된 일정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문 전 73초짜리 영상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코로나에 대해 많이 배웠고 이해하게 됐다"면서 병원 밖 지지자들을 "위대한 애국자"라고 추켜세웠다.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해 있는 메릴랜드 월터 리드 군병원 앞에 지지자들 수백 명이 모였다. 차량을 타고 온 지지자들은 깃발을 흔들며 경적을 울렸다. [김필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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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N 등 언론에선 대통령이 방역 기본수칙을 어겼고, 차 안의 수행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병원 밖에서 기자와 만난 지지자 중 한 명인 매슈 커티스는 "자신을 지지해주고 쾌유를 기원해 준 지지자 모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한 그만의 방식"이라고 두둔했다. 커티스는 전날 워싱턴에서 열린 '침묵하지 않는 다수'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10시간 이상 떨어진 테네시주에서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월터 리드 군 병원을 찾았다.
그는 대통령의 확진 소식을 듣고 처음 든 감정은 분노나 실망감이 아닌 '걱정'이었다고 했다. 워낙 튼튼한 사람인 줄은 알지만 70대의 고령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는 것이다. 이후 "아주 괜찮아졌다"는 트럼프의 동영상을 보고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병원 내에서 업무를 보는 모습 등을 꾸준히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지지자들 사이에선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는 "이번 일로 더 많은 사람이 트럼프 티셔츠를 사 입고, 차를 타고 다니며 자기 목소리를 더 크게 내게 된 것 같다. 결집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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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트럼프의 인간적인 면 보게 될 것"
볼티모어에서 부부가 같이 왔다는 존 몰리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이번 일로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된 것 같다. 오히려 부정적인 의견이 줄었다. 다음 TV토론을 하게 되면 완전히 다른 톤의 목소리를 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마스크 습관이 잘못됐다고 보진 않느냐고 묻자 그는 그런 주장을 하는 민주당을 두고 "참 딱한 사람들"이라고 답했다. "바이러스는 손과 입을 통해 전염되는 건데 어떻게 마스크가 다 막을 수 있겠냐"며 "(민주당이) 이 기회를 이용하려는 모양인데 사람들에게 겁만 주고 오히려 틀린 메시지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트럼프 지지 집회에 비해 그래도 마스크를 쓴 사람이 꽤 있었지만, 여전히 마스크 없이 웃고 떠들며 맥주를 마시는 사람도 많았다.
어릴 적 자신이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는 커티스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내 몸에는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는 면역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서 "두 번이나 심각한 감염의 위기가 있었지만, 신이 나를 지켜줬다"고 말했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병원 앞 도로에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차량 운전자들의 경적이 계속 울렸다. 가끔은 바이든 지지자가 창문을 열고 이들을 향해 "바이든 2020"을 외치다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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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20 대신 코로나-19를 택하겠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가 나온 곳은 이곳뿐이 아니었다. 전날 뉴욕시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도 트럼프 선거캠프의 대규모 유세가 열렸다. 트럼프 본인은 참석하지 못했지만, 지지자들은 전신사진을 인화해 대신 세워 놓고 "4년 더"를 외쳤다.
같은 날 워싱턴에서 열린 '침묵하지 않는 다수' 행진에도 수백 명의 지지자가 모였다. "바이든이 집권한 2020 대신 코로나19를 택하겠다 (I'd rather get COVID-19 than BIDEN-20)"는 손팻말을 들고 온 참가자도 있었다.
4일 오전 대통령 의료진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날이라도 대통령이 퇴원해 백악관에서 치료를 계속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CNN의 의학전문 기자 산제이 굽타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잘 분석해보면 당장 퇴원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제공되는 정보가 부족한 탓에 누구 말이 맞을지 알기는 힘들지만, 어떤 상황이든 집회 현장에 나온 지지자들의 믿음에는 영향을 주기 힘들 거란 점은 분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대통령은 곧 털고 일어날 것이며 바이러스도 과학자들이 경고한 것만큼 치명적이지 않다는 낙관주의가 퍼지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안전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지지자들이 마음을 바꿀 이유는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메릴랜드=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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