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분노할 일", "용납 안돼"…여론악화 우려 속 대북 강력규탄
'종전선언 통한 평화 모색' 기조 유지…9·19 위반 여부에도 '해석 신중'
문대통령 "그대로 알리라"…발표 고의지연설 반박
청와대 |
(서울=연합뉴스) 임형섭 기자 = 청와대는 24일 서해 북단 소연평도 해상에서 공무원이 실종됐다가 북한에서 피격돼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북측을 강력히 규탄하며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의 이번 만행에 대해선 진상규명은 물론 분명한 사과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다.
청와대는 그러면서도 "남북관계는 지속돼야 한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기조는 여전히 유지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사안이 미치는 파장을 고려하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철학 중 하나인 평화정착 여정을 중단하고 과거의 대립구도로 회귀할 수는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고민을 깊어지게 하는 지점으로 보인다.
브리핑하는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 |
◇ '반인륜적 행위' 규정…"국민 분노할 일" 여론 고려한 강력대응
이날 청와대가 발표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발표문에는 이제까지의 대북 메시지와 비교해 높은 수위의 비판이 담겼다.
우선 청와대는 이번 사태를 '총격살해 및 시신훼손의 반인륜적 행위'로 규정하고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한편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우리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행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청와대가 강경한 입장을 밝힌 데에는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에 이어 12년 만에 민간인의 생명이 직접적으로 희생된 것에 대한 엄중한 인식이 읽힌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도 고려한 것으로 추측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오전 이번 사건에 대해 첫 대면보고를 받은 뒤 "사실로 파악되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NSC 상임위 결과를 보고받은 뒤에도 "충격적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북한을 규탄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북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다닐 경우 여론이 순식간에 악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지되기도 했다.
[그래픽] 연평도 실종 공무원 피격 사망 시간대별 재구성(종합) |
◇ 9·19 위반 여부에 신중 해석…평화프로세스 불씨 살리기 '안간힘'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대원칙은 여전히 유지하겠다는 뜻도 확실히 드러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최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언급한 종전선언과 관련,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유효한가'라는 물음에 "남북관계는 지속되고 견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야권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하자고 했는데 북한은 우리 국민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종전선언은 허황된 구호" 등 공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기조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으로 풀이된다.
여기에는 문재인 정부 최대 성과로 꼽히는 평화프로세스가 허물어질 경우 국정운영 전반에 타격이 심해지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총격이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인지에 대해 청와대가 계속 신중하게 대응하는 것도 남북합의 정신을 최대한 지켜가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서주석 NSC 사무처장은 "본 사안은 9·19 군사합의의 세부 항목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접경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9·19 군사합의의 정신을 훼손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총격살해 관련 첩보를 보고받고 몇시간 열린 23일 오전 11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신고식에서 '평화'를 언급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신고식에서 "평화의 시대는 일직선으로 곧장 나 있는 길이 아니다. 진전이 있다가 때로는 후퇴도 있고, 때로는 멈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평도 실종 공무원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
◇ "있는 그대로 알리라"…고의지연설 등 의혹 확산 차단
청와대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 '정부가 고의로 발표를 지연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에는 정면으로 반박하며 의혹 확산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때문에 발표 시기가 늦춰진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연설은 15일에 녹화된 것이며, 연설이 방송될 때 청와대는 첩보의 신빙성을 분석하는 회의 중이었다"며 "이번 사건과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연계해주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 역시 참모들에게 "사실관계를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
국민들의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며 사태 수습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이날 사건이 접수된 때부터 NSC 상임위를 개최하기까지 청와대 조치 사항을 분 단위로 브리핑하기도 했다.
hys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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