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로 실종자 특정하고도 무대응…군 "북이 그렇게까지 나가리라고는"
22일 밤 총격·시신 처리→23일 새벽 청와대 NSC 소집→언론엔 "생사 확인 안돼"
국방부, 서해 우리국민 실종사건 관련 브리핑 |
(서울=연합뉴스) 정빛나 기자 = 군 당국이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 A씨가 북측으로 넘어가 북측 인원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돼 당시 조처가 적절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군 당국에 따르면 소연평도에서 어업지도 중 사라진 공무원 A(47)씨가 북측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의해 최초 발견된 시점은 22일 오후 3시 30분께다.
전날 A씨가 어업지도 중 실종됐다는 신고가 해경에 접수된 지 약 28시간 만이다.
군 당국은 북측이 구명조끼를 입고 '소형 부유물'에 탑승한 '기진맥진한' 상태의 A씨를 최초 발견한 정황을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군 당국은 당시엔 그를 실종자로 특정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군이 오후 4시 40분께 북측이 A씨에게 표류 경위를 확인하고 '월북 진술'을 들은 정황을 입수한 뒤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이때를 계기로 실종 당사자임을 특정할 수 있었다는 게 군의 설명이다.
A씨가 총살된 건 '월북 진술'이 이뤄진 지 약 5시간 만인 오후 9시 40분께로 파악됐다.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부의 지시를 받아 고속정에 탄 북한군이 A씨를 향해 총격을 가했고, 30분쯤 뒤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북측 인원이 해상에서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웠다.
군의 설명을 종합하면 A씨가 북측에 최초 발견된 이후 총살되기까지 5∼6시간가량 생존해 있었다는 의미로, 군이 국제상선통신망 등을 이용해 북측에 즉각적인 연락을 취했다면 적어도 '참변'만은 막을 수 있었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건이) 북한 측 해역에서 발생했고, 처음에 위치를 몰랐다"면서 "북한이 설마 그런 만행을 저지를 줄 몰랐다"고 말했다.
또 "우리측 첩보 자산이 드러날까 봐 염려된 측면도 있었다"며 "우리가 바로 (첩보 내용을) 활용하면 앞으로 첩보를 얻지 못한다. 과거 전사를 보면 피해를 감수하고도 첩보 자산을 보호한 사례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실종자라고) 특정할 수 있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인도주의적 조치가 이뤄질지 등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렇게까지 나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남측 민간인을 총살한 것도 모자라 시신까지 불에 태운 북한의 잔인한 행위를 군이 사실상 지켜보기만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A씨에 대한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만 하루가 지났고 군사적 긴장도가 높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벌어진 '특이 동향'에 대해 마냥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논란이다.
22일 밤 A씨의 피격 및 시신을 불에 태운 정황이 확인된 직후인 23일 오전 1시께 서욱 국방장관과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 수장들이 청와대로 소집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23일 오후에 군이 발표한 내용은 '실종자가 발생했으며 생사는 단정할 수 없다'는 '반쪽' 사실이었다.
당국이 북한에 '실종 사실 통보와 관련 답변'을 처음으로 공식 요구한 것도 23일 오후 4시 45분이어서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북측이 실종자를 이미 잔인하게 총살한 뒤 시신을 불에 태운 다음 날이었다.
shin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