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와 일부 정치권이 대한올림픽위원회(KOC)를 대한체육회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지난 16일 시도체육회장 간담회에서 “KOC 분리는 4000여억원이 투입되는 대한체육회의 책임성과 공공성을 확보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의 설명이 논리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가지 가설은 충족시켜야 할 게다. 첫번째는 대한체육회가 책임성과 공공성이 현격하게 결여됐다는 걸 보여줘야 하며 두번째는 책임성과 공공성에 관한 한 적어도 문체부가 대한체육회에 견줘 우월하고 모범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가설은 충분히 입증 가능하다. 그동안 대한체육회가 체육개혁을 등한시하고 개혁에 대한 주체적 각성을 하지 못했던 건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번째 가설에 대해선 문체부도 그리 자신할 수 없을 듯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문체부는 한국 체육의 후진성을 거론할 때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주무 부처다. 더욱이 온갖 권력은 다 행사하면서 책임과 비난은 체육회로 떠넘기는 한국 체육행정의 고질적 병폐인 ‘책임의 외주화’라는 구조적 문제점을 배태시킨 원흉에 다름 아니다.
책임성과 공공성에 관해선 또 어떤가. 멀리 갈 것도 없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의 비선실세였던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위세에 벌벌 떨며 낯부끄러운 부역을 일삼았던 게 과연 누구였던가.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훌륭한 승마선수였다는 걸 변명해주기 위해 당시 김종 차관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직접 브리핑을 주재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문체부의 한 관료는 “부끄러워 죽겠다”며 비선실세에 휘둘리던 문체부의 처지에 자조섞인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더 한 것도 있다. 당시 문체부가 체육회로 내려보낸 개혁정관은 비리혐의로 실형을 살고 나온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이사가 자신의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해 기획한 것이었음이 특검에서 모두 사실로 판명됐다. 박 전 전무는 최순실을 등에 업고 문체부를 출입하며 호가호위했던 사악한 인물이다. 정부 중앙부처인 문체부가 비리인사가 미주알고주알 써준 정관을 대한체육회 개혁정관으로 밀어붙였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체육회에 투여되는 4000여억원의 공공자금은 한푼도 헛되게 쓰여서는 안된다는 박 장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문체부의 고해성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정부에서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주도해서 만든 (사)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문체부의 얼빠진(?)지원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단체다. 집행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체육진흥투표권 주최단체지원금 6억7000만원을 센터에 선심쓰듯 지원한 문체부가 공공성을 운운하는 건 좀 그렇다.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법과 규정에 따라 집행해야 하는 게 공공 자금인데 일개 민간인의 위세에 눌려 엄정하게 써야할 돈을 펑펑 쓴 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게다. 어디 그 뿐이랴,최순실 사건의 명백한 부역자인 이규혁을 창단 감독으로 콕 찍어 스포츠토토 빙상단 창단에 압력을 가하는 등 공공성을 훼손한 문체부의 패악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KOC 분리에 앞서 지난 정권에서 부역한 문체부의 낯 부끄러운 흑역사에 대한 솔직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가 아닐까. 누차 이야기 하지만 KOC 분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 국가마다 상이한 체육의 토양과 환경에 따라 선택하면 그만인 사안일 뿐이다. 숨은 의도를 감추기 위해 내세우는 그럴싸한 명분은 언제나 그렇듯 생명력이 짧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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