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 주장 후 보편입장 사그라져… 대권주자 사이 고래싸움 새우등 신세?
9월 13일 2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2020년도 제4회 추가경정예산안 제출 자료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도착해 의원실로 옮겨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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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 같다. 당내에서 신호가 안 좋으니까 바로 사그라진다. 기본소득을 말하면 ‘이재명파’로 찍히기라도 한다는 걸까.” 기자와 통화한 이원재 랩2050 대표의 말이다.
최근 책 <소득의 미래>를 펴낸 그는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다. 그
는 현재 정부가 지급 추진하는 ‘2차 재난지원금’은 엄밀히 말해 재난지원금이 아니라고 했다.
“1차 때 코로나19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업자 지원이나 아동 돌보미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 대한 지원은 별도로 있었다. 지금은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레토릭을 악용해서 1차 때보다 더 적은 액수로 과거 추경 때 했던 사업지원금을 추가로 실행한 것이다. 재난지원금 자체가 없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2차 재난지원금 지급액을 포함한 4차 추경예산은 9월 22일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 발언으로 미뤄보면 추경예산 중 2차 재난지원금에 해당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377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긴급지원액으로, 전체 추경예산안의 절반인 3조8000억원이 투입된다는 것과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일자리 119만개를 지키기 위해 1조4000억원을 추가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논의과정을 통해 정부가 이런 결론에 도달했느냐는 뚜렷하지 않다.
2차 재난지원금의 성격을 보편지급으로 할 거냐, 아니면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선별로 할 것이냐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거의 없었다.
보편지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제외한다면 정치권에서 보편지급을 주장하는 인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왜일까.
■ 보편·선별 지급 논의, 제대로 된 적 있나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 선거 이전부터 2차 재난지원금은 “더 급한 분께 더 빨리, 더 두텁게 도움드려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누차 밝혀왔다.
8월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당국 책임자로서 볼 때 2차 재난지원금은 1차와 같은 형태로는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2차 재난지원금은 100% 국채 발행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근거였다.
이낙연 당시 후보도 같은 날 입장문을 내 “1차 지급 때는 행정 준비와 국민수용성 등의 고민 때문에 전면 지급을 선택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선별지원이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4%가 선별지급의 손을 들어줬다.
1차 재난지원금처럼 지급대상을 ‘전국민’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은 33%, 아예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21%로 나타났다. 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날은 8월 28일.
같은 날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자체 조사한 결과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2분기 정부지원금인 ‘사회수혜금’이 저소득층인 1분위에 총 3조8090억원(14.9%), 고소득층인 5분위에 총 6조251억원(23.6%) 배분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5분위가 1분위보다 약 1.58배 높게 받은 것이다.
다시 말해 재난지원금은 소득이 높아질수록 더 많이 배분되는 역진성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누구에게나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이 ‘부자지원금’이 되었다”(뉴시스 보도)는 것이다.
이원재 대표는 데이터의 해석이 엉터리라고 주장했다.
“사회수혜금은 재난지원금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아동수당도 포함된다. 아동수당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30~40대로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이다. 수당을 주는 순간 역진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1차 재난지원금은 역진도, 누진도 아니라 그냥 중립적이다. 왜? 다 지급되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간단한 산수인데 기재부의 거짓말에 속은 것이다.”
9월 4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홍남기 부총리님께 드리는 마지막 호소’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글에서 그는 “선별지원은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위기극복에 가장 중요한 연대감을 훼손하고 갈등을 유발하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심각한 부담을 줄 것임이 여론에서 드러나고 있다”라며 “준비된 재난지원금이 8조원이라면 국민 1인당 10만원씩 3개월 시한부 지역화폐 지급으로 가계지원, 자영업 매출 증대, 기업생산 증가, 국민연대감 제고 효과를 보고, 나머지로는 선별 핀셋 지원하는 절충적 방안도 검토해주시기 바란다”고 적었다.
당·청의 정책결정권자들을 에둘러 홍 부총리에게 호소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고육책이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 ‘개점휴업’ 상태 기본소득연구포럼
이원재 대표가 언급한 민주당의 입장 선회는 국회에서도 발견된다.
7월 30일 국회기본소득연구포럼이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출범했다.
민주당 의원 26명과 김성원 국민의힘, 조정훈 시대전환,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그리고 무소속 양정숙·윤상현 의원이 참여한 초당적 성격의 연구모임이다.
7월 30일 여·야 의원이 참여한 국회기본소득 연구포럼에 참석한 여·야 정치인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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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행사에서는 소병훈 민주당 의원이 대표의원으로 선출됐다. 책임연구위원으로는 용혜인·허영 의원이 선임되었고 “기본소득법 공동발의를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럼이 출범한 후 50일이 지났다. 그런데 이후 행사 소식은 안 들린다.
9월 16일 조정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기본소득법안’이 국회에 접수됐다. 이 법안의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14명 의원명단과 포럼멤버(31명)를 대조해봤다. 대표발의한 조정훈 의원을 제외하면 포럼멤버 중 발의에 참여한 의원은 무소속 양정숙 의원을 포함해 6명에 불과하다.
당장 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소 의원부터 법안 발의에 동참하지 않았다.
“최고의원 선거에 나갔을 때도 보편지급을 주장했다. 기본적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논의를 거쳐 결정된 의견에 따르는 것이 정당정치 아니냐.”
소병훈 의원 측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기본소득 포럼 창립 후 활동 부진에 대해서는 “국회 코로나19 상황 등이 겹쳐 행사를 못 열었던 것일 뿐”이라며 “조 의원이 추진한 법과 (포럼에서 논의된) 기본소득법은 성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입장차’가 존재해 기본소득법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소상공인 지원은 4차 추경의 7조8000억원 중 3조원으로 절반도 안 된다는 것 아니냐. 지금이라도 제대로 논의해서 실제로 지원 효과가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용혜인 의원과 우리 당 입장이다.”
김준호 기본소득당 대변인의 말이다. 기본소득당은 선별지원에 대한 반대입장을 이미 수차례 밝혀왔다.
“이미 현장업계나 시민사회에서 선별지급은 부당하고 공정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수차례 밝혀왔지만, 정부와 여당은 그런 주장을 묵살하고 일방 추진했다”는 것이 기본소득당의 주장이다.
“재난지원금이 엄밀히 말해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기본소득으로 배분하는 방식의 장점이나 목표가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면 했는데 갑자기 선별로 틀면서 논의가 실종되고 대선주자들 사이의 싸움으로 비치는 게 안타깝다.”
안효상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 상임이사의 말이다.
한편 허영 의원은 9월 16일 밤 통화에서 “개인적으로는 8년 전부터 총선공약으로 기본소득을 주장해온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한다고 ‘이재명파’라고 할 순 없지 않냐”며 “2차 재난지원금이 맞춤형으로 결정된 것은 재정적 한계도 있고, 현실적인 정부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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