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OSEN=심언경 기자] 망자는 말이 없다.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섣불리 추측할 수도 재단할 수도 없는 이유다.
더이상 설리는 없다. 그런데 설리를 둘러싼 말은 여전히 너무 많다. 본인은 영면 중인데 조용히 쉴 틈조차 주지 않는다.
조심스럽지만 감히 확신한다. 설리는 적어도 친구가 자신의 어머니를 까발리고 친오빠가 욕설로 맞대응하는, 진흙탕 싸움을 원치 않았을 거다.
지난 10일 MBC '다큐플렉스-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이하 '다큐플렉스')가 방영됐다. 설리의 삶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다큐플렉스'는 사뭇 비장하게 내세운 기획의도와 달리, 속 보이는 편집으로 뭇매를 맞았다. 설리의 생애 중 가장 입에 오르내렸던 최자와의 열애를 어머니의 입을 빌려 자극적으로 담아냈고, 이도 모자라 다이나믹 듀오의 '죽일 놈'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저급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연출이었다.
방송 다음날 배포된 보도자료는 제작진의 진정성을 의심케 했다. 방송 2회 만에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는 내용이었다. 왜 하필 설리를 새로 론칭한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삼았는지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큐플렉스'를 시청한 자칭 '설리의 15년 지기 친구' A 씨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
A 씨는 설리와 있었던 일화를 털어놓으며, 설리의 모친을 정면으로 저격했다. A 씨의 주장에 따르면, 설리의 모친은 설리의 경제력에 빌붙어 생활했다. 설리를 위해서 돈을 모아두기는커녕, 회사에서 돈을 가불해가기까지 했다.
A 씨는 장문의 글을 마무리하며, "평생을 이용당하며 살았던 진리를, 아직까지도 이용하며 살고 계시더라.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더 나아가기 전에 이쯤에서 멈춰주셨으면 한다. 제발 더이상 진리를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다큐플렉스'의 인터뷰에 참여했다는 지인 B 씨도 "이번 다큐('다큐플렉스')는 '최진리'가 아닌, '최진리의 엄마' 다큐멘터리가 되었더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리의 그 시간들이 어땠는지'는 최진리에게만 권한이 있는 말들이라 생각해서 가족분들이 진리의 친구들을, 그의 연인이었던 누구를, 하다못해 팬들을 욕해도 함구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A 씨와 B 씨 모두 '다큐플렉스'의 의도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설리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얘기했다. 이들에게 설리의 모친은, 전형적인 '나쁜 엄마'였다.
하지만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설리는 진정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설사 설리가 어머니와 돈 문제, 연애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다고 해도, 깊은 애착 관계가 있는 어머니를 완전히 저버렸다고 단언할 수 있는 걸까. 더 나아가 설리는 어머니의 (사실이라면) 추악한 이면을 만인이 알기를 바랐을까.
A 씨와 B 씨의 폭로는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했다. 결국 이들의 이야기가 개인적인 감정 토로 정도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게다가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최자에게 향했던 비난의 화살은 설리의 모친에게 겨누어졌다. 모친도 어찌 됐든 설리가 사랑한 사람이다. 설리를 위해서였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이기적이고 가혹하다.
그와중에 설리의 친오빠도 등장했다. 설리의 오빠는 "그나마도 그 당시에 존중해줬던 친구들이 이딴 식이라니.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친구라고?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 그 누구보다 통탄스러워 할 시기에 '그것이 알고 싶다' 촬영에 급급했지 않나. 진짜로 옆에 있어줬던 친구들이 맞나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진짜 친구라면 잘못된 방향을 지적해줄 수 있는 게 진짜 친구"라며 "비유를 들면 어린아이들에게는 이가 썩는다고 사탕을 많이 못 먹게 하지 않나. 너네는 그런 경우다. 말 함부로 하지 말자"고 경고했다.
이때 기사화된 설리 오빠의 워딩은 실제와 다르다. 갖은 욕설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설리 오빠는 기사에 실을 수 없는 심한 욕을 연거푸 사용하며, 설리의 지인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설리가 생전 지나치게 유명했던 연예인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면, '적어도 신중하게 글을 남겼어야 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큐플렉스' 방영부터 설리의 지인과 가족의 충돌까지, 이 모든 과정에서 설리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설리는 자신을 추모한답시고 만든 다큐멘터리 때문에 전 연인과 어머니가 악플로 고통받고,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힐난하고 헐뜯는 지금을 상상이나 했을까. 누군가를 위한다는 착각이 때때로 이토록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notglasses@osen.co.kr
[사진] '다큐플렉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