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정책협약 이행 합의서에 사인 후 주먹을 맞대고 있다. / 배정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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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관련 정책 졸속 추진 부담...지금은 지는 게 이기는 것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경제학에 편승 효과라는 게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이 소개한 개념이다.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다른 사람들도 이 재화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말한다.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고도 한다. 밴드웨건(Bandwagon)은 밴드(Band)와 웨건(Wagon)의 합성어로 악단을 실은 역마차라는 의미다.
1848년 미국 대선에서 휘그당(공화당 전신)의 후보로 출마해 승리한 미국 제16대 대통령 재커리 테일러가 선거운동을 할 때 역마차에 악단을 태워 활용하면서 유래됐다. 마케팅 전략으로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고전적인 방법인 만큼 정반대의 결과를 보이는데 스놉 효과( Snob Effect) 즉 속물 효과라고 불린다.
의사들의 집단 휴업을 불러왔던 정부와 민주당의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과 지역 의사제 도입 등의 추진도 그 속셈을 들여다 보면 편승의 여지가 있었다고 여겨진다. 정부가 부인해도 코로나 19 확산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공공의료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높아진 데 편승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는 안 함만도 못한 역 효과를 낸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수술대에 올려 놓고도 수술하지 못한 채 급하게 봉합한 수준이다. 176석이라는 절대 과반의 국회 의석 확보로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이던 관련 법안의 통과도 지나치게 낙관했고 명분도 있는 데다 주변 상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대한의사협회와 지난 4일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물러섰다. 복지부도 같은 날 의협과도 해당 정책 추진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항복이나 다름없다. 속물효과를 제대로 덮어쓴 셈이다. 그럼에도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는 의협과 민주당, 복지부 간 협상 과정에서 전공의 등의 목소리가 배제됐다며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증진개발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의료정책과 관련한 협상에 대한 합의문 서명식'이 전공의들의 반대로 무산되자 돌아가고 있다./이덕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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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갈등의 불씨는 다른 데 있다. 의대생들을 대표하는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가 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전공의·전임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전협도 의대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행동을 함께하며 대책을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여당과 대립각을 보여왔던 의협보다 대전협과 의대생들이 마지막까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자리를 잡은 개원의들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의사 수 증원 등에 따른 의료 환경 변화에 더 민감한 영향을 받는 위치이기 때문으로 읽힌다.
세상사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의료 관련 문제는 더욱 그렇다. 협상과 양보는 얽힌 갈등을 풀어 헤치는데 도움이 되지만 깔끔하게 풀기는 정말 쉽지 않다. 국민들의 눈에는 산적한 민생을 두고 밥그릇 싸움만 한다고들 여기기 십상이다. 이번에도 정부 여당의 의도대로 가지 못했다. 정부 여당의 어설픈 독단과 밀어붙이기 탓이 크다.
노자의 제자로 알려진 문자(文子)는 "욕심만 앞세우면 본성을 잃기 때문에 올바르게 되는 적이 없다.(부인종욕실성 동미상정야/夫人從欲失性, 動未嘗正也)"고 했다. 여기서 본성(性)은 두 가지 의미다.
첫째 자신의 자질과 기질, 취향, 능력 따위를 말한다. 둘째는 전체적인 상황과 할 일의 성질이다. 두 가지 모두를 잘 파악하고 움직여야 하는데, 정부 여당은 너무 쉽게 보고 욕심과 의욕만 앞섰다.
20년 전 의약분업 사태로 촉발된 의료계 첫 파업 때도 그랬다. 정부정책 철회를 외치는 의사들의 반발, 이에 따른 현장 전공의들의 파업 가세, 의료공백의 심화, 정부가 정책의 원점 재논의를 약속 등 수순이 판박이처럼 이번과 닮았다. 어리석게 20년 전 실패를 답습한 것이다.
서민 단국대 의과대학 교수는 '의대생 국시 취소 구제 거부' 청와대 국민청원을 놓고 "1년 치 의사가 통째로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가 위기"라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 유튜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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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국시대 철학자 순자((荀子)는 "바람이 가는 방향을 따라 외치면, 소리가 빨리 가는 건 아닌데 바람의 기세를 타기에 잘 들을 수가 있다.(순풍이호 성비가질야 이문자창/順風而呼 聲非加疾也 而聞者彰)"고 했다. 좋은 기회를 봐서 일을 하면 그만큼 일이 쉬워진다는 뜻이다. 때와 장소 그리고 방법을 바르게 선택하는 것은 성공의 비결이다.
지난 8월 21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파업)을 이어온 전공의들은 8일 오전 7시를 기해 업무에 복귀하기 시작했다. 100% 정상화까지는 2주 정도 소요될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전공의들이 여차하면 다시 집단휴진 등 단체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하다.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문제가 정상화의 최대 관건이다. 정부는 더 이상의 시험 연기나 접수기한 연장도 없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의대협은 "졸속 합의 후 이어진 복지부와 여당의 표리부동한 정치 행보에 분노한다"고 말했다.
의대생들은 국시 집단 거부와 함께 동맹 휴학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국시 집단 거부로 내년에 의사 배출에 차질이 빚어지면 공중보건의와 응급실 인턴 충원 등에 문제가 생긴다. 장기적으로는 군의관 선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합의를 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의대생들의 국시거부 문제도 대승적 차원에서 정부 여당이 풀어야 한다. 현재로선 그게 올바른 방법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지금은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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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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