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갈등과 다툼은 어쩌면 세상사의 필연일 수 있다. 모두가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공존할 수 있는 경쟁이 공멸로 가는 투쟁으로 변질된다면 그 사회는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보면 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규정하고 과학적 판단이나 합리성을 무시한 채 가차없이 공격하는 반지성주의(反知性主義)는 최근 도드라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념대립에 따른 정치의 극심한 균열현상이 경계를 허물고 각 분야로 밀고 들어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체육도 예외가 아니다. 날서고 각세운 정치라는 유령이 스멀스멀 체육계로 밀고 들어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 결과 정치와 체육의 동조화현상(同調化現象)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정치판을 움직이는 프레임인 이분법적 대결이 체육계에서도 보란듯 구현되고 있는 느낌이다. 생각이 다르면 상대를 적으로 돌려 날선 공격을 퍼붓는 통에 생산적인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의 강박이 불러온 결과겠지만 우선은 차분하게 사태의 본질을 파악한 뒤 대안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뜬금없이 한국 정치판을 움직이는 이분법적 프레임을 거론하는 이유는 최근 체육계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문제를 놓고 두동강으로 쪼개졌기 때문이다. 갈등은 격화됐고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와 전쟁(?)을 치르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체육현장은 한국 체육의 토양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KOC 분리를 반대하고 있지만 정부와 개혁파를 자처하는 반 엘리트체육 진영에선 KOC 분리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KOC 분리를 놓고 엘리트체육 VS 반엘리트체육으로 쪼개져 갈등의 파고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2016년 체육단체 통합이후 정치권의 주도로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체육정책은 과연 일관성이 있을까. 정책적 흐름과 기조가 논리적 정합성을 띠고 있지 못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통합이후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살펴보면 이해가 빠르다. 대학스포츠협의회(KUSF)를 통한 대학 스포츠 분리를 비롯해 학교체육진흥회 출범으로 인한 초·종·고 체육의 분리,지방자치단체장 겸직금지를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에 따른 지방체육의 분리,그리고 체육 갈등의 결정판인 KOC 분리 등. 요란스럽게 통합을 해놓고 왜 체육을 또다시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잇따른 체육의 분리는 통합을 주도한 세력들이 각 부문별 단체의 인사와 예산을 장악한 뒤 교묘하게 진행했다는 게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는 곧 체육권력의 또다른 사유화에 다름 아니다.
체육단체 통합도 결국 체육권력과 맞닿아 있다는 게 필자의 확신이다. 경기인 중심의 체육권력을 빼앗기 위해선 대의원제도로는 힘들다고 보고 비경기인 출신의 당선이 유리한 제도가 필요했을 게다. 그게 바로 선거인단제도였으며 이를 위한 수단으로 체육단체 통합이 필요했다는 게 필자의 추리다. 비경기인 출신,특히 특정 학맥을 중심으로 한 일군의 세력들은 대한체육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정교하고도 치밀한 로드랩을 그린 것 같다.
정책이 열린 공간에서 소통하지 않고 이분법적 대결구도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최근 체육계의 모든 문제가 엘리트체육 VS 반엘리트체육 구도로 재편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
반엘리트체육 진영이 요구하고 있는 개혁 방향성과 명분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이들이 범한 결정적 실수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체육을 이분법적 대결구도로 나눈 실수,그것도 모자라 정치를 등에 업고 정책을 톱 다운(top-down) 방식으로 내려보낸 건 뼈 아픈 과오다. 체육 현장에선 파열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의 가치는 충돌하는 게 아니지만 마치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치로 낙인을 찍어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이 같은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들은 마침내 KOC 분리를 향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편향된 시각과 과잉신념에 이끌린 이들의 발언과 태도는 짐짓 공격적이다. KOC 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체육적폐로 규정짓는 논리적 비약도 서슴지 않았다. 사실 따지고보면 KOC 분리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마다 상이한 체육의 환경과 토양에 따라 선택하면 되는 그런 사항일 뿐이다.
이런 문제들이 살아있는 체육현장에서 공론화되지 못하면 체육은 정치투쟁의 연장선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진보는 다양성의 가치와 맞닻아 있다. 엘리트체육의 폐해를 침소봉대해 이를 프레임에 집어넣어 재단하려는 태도는 분명 문제가 있다. 엘리트체육의 쏠림현상과 그에 따른 부작용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래서 중단없는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지론이다. 문제점이 있다고 그 자체가 지닌 경쟁력있는 가치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단순화시키고 ‘다름’을 ‘틀림’으로 치환해 타자를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건 또 다른 폭력일 수도 있다. KOC 분리 움직임에서 느껴지는 역겨운 냄새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정치판에서 닳고 닳은 과잉신념에서 비롯된 배제와 독단의 폭력성,바로 그게 아닐까 싶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
[기사제보 news@sportsseoul.com]
Copyright ⓒ 스포츠서울&sportsseoul.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